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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경찰의 임검

반전의 의미를 꿰뚫은 임검 방법

by 전희태
JJS_5980.JPG 늘 점검에 대비하여 입항시에는 깨끗하게 청소해주고 있는 브리지.


본선에 대한 환경보호를 위한 검열을 실시할, 검열관의 승선이 있을 거라는 연락을 미리 주어 기다리게 하던 해양경찰이 승선하였다.

깍듯이 예의를 차리며 사무실로 안내하여 먼저 서류 검열부터 시작하였는데 농담도 섞어 가며 이야기하는 분위기로는 별로 까다롭게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한 번씩 거드는 행색으로 봐서는 무언가 꼬투리를 잡으려는 기미도 느끼게 한다.


드디어 GARBAGE RECORD BOOK에서 본선에 올려진 작년 한 해 동안의 페인트 통 총숫자가 모두 얼마이며 그중 사용한 것과 남은 것의 통수가 각각 얼마 인가를 물었다.

지금까지의 관례로 보면 좀 무리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수급한 페인트의 숫자를 더하여 총량을 알아내고, 그간 사용한 후 빈 통을 육상에 양륙 처리된 총량을 조사시켰다.


이때 검열관은 똑같이 생긴 통이라도 물이 담겨있는 것하고 기름 등 오염물질이 담긴 것 하고는 내용물을 쓰고 난 후 통을 처분하는 방법이 달라야 되겠지요? 하고 묻는다.

물이 담겼던 것은 해중에 투기해도 괜찮으나 기름이 담긴 거나 페인트가 남아있는 통은 그대로 버릴 수가 없으니 육상으로 양륙해야 되지 않겠느냐? 는 물음이다. 따라서 우리 배에서 쓰고 난 후의 페인트 통을 육상에 양륙 시켰다는 기록이 있는가를 묻는데 우리는 모든 통을 그냥 캔이라고 적어서 몇 Kg 양륙 했다고 적힌 하륙증 밖에 없어 그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앞으로는 정확하게 <페인트 빈 통 몇 Kg>으로 정확히 이름과 양을 적어 양륙 시키겠다는 언약을 주며 그 지적 사항을 감사히 생각하고 잘 명심하여 따르겠다고 이야기하며 그 상황을 받아들이려 했는데, 좀 전까지 부드럽게 대화하며 쓰던 제스처나 어조에서 180도 벗어난 고압적인 태도로 그 일에 대한 경위를 확인서로 써내라고 일항사에게 요구를 한다.


그리고 하는 말이 우리 회사가 그 일을 가장 잘 처리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에 꼭 잡으려고 작정을 하고 우리 배에 올라왔다는 식의 이야기 끝에 그래서 미리 준비를 하라는 뜻에서 검열 올라간다는 귀띔을 사전에 해주었던 것이라는 말까지 한다.


검열 중간중간에 나오는 말로 봐서 그는 일찍이 배를 탔었고 기관장 직무도 경험했다니 우리 입장에서 보면 가장 가깝지만 또한 가장 까다로울 수 있는 상대인 것이다.


이제 갑판부 쪽 검열에서는 페인트 통을 해중에 투기한 것으로 입건될 수 있는 꼬투리를 제공한 셈이고, 해양경찰관은 오염물질의 해양 무단투기라는 범법행위를 적발한 것으로, 그들의 표현을 따른 다면 한 건 올린 것이다. 어쨌거나 사무실에서의 서류 검열은 그 정도에서 끝났다.


이번에는 다시 현장인 기관실을 둘러보겠다며 기관장을 앞 세워 밑으로 내려가면서, 일항사에게 자신이 갔다 오는 동안에 확인서를 써 놓으라는 으름장을 잊지 않는다.

이제 배에서는 그의 말 대로 입건되면 벌과금이 부과되거나, 처벌이 더 커지면 혹시 구속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비상이 걸린 상황이 되었다. 사무실에 앉아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를 곰곰이 생각한다.


배의 책임자라는 허울 좋은 이름이나, 선주 대리라는 직책이라 어찌 된 건지도 모르는 일로 인해 고액의 벌과금이나 구속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내 직책의 한계성이 한심하기도 하지만, 어찌 됐던지 회사도 알고 대처해야 하니 담당 직원에게 급히 알리도록 하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는데도 기관실로 내려간 사람들은 올라오지를 않고 시간만 지나가고 있어 살짝 추이를 알아보니, 이번에는 기관실에서도 무엇인가 지적당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이야기야? 기관실에서 발견된 일이라면 작은 일이 아닐 텐데.....


어느새 서슬이 시퍼레진 임검관이 기관장에게도 확인서를 쓰라고 하며 부두에서 기다리고 있던 같이 온 관리마저 올라와서 조사에 합세시킨다.


본선이 잘못했다는 그 확인서 한 장을 써주고 나면, 그걸로 당장 하선당 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앞으로의 승선 생활마저 영향을 받으며, 벌과금으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도 적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기관장이나 일항사 모두가 얼굴색이 변하는 상태이다. 결국 선박의 책임자로서 나도 무사하지를 못 할 것이다. 어쩌면 본청으로 호출당해 내가 이일의 최후 당사자로 조사받고 기관장이나 일항사는 보조하는 참고인으로 다시 조사받을 것으로 짐작해 보는 것이다.


배 타는 걸 천직으로 알고 나이가 허락하는 날까지 승선 생활을 하여 명예롭게 은퇴하리라 마음먹었던 내 인생도 막판에 뒤집기 당하듯 작은 오점을 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득하기만 하다.


사실 나는 어제 승선하여 교대한 입장이므로, 그 지적 사항에 대해 크게 책임질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배의 책임 선장이었을 때 생긴 일도 포함되는 셈이니 그야말로 책임을 안 느낄 수 없는 형편이다. 하나 마음속 한 가닥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통사정을 해 볼까? 아니면 붙잡고 늘어져야 하나? 갈등을 겪고 있는데, 마침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미를 찾아냈다.


그 검열관이 본선의 일기사와 전문학교 일 년 후배 관계로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지적된 사항을 앞으로는 제대로 처리하는 방향으로 실행할 것이며 이번 일을 계기로 한층 더 분발하여 환경보호와 오염 방지에 최선을 다하는 계기로 각오를 다지겠으니, 구두로 지적하는 일로 끝을 내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보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로 인증서를 쓰라고 이야기하여 결국 본선의 두 사람은 인증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 두 장의 서류를 가방에 넣어 그가 우리 배를 떠나면 그 후는 원하지 않아도 찾아올 수밖에 없는 법적인 문제만이 남는다.

그로 인해 세 사람이 받아야 할 불이익의 방향을 가늠해 보고, 회사에 대한 면목도 생각하며 당사자들은 초조감에 망연자실해 있었다.


-이 것(인증서) 쓴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지요?

본선에서 내려갈 준비를 하는 것 같던 그가 서류를 들어 보이며 말을 건다.

-................... ?

그에게 얼굴을 돌리며 우리는 의문에 찬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렇게라도 써 본 사람하고, 아예 안 써 본 사람하고는 해상오염에 대한 생각하는 차원이 크게 틀립디다. 그래서 억지로 쓰라고 강요했던 것이지요...

-........................???

무슨 뜻으로 저렇게 이야기 하나 의아해하는 우리들에게

-이번은 처음으로 여겨 말로만 경고 하지만, 다음에는 말이 필요 없을 겁니다.

하며 갑자기 그는 들고 있던 문제의 인증서를 찢어버려 준다.


잠시 침묵 속에 찢어진 서류를 쳐다보고 있다가 모두들

-잘 알겠습니다. 선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이상의 더 무슨 할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좀 전 까지도 그렇게 밉게 보이던 그가 그랬던 만큼 더욱 고맙고 이런 식으로 현장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방법도 있구나! 하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며 안도의 한숨을 가만히 내쉰다.


-점심 식사나 하러 내려갑시다.

말은 그렇지만 취사부에서는 거의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지경까지 시간이 지나간 것이다.

아침식사 지난 두 시간쯤 후인 열 시경에 올라와서 검열을 시작하였는데 점심시간이 한참이나 지난 오후 세시가 넘어서야 일을 끝냈으니 배도 고플 것이다.


-예전에 어느 배에서 우리가 배에서 식사를 한다고 투서한 선원들이 있었어요.

하는 말을 검열 도중에 하면서 그래서 이 배에서도 밥을 먹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했었지만, 그렇다고 숟가락 하나 더 놓으면 되는 한국적 인심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이미 식어 있는 점심 식사를 다시 데워내느라 부산을 떨고 있는 식당으로, 계속 안 하겠다고 사양하는 그들을 안내하여 함께 식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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