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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희태 Mar 08. 2016

바다 위의 황혼

항해 중에 만나는 하늘의 풍경


저녁식사 때 평소보다 숟가락을 바쁘게 놀리며, 힐끔거리듯 바깥 창 쪽을 쳐다보는 나의 모습을 식탁의 다른 동료들이 이상하게 여기는 눈치다.   

“빨리 식사 끝내고 저녁노을을 보려고...” 나의 평소와 달라있던 식사 태도를 의아해하던 그들은 내 대답에 또 한 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자주 쳐다본 창밖으로는 지금 맨눈으로도 직접 볼 수 있는 동그랗고 티 없이 새 빨간 저녁 해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려는 준비에 한창 몰두하고 있었다.   

항해중에 만나는 노을은 땅에서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짙은, 그렇지만 맑고 푸르른 하늘이 수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연해지며 어느 부위에서 부터는 슬그머니 붉은 색조가 깃들여지며 황혼의 아름다움을 잉태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식사를 하고 난 후 한참 동안 한담을 즐기며 다른 사람들의 식사 끝나는 시간까지 기다려주며 식탁을 지키고 있었지만, 오늘은 황혼의 아름다움을 연출하려는 시간이 너무 급박히 다가선 때문에 숟가락 놓기가 바쁘게, “저녁노을 구경하러 브리지에 가려고..., 먼저 나가요.” 하며 일어섰다.  


브리지에는 일항사의 식사교대로 당직을 서고 있는 삼항사와 실습하기 위해 승선하고 있는 해양대학 학생인 실항사가 있었지만 아무도 서쪽 수평선에 걸리는 일몰 시점의 저녁 해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실항사 너 육지에서 저렇게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구경한 적 있어?” 하며 묻는 나에게 처음에는 무슨 이야기인가 의아한 표정이었다가 눈길을 저녁노을에 멈추면서, 

“없었습니다.”하며 계속 진행되는 붉은 동그라미가 연출하는 황혼의 풍경에 눈을 맞춰준다.  


“이런 건 육지에서 사는 사람들은 결코 가져볼 수 없는 우리 선원들만의 축복받은 일이지.” 하며 부연하는 나의 설명에 삼항사 마저 다가서더니 새로운 기분으로 황혼을 구경한다.   

그러나 이 저녁에 보인 황혼은 좀 단조롭고 밋밋한 형태이고, 순식간에 지나치는 빠름마저 있어, 순간순간 변하는 색조가 뱉어 내는 가슴을 싸~아 하니 휩쓸어 지나는 생의 감동을 연출하기에는, 역부족의 모습인 것 같다.  

나는 평소 선원으로서 처음 배를 타는 사람들에게 승선하여 얻게 되는 멋있는 일의 표상으로 선원들만이 볼 수 있는 대양에서의 황혼이나 일출 광경을 손가락 꼽아가며 강조하여 왔었다.  


사실, 선원들만의 구경거리인 이 황혼에는 절묘한 조화 요소들이 몇 가지 포함되어 있는데 그것은 막판에 맨눈으로 볼 수 있는 붉은 태양, 잔잔하다 못해 매끈한 바다, 가지가지의 푸른색이 어울린 하늘, 거기다가 필요한 곳에 적당히 흩뿌려 붉은색으로 물들게 하는 구름들이다.  


이들이 함께 이루며 시시각각 변해가는 색깔 잔치가 거울 같은 해면 위로 하나씩 더 비칠 때에, 저녁 산보라도 나온 날치 몇 마리가 날갯짓 소리까지 보태주며 기다란 포물선을 그리어 해면 위로 자디잔 파문을 남겨준다면, 또 그로 인해서 고요한 정적이 오히려 흠씬 더 묻어나게 배려가 된다면, 우리는 완벽하고 처절한 석양의 아름다움을 볼 수가 있다.  


헌데, 지금 보이는 황혼에서는 구름의 절묘한 배치가 모자라고, 다림질당한 듯 매끈한 해면도, 날아오르는 날치도 없고, 붉은 해 역시 평범한 색깔로, 그저 먼 길을 재촉하는 길손 마냥 수평선 너머로 바삐 떨어지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   


그러기에 저녁놀의 광경에 눈을 돌렸던 삼항사나 실항사가 아름다운 풍경에 계속 빠져들지 못하고 태양이 수평선 밑에 숨어들기 무섭게 어둠으로부터 눈을 돌리며 자신들이 하던 일로 돌아가 버리는 것이겠지.....  

황혼으로 향해가던 대서양의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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