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지기까지 30여 년의 세월이 걸린 약속
참으로 기나긴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 스스로 예언(?)하며 굳게 믿고 있던 내 말과 내 생각이 하나도 틀리지 않게 그대로 맞아 떨어진 일이 지금 우리 배 안에 생겨 있기에 깊은 감회에 젖으며 1997년 2월 초 어느 날 이 글을 씁니다.
때는 1962년도 늦은 봄이었다.
창문을 열어서 환풍하는 영도 동삼동에 있는 해대 학보사에는 그날따라 계절답지 않게 후덥지근해진 실내를 더욱 덥히는 열기가 있어 모두들 비지땀을 닦아가며 한 마디 씩 하고 있었다. 예쁘장한 글씨로 꼼꼼하게 박아 쓴 편지 한 통을 돌아가며 읽고 나서는 입 있는 사람은 저마다 한몫 거들며 열을 올렸는데, 일의 발단은 바로 이런 내용 때문이었다.
“저는 부산 H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OOO이라는 학생입니다.”
-중략.-
“제가 이 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저 넓은 대양을 주름잡으며 씩씩하게 살아가는 마도로스가 되려고 귀교에 입학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하략.-
대충 이런 뜻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편지였는데 수신인도 특정인이 아닌 그냥 해양대학으로 되어 있으니 학교 당국은 답장을 하여야 하는 번거로운 처리를 우리 학보사에게 넘겨주었다. 그 답장을 구하기 위해 문제의 편지를 편집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일차 읽어 본 후 회답을 위한 토론 아닌 토론이 벌어진 것이다. 편지 내용을 보건데 그 여학생은 무책임하게 써 본 그런 편지가 아니라 진지하게 선원으로 승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파 애쓰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다.
시쳇말로 한다면 좀 튄다고나 할까? 하여간 남 앞서 가는 사고방식을 가진 당돌하고 야무진 여학생 일 것이라는 느낌이 편지의 곳곳에서 풍겨지고 있었기에, 우리는 그냥 장난 삼아 아무렇게나 대꾸하여 답장을 보낼 수가 없는 진지한 분위기였다. 몇 시간의 열띤 논쟁을 마무리 짓고 그 여학생이 실망하지 않도록 다독여 주며 현실은 아직 여학생의 해양대학 입학을 허락지 않지만 - 해양대학교 승선학과에 여성들의 입교가 허락된 것은 1990년이었다 - 언젠가는 금녀의 문호도 활짝 열려 바다에 뜻을 가진 여학생들을 받아들일 날이 올 것이라며 늦어도 2-30년 안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장담까지 덧붙여서 답장을 마무리 지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내가 이야기했던 승선학과에 여학생이 입교한 일이 벌써 몇 년 전에 이뤄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에게 직접적인 연관을 짓게 본선으로 실습을 위해 여성 실항사가 승선한다는 사건의 통보는, 그런 편지를 받아 본지 무려 35년 만에 실감 나게 나타난 것이다. 마치 “당신의 예언은 너무나 긴 시간이 지나 이제 겨우 이뤄졌군요!” 하고 알려 주려는 세월의 뜻인 양 다가서고 있다.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린 세월은 당시의 그 여학생을 이미 초로의 희끗희끗하고 초라한 머리숱을 가진, 어쩌면 할머니로 만들어 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여학생을 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내 맘 속에는 항상 10대 후반의 발랄한 여학생으로 자리 잡고 있어, 이번에 승선하는 실항사가 마치 그때 그 여학생이 30여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나타난 것 같은 감회마저 든다. 본선에 승선하게 되면 큰 뜻을 품고 입학한 해양대학에서 그동안 갈고닦았던 실력을 모두 발휘해 앞으로의 해상생활 실무에 대비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젊은 꿈의 무대인 이 넓은 바다 위에서 현장의 경험을 습득하기 위해 다음 항차부터 우리와 함께 생활하게 될, 그 실습항해사는 박 OO 양이라고 회사는 전해주고 있다.
모처럼의 실습 기회 열심히 노력하고 챙겨서 뜻한 바의 결실을 모두 이뤄내어 우리 해운계가 필요로 하는 그야말로 떠오르는 별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