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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8. 2021

사이클론 BIJLI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14

두리를 바이어에게 인도해주는 과정에서 열심히 일해 준 일등항해사의 새벽 당직 때의 모습

드리프팅(*주 1)을 계속하고 있는 브리지의 적막을 깨고 EGC메시지로 인도 기상청에서 보내는 폭풍에 대한 태풍경보센터에서 보내는 정보가 수신을 독촉하는 경보음을 곁들인 후 들어오기 시작한다. 급한 마음은 들어오고 있는 전문을 함께 훑어보기 시작한다. 벵갈만의 남중 부에서 태어나 슬슬 크기 시작하여 하여간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아마도 우리의 목적지인 치타공이 행로에 들어 있음 직해 보이는 폭풍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직은 발생단계에서 북북서로 움직이는 폭풍을 경고하며 주로 어선들의 무모한 출어를 막으려는 경고의 메시지가 이채롭다. 그렇게 뱅갈만의 사이클론은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이 지방의 자연재해 제1호로 자리매김되어 해마다 시즌만 되면 그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이다.  

사이클론이 지나간다는 예보를 받은 곳에 자리한 모든 선박이나 해안가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폭풍을 전전긍긍하는 공포 속에 떨며 보고 있을 것이다. 아직 이곳은 그런 폭풍과는 거리가 먼 조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폭풍이 가려는 길의 어쨌든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찜찜한 마음이 슬그머니 들어선다. 회사에 상황 설명을 하고 WEATHER ROUTING COMPANY의 조언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이멜을 넣는다. 


본선 지원 업무에 수고가 많습니다.

본선 금항 항로 안내사(COMPANY)의 도움 없이 항차 완료하려 했으나 UTC 1200 15/04/2009로부터 WESTCENTRAL BAY OF BENGAL에 저기압 발생하여 북북서로 이동 중이라는 인도 기상청의 EGC기상 특보를 받았습니다. 시기적으로 좀 빠른 감이 있는 열대성 저기압의 발생이 본선의 입장에선 아주 달갑지 않은 상황이라 최대의 안전을 기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WEATHER ROUTING COMPANY(*주 2)의 조언을 받았으면 하오니 추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 시간 GMT 0005 16/APR 2009에 LAT.12- 37.9N , LONG 095-53.2E 에서 엔진 정지하고 드리프팅 중으로 0900(LT) 20/APR 2009에 치타공 도착 위해 명일(17일) 오전 중 재 항진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에 대해 회사에서 온 회신은,


1. 선장님 및 승조원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2. 상기건 잘 양지했습니다. WEATHER ROUTING SERVICE 업체에서 첨부와 같이 기상도를 보내온바, 검토하시어 본선 상황에서 ROUTING SERVICE가 필요하시면 빠른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급한 답장으로 되돌아왔다. 함께 보내온 컬러로 인쇄되어 나오는 폭풍의 예상 진로도를 보니 이미 BIJLI로 이름 지어진 사이클론(*주 3)이 달려가 상륙하려는 마지막 육지가 바로 치타공 유역의 해변임에 아연 긴장감이 엄습한다. 

하와이에 있는 미 해공군 합동 태풍경보센터에서 발표한 당시 싸이클론 BIJLI의 예상 진로도

그러고 보니 맨 처음 예상했던 17일에 도착했더라면 아마 지금쯤은 불안과 초조에 떨며 어찌해야 하나를 주문같이 외우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번 항차를 시작하며 뒤적여 본 항로지의 안다만해의 정보에서 뱅갈만 사이클론의 시작은 대개 5월부터 이긴 하지만 간혹 4월에도 있다는 언급을 보았었다. 그때의 심정은 이제 4월의 중반에 들어서려고 하는데, 이 시즌에? 하며 없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바람을 가지고 무시하는 기분으로 책장을 다음 장으로 넘겼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하여 바이어에게 인도작업을 하려는 때는 4월의 하순이니 어쩌면... 하는 찜찜함이 스치듯 지나치는 느낌 또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BIJLI에 대한 회사가 보내온 항로 선사로부터 얻어온 원색으로 인쇄되어 나온 예상 진로도에는 18일 새벽 폭풍의 예상 위치가 바로 우리가 17일부터 닻을 내리고 있을 예정이던 치타공 외항 상공을 지나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주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배가 그런 와중의 치타공 외항에 이미 가 있었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그 바람을 피해 무사히 바이어에게 넘겨줄 수 있었겠느냐? 의문은 절로 오싹한 기분을 불러준다. 


또다시 요청 이멜을 발송했다.


보내주신 기상예보도 잘 양지하였습니다.

예상 진로도에 의하면 현재 본선의 20일 09시 입항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으로 사료되오니 현 상황으론 ROUTING SERVICE를 받아서 안전하게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서비스 수배 바랍니다.


바로 도착한 회신은,


선장님, 안녕하십니까?

상기 내용 감사히 잘 양지했습니다. 

본선 매각 LAYCAN(*주 4)에 다소 여유가 있기 때문에, OCEAN ROUTING SERVICE를 붙이기보다는 현 위치에서 싸이클론이 지나가고 안전하다고 판단될 때까지 DRIFTING을 더 하다가 항해를 재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싸이클론의 움직임에 따라 변경 가능성이 있겠지만, 형 상황에서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항해를 재기하는 경우 BEST ETA(*주 5)를 계산해서 알려주시면 바이어와 협의 후 다시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선은 폐선장으로 가는 마지막 항차이니 최소한의 경비를 사용하며 일처리를 끝내려는 회사의 뜻을 이해하여, 루팅 서비스를 직접 받는 것보다는 회사를 통하여 정보를 수신하기로 맘 속에 작정하고 이차로 ETA를 20일로 바꾼 날짜를 회사로 통보하였다. 회사는 바이어와 합의하여 하루를 더 늦추어 준 20일에 도착할 수 있도록 조정하여 주었다. 폭풍 후의 어수선하고 위험한 시간을 피할 수 있게 된 것은 역시 행운이 따라 준 두리와 우리들의 기쁨이라 여기며 한숨을 돌린다. 


*각주

 *주 1 - Drifting : 닻으로 묘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관을 정지하고 의도적으로 표류하는 것. 조류의 영향을 적게 받고 통항하는 배가 적은 곳에서 행해야 한다

*주 2 - WEATHER ROUTING COMPANY : 해운선사와 선박을 상대로 어떤 배가 가려는 목적지까지의 기상상황을 미리 알려주며 그에 대응한 여러 가지의 대처할 사항도 함께 조언해주어 선박의 안전을 도모시키는 일로서 영업을 하는 회사. P&I가 본선 점검 시, 이런 회사를 사용하며 항해를 이루고 있는 지의 여부를 꼭 체크하는 MAJOR ITEM이기도 하다

*주 3 - 사이클론(Cyclone) :  인도양 북부, 인도양 남부, 태평양 남부에서 발생하는 강한 열대성 저기압을 말한다. 동남아시아(북서태평양)의 태풍, 북대서양과 카리브해, 북동태평양의 허리케인과 성질이 같다

*주 4 - Laycan : 선적이나 양하를 위해 약속된 항구에 도착시킬 예정일자를 말한다. 두리호의 경우, 선박 자체가 그 대상이 되는 상황임

*주 5- Estimated Time of Arrival : 도착 예정시각



*15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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