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인터넷 쪽지로 아래와 같은 요청을 받아 몇 번의 망설임 끝에 그에 대한 대답을 올린다.
질문은 모두 8개의 문항으로 되어 있는데 생각이 많은 고등학생이 보낸 글이라는 느낌을 그 짧은 행간에서지만 느낄 수 있었다.
되도록 편하고 간단하게 알리려고 했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이 너무 뻗댄 것도 스며 있는 것 같아 스스로를 한번 다듬기도 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항해사를 꿈꾸는 고등학생입니다. 여러 가지 질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대답에 앞서 질문자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봅니다.
지금부터 50년 전쯤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배를 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던 시절 부산 영도에 있던 해양대학 학보사로 - 학교 교무처로 온 편지였지만 마땅한 수신처가 없어서 학보사로 보내졌던 것임 - 부산에 있던 모 여고 졸업반 학생이 해양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을 물어 온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해양대학이 지금 같은 종합대학이 아니라 배를 타는 상선 사관만을 양성하는 항해/기관 두 과로 운용되던 단과대학 시절이라 해양대학 입학의 의미는 우선은 배를 타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던 때였죠.
그 여학생에게는 아직 여자에게 개방되지 않은 해운계-선원 세계-형편에 대한 양해를 구하며 언젠가는 여자들도 승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란 좋은 대답을 해주는 답장을 써서 보내주었습니다. 비록 그녀의 소망에 대해 희망적인 대답을 해줄 수 없는 그때의 상황이었지만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날 무렵인 1990년, 해양대는 실제로 금녀의 빗장을 풀어 성별에 차별 없이 모든 젊은이에게 개방이 되었지요.
이제 나에게 항해사를 꿈꾸며 물어 온 고교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은 심정은, 비슷한 물음을 50여 년 전에 받았을 때와 별 다른 차이가 없는 난감한 내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당시의 여학생은 진짜로 배를 타고 싶어도 승선할 수가 없다는 한계점이 그 후 30년 정도 흘러서야 해결이 되었지만 이미 그때는 승선하고픈 마음이 와해되었을 거라는 점이 지금 물어 온 학생과는 다른 점이겠지요.
이젠 누구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신체검사에 결격사항이 없다면 입학이 되는 것이고 그 후 4년간 수학하여 졸업하면서 관련된 해기면허만 취득하면 해운회사에 입사하여 해상직원으로 승선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은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죠. 그러므로 이제는 현역에서 퇴역을 한 내 입장이기에, 어쩌면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테두리는 크게 벗어나진 않더라도, 약간은 구닥다리의 의견일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 앞으로 혁신적인 과학의 발달이 승선의 범주를 예전과 확연히 구별되게 달라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여기며 물어본 항목대로 대답을 풀어보기로 합니다.
1. 배에서 인터넷 - 와이파이 - 돼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항해 중에 인터넷 사용을 하려면 통신용 인공위성을 사용하게 되는데 그 사용료가 너무 고가라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으니 차라리 안된다고 이야기하는 게 낫겠지만 배의 특성에 따라 - 예: 연구선, 통신 부설선 - 와이파이를 무제한으로 사용하고 있는 선박들도 있다고 하더군요. 마찬가지로 항구에 입항시에도 그 나라의 IT산업의 질에 따라 가능한 나라도 있고 아직은 안 되는 나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터넷은 거의 상용화되어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터넷을 즐길 수 있죠.
2. 배에서 개인 시간은 몇 시간 정도 가질 수 있나요?(하루)
이 답변은 3항의 답변과 중복될 수 있어 3항에서 자세히 하도록 하지요.
하여간 자신이 하루에 책임져야 하는 당직 시간을 뺀 나머지 시간은 모두 개인 시간이지만 예측할 수 없는 비상사태가 있게 되면 누구라도 참여해야 하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배에 비상사태가 생겼는데 자신의 당직시간이 아니라고 나몰라 하는 경우는 있을 수 없겠지요? -배 안의 모두는 공동 운명체이니까요.-
3. 배에서 주로 몇 시간 일하나요?
선장, 기관장은 특히 선장은 하루 24시간이 다 근무 시간입니다. 단지 직접 당직 시간을 부여받아 행하는 게 아니라 형편과 필요에 의해 책임을 져야 하는 시간이 되므로 그런 뜻의 - 24시간 당직 - 말을 하고 있는 거지요.
여기서 현행 상선 사관들이 항해 중 갖게 되는 당직 시간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2항/기사: 00-00/04-00, 12-00/16-00,
1항/기사: 04-00/08-00, 16-00/20-00,
3항/기사: 08-00/12-00, 20-00/24-00.
이런 자기 당직 시간 이외의 시간은 모두 자신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정박 중에는 대충적으로 당직시간이 정해져 있긴 하지만 각선의 그때 그때 형편에 따라 조절될 수 있고 그래야 서로 당직 시간을 바꿔가며 상륙하여 구경도 할 수 있는 거지요.
4. 위험한 일 많이 하나요?
위험의 범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르는 질문이지만 일반적으로 보험에서 선원의 대우가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작업 자체가 언제나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철판 한길 아래에 지옥을 두고 살아가는 승선 생활에서 그 지옥을 부추기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는 작업 - 그 자체가 위험한 일이 아닌 게 있을까요?
그러나 이런 어려운 일들을 무사히 해내어 목적한 바의 작업을 완수, 이루어 내었을 때의 기쁨은 사람으로서는 한번쯤 겪어 간직할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런 기분에 배 타기가 좋고 신난다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5. 다른 나라에 도착하면 하루 정도 여행할 수 있나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입항하면 출항할 때까지의 기간 중엔 상륙을 허가해서 기항지 부근을 구경할 수도 있습니다.(미국 등 비자가 필요한 나라에서는 비자 준비가 안되어 있으면 외출이 허가 안됨.)
허나 선원으로 승선했다는 것이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으로 고용된 상황임을 인정한다면, 그 범위 내에서 상륙하여 움직이는 것이야 막을 수 없는 인간의 권리라고 하겠지만, 여행이란 단어를 쓸 수 있게 까지 시간-당직 시간, 출항 시간 등-을 어기면서 까지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건 결코 아니지요.
6. 항해사 공부는 고등학교 공부에 비유하면 어느 정도 난이도가 되나요?
난이도? 글쎄요 본인이 싫어만 안 한다면 얼마든지 따라갈 수 있는 범위의 공부입니다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상태의 정상적인 공부를 한 상태로 입학했다면 충분히 따라가며 해 낼 수 있다고 보면 됩니다.
7. 항해사가 기관사도 될 수 있나요?
한때 운항사라는 항해, 기관 모두를 아우르는 면허제도가 생겨서 시행하였다가 곧 철회된 적이 있는데 - 제 사견으로는 너무 앞선 생각이었다고 봅니다 - 기관사와 항해사의 수업이 아예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관사 면허를 가진 이가 항해사 면허를 위해 다시 공부하거나 반대로 항해사 면허가 있는 이가 다시 기관사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은 무척 고단한 일이겠지요? 답은 가능하긴 하겠으나 그런 선택을 하는 이는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하여간 한 우물을 파는 기분으로 하는 게 좋겠지요. 더하여 두 개의 면허를 따는 일을 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일하는 데에는 두 배의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니까요. 참고로 선원이 되는 길은 해사고등학교 진학 후 승선, 한국 해양수산연수원 수료 , 군산대, 부경대 해양 관련학과 졸업, 목포해양대나, 한국해양대에 진학 후 승선하는 길이 있습니다.
8. 미래의 한국 해운업계 전망은 어떻습니까?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해운을 전망하려니 세상 모든 산업이 한 모퉁이의 돌들 마냥 한몫을 거들며 만들어 내는 게 해운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왜냐하면 인류가 살아가며 필요한 물품을 지구적으로 분배 소통시키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그 물동량을 움직여 줘야 하는데, 그 일을 해내는 산업이 바로 해운이니 그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궁극적으론 해운이 없으면 인류가 먹고사는 모든 분배를 대량으로 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지역에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오르는 것이 해운 시황의 각종 지표이고 운임이지요.
현재의 해운 시황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시기이므로 언제 바닥을 치고 다시 오르게 될지를 기약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게 요즘의 해운계 분위기이지만 지금까지 역사가 보여주던 패턴으로 봐서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활기를 찾는 시황이 해운계를 찾아 오리라는 기대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승선을 위한 공부를 하고 실제로 승선 생활을 하는 경우가 되었을 때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그 위치를 잘 감안하여 앞날을 바라보는 일에 필요한 공부를 개인적으로 승선 중에도 게을리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언젠가는 그야말로 해운계에서 한 소리하며 기업을 운영할 수 있는 기회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큰 꿈을 가지고 한 번 도전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인생을 먼 바다 길 떠나는 항해>에 종종 비교하는 데, 이제 그 이야기의 주인공 되어 나선다는 것,- 청운의 꿈을 가진 젊은이라면 한 번쯤은 나서야 할 도전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