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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fu Sep 23. 2020

아침산책



다섯 시 삼십 분. 일찍 눈이 떠졌다. 그날따라 정신이 또렷해서 걷고 싶었다. 나에겐 특별한 시간이지만, 새벽이 일상인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다. 다녔던 초등학교가 코앞이지만 상황이 이러한 만큼 지나쳐야 한다. 새벽이 주는 신선함은 잠깐, 아파트는 오래 걷고 싶은 산책지는 아니다. 금세 지루함을 느끼고 돌아가다 한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들어선 곳이라 생각했는데 뭔가 익숙했다. 그러다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를 가운데 두고 내가 살던 달동네 건너편에 멋들어진 아파트가 들어섰다. 갑자기 학급 수도 늘고 많은 친구가 전학 왔는데, 그 친구들이 살던 동네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등교하는 길부터가 달랐다. 나와 동생은 부끄러워 자주 길을 돌아갔다. 친구들은 생일이면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파티한다고 초대장을 주고받았는데, 나는 파티는커녕 집을 숨기기 바빴다. 거실도 없고, 화장실 문도 없고, 바퀴벌레가 득실 한 집은 어린 내 눈에도 참 초라해 보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누구보다 좋은 집에 살았던 기억이 있었기에 더 허탈했다. 어느 날 집을 숨기는 내 모습을 눈치챈 친구가 나를 몰래 따라와 우리 집이 들키게 됐을 때, 얼마나 끔찍했는지 모른다.


저기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이렇게 내성적으로 변한 이유는 우리 집 때문이야,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며 부러워했다. 어렸기에 마냥 좋아 보이는 줄 알았는데, 기억이 남아있는 특정한 공간은 여전히 그때의 감정을 진하게 불러일으켰다.


로망의 아파트에 한참을 지나 이사 오게 됐을 때 기분이 묘했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고 이제는 그저 낡은 아파트가 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쳐다보다 한 번은 살아야 할 운명이었나 싶다. 지나치게 눈치를 많이 보던 한 꼬마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지는 특별한 아침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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