끝 없는 부끄러움에 대하여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를 처음으로 봤던 건 2016. 9. 25. 새벽이었다. 아이들이 어려서 차분하게 책을 볼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다. 일요일 새벽에 웬일로 눈이 일찍 떠져서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던 책을 집어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짧게 남긴 페이스북 메모에는, 책을 읽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워서 여러 차례 책을 덮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멈추면 다시는 책을 펼칠 수 없을 것 같아서 억지로 끝까지 읽었다고 쓰여있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면 모를까, 고통스러워서 책을 덮고 싶은 경우는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소년이 온다"를 떠올려보면, 읽는 게 힘들어서 그만둘까 생각했던 기억만 남아있을 뿐, 어떤 장면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도 소설의 대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기억하는 편인데도 "소년이 온다"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겨우 기억에 남은 건 문칸방에 살던 동호가 누나를 위해 칠판 지우개를 훔치던 장면과 은숙이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어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는 걸 멈춰 달라고 요구했던 장면 정도다.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으며, 무엇이 그토록 나를 힘들게 했었는지 기억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굳이 애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중학생에 불과한 동호가 군인이 쏜 총에 맞아 죽는 장면도, 진수가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이 무너져 자살을 선택하는 장면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군인들이 도청으로 진입했던 날 은숙이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공포에 떨던 장면이었다.
한강은 그 천재적인 솜씨로 나를 그날 밤 은숙의 곁에 데려다 놓았다. 도청으로 모여달라는 외침을 외면하고, 나는 은숙의 옆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군인들이 곧 들이닥친다는 걸, 군인들이 오면 도청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는 은숙의 옆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비겁함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고,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아이들을 생각하다가 더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아주 쉽게 투쟁과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우리 중 대부분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처절한 절규 속에서도 침묵을 지켰던 쪽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까, 부끄럽게 생각하자.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