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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Apr 03. 2021

Hazira, India

가장 인도스러운 인도항구

 우리가 Oman까지 가서 싣고 온 LIME STONE을 풀어주려고 찾아갈 항구는 인도의 HAZIRA라 하였는데 와서 보니 인도의 유명한 제철 회사인 ESSAR 그룹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이다. 


지난 며칠간, 해적이 날뛰는 해역을 지나기에 숨죽이고 조용하게 항해하는 우리 배와는 달리 쉬지 않고 비상연락용 전화인 VHF CHANEL 16을 함부로 조작하여 장난치고 있던 철없는 외국 선원들의 시끄러운 잡담에 눈살 찌푸린 채 목을 움츠리는 기분 속의 항해를 계속했었다.


그렇게 저조한 기분으로 오만의 카사브항을 출항한 지 사흘 만에 찾아든 항구가 도착해 보니 MAGDALLA PORT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인도 서부지역 뭄바이 북쪽에 있는 항구로 도착 세 시간 전에 PORT CONTROL을 불렀다.

 

Port Info.를 보니 우리나라 인천에 버금가는 높은 조고 차가 있는 항구이다. 한 밤중에 해당되는 이른 새벽에 호출하는 우리 배의 부름에도 항만당국에서는 잘 응답해주며 투묘지를 지정해준다. 그렇게 알려 준 곳을 찾아들어 투묘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지선을 끌고 있는 터그보트가 나타나서 본선 좌현 쪽에다 접안을 시도해 온다.


 어두운 새벽 그나마 구름 속의 음력 17일의 달빛마저 없었다면 아주 깜깜한 곳이라 그들의 접근을 아주 조심스레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결국 선수 부근에서 작은 접촉의 충격을 일으키며 접안하려던 바지선은 다시 떨어져 나간다.


이런 식의 접촉 사고로 인해 배의 외판에 구멍이 나서 드라이 도크에 들어가야 했었던 예전 탔던 배의 기억을 새삼스레 기억해내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서 철저히 조사하도록 급하게 당직자들을 내보내어 접촉 부위를 확인하도록 하였는 데 열심히 살펴보고 난 후 다행히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 해 온다. 


안심하며 좀 더 밝아진 다음에 접안하려고 그러는가 계속 머뭇거리고 있는 바지선의 모습을 주목하고 있는데 저만큼 본선의 선미 측까지 갔던 자세를 다시 잘 여미어 슬슬 재시도하는 자세이다. 이번에는 우현 쪽으로 다가온다. 그러는 동안 여명이 스며들듯 찾아와 밝아지는 속에 접안은 어느새 쉽게 끝나고 있었다. 


잠시 후 승선한 하역회사의 FOREMAN은 이곳에서는 싣고 간 짐의 일부 만을 덜어 내는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하며 대리 점원은 나중에 올 것이라고 알려준다. 좀 더 수심이 낮은 지역에 있는 본 항구로 진입할 수 있게 흘수를 낮추는 하역작업을 해주는 LIGHTERING ANCHORAGE에 도착한 것이다.


그냥 닻을 내리고 그곳에서 모든 작업을 끝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거기에선 극히 일부분의 양만 양하하고 나머지는 DEEP WATER TERMINAL이라는 신설 항구를 찾아가서 작업을 할 예정이라는 전언이 곧이어 이메일로 들어온다.

흡사 뻘밭과도 같던 Hazira의 앵커리지. 강한 조류로 인해 상당한 곤란을 겪어야 했다.

20일 새벽에 투묘한 후 6000톤 정도를 풀어주어 흘수선이 12미터 정도 되게 하고 나서 21일 낮에 SHIFTING을 한다는 스케줄이었다. 하나 실제 작업은 지지부진하니 이어져서 예정한 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하루를 더 소비하는 지연 상황이 벌어졌고 그동안 이곳 특유의 빠른 조류의 영향으로 닻이 잘 박혀 있질 않고 끌리는 일을 당하여 네 번에 걸쳐 발묘와 투묘를 계속하는 수난을 당하였다.


수난은 그렇게 자연에게만 당한 게 아니었다. 우리와 같은 선원과 선박을 위해 일하고 있는 대리점원에게서도 푸대접 아닌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통상 대리 점원이라면 투묘 - 도착 - 즉시 찾아와야 하는 게 관례 이건만 이곳의 대리 점원은 도착 후 하루 이상이 지난 후에야 세관을 대동하고 찾아왔다.


이렇게 늦게 입항 수속을 하러 온 대리 점원은 자신이 우리의 상전이라도 되는 듯이 거들먹거리는 태도로서 선내 본드 스토아를 점검하고 부식 창고를 살피어 저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빼앗는 게 마치 맡겨 놓은 물건이라도 찾아가듯이 한다. 그것은 이미 대리 점원이라는 해운 서비스업에서 가장 앞줄에 서 있는 첨병으로서의 자세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고 세관이라는 조그마한 권세를 가진 관의 앞잡이로서 그 권세를 등에 업고 우리 선원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행세하려는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첫 대면을 해 놓고서도 나중 출항할 때에는 자신들이 우리들 마음에 흡족하게 일을 잘했다는 식의 문구를 나열한 추천서에 서명을 해달라고 서슴없이 손을 내미는 것이다. 


물론 그런 그들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어차피 형식적으로 써 줘야 하는 서류라면 이것 만은 내 뜻대로 하리라 작정하고 <대리점원>이란 문구를 요구한 그들의 문장 속에 진짜로 열심히 잘해주고 있었던 <PILOT>라는 문구로 바꿔 넣어서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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