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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18. 2021

배를 세우고 기다려라

스물여덟 살 두리의 마지막 항해 - 13

배를 세우고 물결치고 바람 부는 대로 표류를 시작한 상태로 맞이한 저녁 무렵

이대로 가면 딱 사흘 후인 17일 09시에 치타공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와 있는 14일 아침 9시. 

회사로부터 어떤 내용의 지시가 들어와 있을까? 궁금증을 품으며 열어본 이멜에서 3일을 늦춰준 20일 09시에 치타공에 도착하도록 속력을 조정하라는 지시가 들어 있다. 우선 곧 기관 정지가 가능한지 여부를 기관실로 연락하여 문의하니 해수온도가 높아 벙커 체인지에 시간이 좀 걸려서 당장 기관정지하기가 힘들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Rung Up Eng.(*주 1)시켜서 장시간 전속으로 달리던 엔진을 다시 사용하기 위해 S/B Eng.(*주 2)을 하는 준비사항의 첫 번째가 연료유로 쓰고 있던 FO(*주 3)를 DO(*주 4)로 바꿔주는 일이다.

엔진을 조금씩 사용하거나, 장시간 정지시키는 경우 FO를 그대로 엔진 내부에 남겨두고 시작할 경우 엔진의 냉각에 따라 점도가 뻑뻑해져서 기관 시동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점도가 FO보다 나은 DO로 바꿔준 후 시도하면 그 점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엔진 스탠바이 때는 대부분의 배들은 기름 바꾸기(BUNKER CHANGE)부터 시행한다. 분초를 다투는 긴급한 상황은 아니니 느긋하니 BUNKER CHANGE 해도 된다는 언질을 주면서 기다리기는 하지만, 이런 류의 일 처리에 평소 신속함으로 길들여진 내 속내는 어째서 빨리 이행 못하고 이유를 대며 질질 끌고 있는가? 하는 오해의 소지가 높은 기관 사관에 대한 불만이 살짝궁 머리를 든다. 


그런 상황이 내재되어 엔진 세우기는 한 시진 가량 더 지난 10시가 되어서야 실현되어 안다만 해역에 멈추어 선 것이다. 예정했던 17일에 도착 투묘한 후 어떻게 준비를 하며 과업을 진행해야 하나를 은근히 고민하고 있던 중인데 우선 사흘이란 짧지 않은 기간을 벌게 되어 다행이란 마음부터 들어선다.


치타공 앞바다의 조류의 스피드가 만만치 않고 수심도 별로 깊지 못해 닻이라도 끌리는 날엔 적잖이 애를 먹을 것이라는 걱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착 후 정박 당직을 철저히 서도록 이미 미리 지시를 해두고 있지만, 막상 그곳에 가서는 또다시 어떤 어려움이 생길까 이것저것 점검하면서 은근히 안절부절못하던 중이다. 


그런데 회사의 지시 내용이 사흘 후에 도착하도록 엔진 사용해서 조정하라니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 이 아니 고맙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브리지에 올라가 정선 표류를 위한 점검을 계속하고 있는데 위성전화의 벨이 울린다. 지시를 내린 회사의 실무자가 걸어온 전화이다.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며 회사의 지시를 전해왔고 나는 회사 의도대로 해야 할 일을 조목조목 예를 들어 이해하였음을 들어내면서도 나중 이멜로 보고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기분 좋은 통화로 마쳤다.  


기상 악화란 변수만 없으면 그럴 수 없이 편한 시간이 될 수 있는 드리프팅의 시간이지만 그래도 물 위에 안전하게 떠 있기 위해서는 항해 중이던 때에 실행하는 당직과 같이 철저한 당직 상태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당직자에게 마음 가짐을 풀어놓지 않도록 주의시킨 후 브리지를 떠난다.

기관을 쉬게 하여 배를 세운 채로 맞이한 다음날 아침의 하늘 모습


(*각주)

*주 1 - Rung Up Eng. :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항지를 떠난 후 더 이상 항내 조선을 할 필요가 없어져 계속 전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시점. 이때 텔레그라프를 몇 번 반복하면 벨소리가 울려 기관실과 연락하던 상황을 표현하여 항해일지에 사용하게 된 말임

*주 2 - S/B Eng. : 항내에서 정박 중 출항을 위해서 기관을 사용하려고 준비하는 상황이거나 항해 중 전속으로 사용하던 엔진을 입항 등을 위해 다시 RPM을 조절하며 속력을 조정하는 엔진 사용을 하게끔 미리 기관을 준비하는 상황을 말함.

*주 3 - Fuel Oil, 주로 Bunker-C를 뜻하는 말

*주 4 - Diesel Oil : 경유




*14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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