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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8. 2021

최후의 기항지로 향하다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7

 

싱가포르에서 양륙 하려고 준비한 페인트 캔들

대만 동쪽 연안을 따라 언제나 힘차게 올라오고 있는 조류 흑조(黑潮)의 힘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보려고 잡은 침로를 따르다 보니 대만섬 그림자도 못 본 채 남행하는 항해가 되었다. 그렇게 겨울철에는 악명 높은 황천의 바다 바시와 바리탕 찬넬 모두를 두리뭉실하게 젖혀 가며 통과하다 보니, 바람은 자신의 힘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 배의 주기 운전을 살갑게 봐준 모양이다. 10노트의 속력이 계속 유지된 채 달리도록 뒤바람으로 도와주고 있다. 


회사와 연락을 가지어 싱가포르에 기항했을 때, 본선에 재고로 많이 쌓여있는 페인트와 수리용 파이프 등 철제 류를 하륙한다는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한참 때의 배 값에 대면 말도 안 되는 푼돈 수준의 액수로 고철 매선을 하는 것도 억울한 사정인데 이들 선용품 마저 그대로 함께 넘긴다는 건 너무나 손실이 큰 것이다. 한참 때 그 물건들을 실어주기 위해 들였던 공력이나 금액을 생각해도 사실 너무 아까운 일이다. 따라서 수속이 가능한 항구에 기항하여 합법적으로 하륙시켜 그런 물건이 필요한 자매선에 보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바람직한 일이 아닌가? 


이런 이유와 함께 마지막 순간 바이어에게 본선을 인도할 때 참여해야 할 최소의 인원만 남기고 잉여의 인원이 되는 선원들도 하선 조치하려고 싱가포르에 기항하려는 것이다. 이미 그런 상황을 승선 전 교육으로 통보받고 찾아온 몸이긴 하지만, 일부 선원을 하선시킨 후 싱가포르 해협과 말라카 해협을 통항할 때 출몰하는 해적 방지를 위한 당직을 설 생각을 하니 피곤에 절은 하품만이 연상된다.

 

게다가 이곳에서 하선하는 선원들이 양륙 할 물건들의 하륙 작업은 돌보지 않고 그냥 하선해 버릴 경우 남아 있는 선원들로만 작업하는 것 역시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일의 해결을 위해 회사에 연락하여 하선 선원들이 본선에서의 작업을 모두 끝마치고 내리도록 조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한다. 싱가포르에서 내리지 않고 남아서 치타공까지 가는 것으로 결정되어 있는 한국 선원들의 걱정이 태산 같았다. 

선교 Port 쪽 창에 비친 여명

이런 일련의 일들이 입항을 하루 앞둔 과정에서 미얀마 선원들의 싱가포르 하선을 치타공으로 미루어 마지막 항구까지 같이 타고 가기로 결정되어 한국 선원들의 걱정을 덜어준다. 그간 그들이 내린 후 지워지는 여러 가지 문제 중 해적 방지 당직을 염두에 두고 고민에 잠겼던 내 마음도 편해졌다. 그 대신 전 선원이 함께 가는데 따른 주부식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기 위해 이곳 싱가포르에서 사흘 분을 선적하도록 청하였다. 


너무나 미미한 주문량이라 선식 회사가 탐탁하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들은 우리 회사의 대리점도 맡고 있으니 도착하는 오늘이 싱가포르의 휴일이라고 해도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전언해 온다. 

보름달 밤의 휘황한 밝음 속에 해적 방지 당직이 무색하지만 그래도 열심히 당직에 임하는 선원들이 브리지 양쪽에서 철저한 경계를 하고 있다. 이곳은 남중국해의 아남바스 제도를 근접으로 지나야 하는 곳으로, 그 섬들이 해적의 소굴이란 소문이 나있기에 언제나 정신 바짝 차리고 지나는 해역이기도 하다.


아침 열 시 도착 시간에 맞추기 위해 속력을 좀 낮추어 가고 있으니 많은 배들이 두리를 추월하여 앞서 나간다. 그래 이제 마지막 남은 시간 싱가포르라도 잘 관찰하며 이 밤을 보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지 뭐! 하는 듯한 행보를 두리에게 주며 천천히 순항하고 있다. 

새벽녘, 밝아오는 싱가폴 해협 

새벽녘 도착한 싱가포르 해협 동쪽 입구 부근에서 육지의 그림자도 희미한 가운데 수많은 배들의 정박하고 있는 휘황한 불빛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배들의 많은 불빛이 결코 해운경기가 좋아서 만이 아니라 두리 같은 배들을 만들어 내려고 기다리고 있는 원인 제공이라는 현실도 깨달으며 착잡한 마음을 그 불빛 위로 보낸다.


*8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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