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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녀 Jun 11. 2019

슬픈 짐승

떠난 반려동물에게 뒤늦게 전하는 나의 안부 - 04. 우는 여인

마음속에 머리를 풀어헤친 채로 울부짖는 여인이 산다. 이따금 그 여인이 깨어나 갈비뼈를 부술 듯이 사납게 두드리며 운다. 나는 가슴이 뻐근해지는 감각에 몸을 더 둥글게 말고 청이의 유골을 안고 운다. 한 2주간 청이의 극락왕생을 빈 것도 소용없이 청이를 돌려달라고, 어서 돌아오라고 처절하게 운다. 삶이 벼락 맞은 나무처럼 아무 생명의 기운이 없다. 그게 무섭고 슬퍼서 울다가 잠들면 그대로 암전이다.

정신을 뺏길 곳을 찾는다. 청이가 떠난 후로 내 삶은 청이를 떠올리며 아파하는 시간과 잠시 청이를 잊는 시간으로 나뉜다. 잠시라도 청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자극제는 세상에 많다. 그런 와중에도 고양이와 관련된 것들은 되도록 피하려고 한다. 우는 여인이 깨지 않게.

청이를 잃은 뒤에야 내가 겪지 못했던 상실의 고통이 이랬겠구나 싶다. 어머니를 보낸 선배. 아버지를 잃은 선배. 외할아버지를 보낸 애인. 강아지와 이별한 후배. 고양이를 보낸 지인. 그때 나는 그들의 슬픔에 얼만큼 같이 아파하고 걱정했는지. 이렇게 직접 겪어보니 두개골이라도 부수고 싶을 만큼 온몸이 터질 것 같아 견디기 어렵도록 슬픈데, 이 고통을 이미 겪은 그들에게 나는 제대로 된 위로 한 마디 한 기억이 없다.

청이가 떠난 뒤 나는 가끔 내 감정을 감당할 수 없다. 이유 없이 분노가 솟는다. 나 자신에 대한 원망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진절머리가 폭발적으로 치솟는다. 앞으로의 시간 따위 이제 별 의미도 없으니 나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다는 무책임한 고집도 든다. 그리고 자학한다. 청이가 아플 때 회사 하나 그만두지 못하고 곁에 자주 있어주지도 못했으면서. 이제 와서 하고 싶은 대로 살면 뭐하냐며. 원하는 건 청이 뿐인데 이제 와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슨 소용이냐며.

청이는 왜 돌아오지 않을까. 내가 이렇게 미쳐가는데. 이렇게 살기 싫고 아프고 다 싫기만 한데, 청이는 왜 오지 않을까. 청이가 왜 내 곁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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