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할인 시간대 이용 전화를 하다

투묘 정박 중의 일과 진행

by 전희태


INMARSAT-A(5467)1.jpg INMARSAT-A 통신 장비 모습.

INMARSAT-A의 태평양 위성을 사용할 때, 우리나라의 금산 지구국을 이용할 경우 우리나라 시간 저녁 10시부터 두 시간 30분 간이 할인요금이 적용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E-MAIL을 보내고 받으면 그만큼 통신 요금이 저렴하게 지출되므로 그에 맞추기 위해 뉴캐슬 시간으로 자정이(우리나라와는 두 시간의 차이가 있으므로) 좀 지나고 난 후 통신을 시작했다.


한밤중이라서 일까? 전화는 단번에 걸리긴 했지만, 중간중간 전파가 나쁘다는 표현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래도 수신은 계속되고 있다.

컴퓨터의 열린 창을 통해 나타난 통신 용량이 자그마치 254,772 Bytes에 수신시간이 614초 걸리는 대형 E-MAIL 전문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10여분이 지났다.


회사에서 보내주는 PANO WEEKLY라는 회사 신문(정치/경제 분야와 스포츠 등의 여러 가지 뉴스 성 이야기를 짧게 코멘트하여 실어 준 것)이 있을 것은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 신문은 3만 바이트 정도로 A-4 용지 6장인데 이번에는 무슨 서류가 보내지려고 이렇게 많은 용량을 차지했을까?


궁금한 마음은 어제 받았던 <정년 조정 동의서>라는 이름으로 정년을 자그마치 4년이나 축소시키는 일을 진행하는 회사가 그 후속의 어떤 일들을 진척시켜서 연락해 오는 게 있는 때문인가? 지레짐작을 내 맘대로 해본다.


다른 때와 비슷한 용량으로 들어온 예상한 회사 신문이 뜨고 나니 용량을 많이 잡아먹은 내용이 뜨는데, 그것은 도선사가 승선하여 조선했을 때 발생한 선박 사고에 관한 고찰을 관계자들에게 교육할 수 있게 보내주는 공문으로 참조할 해도의 일부분 등 그림이 들어 있어서 그렇게 많은 바이트를 잡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두를 프린터를 통해 뽑아내기까지 하니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어버린다. 잠잘 시간을 빼앗기고 있었다. 마침 당직을 마치고 내려온 3 항사에게 여러 사람이 돌려볼 신문은 네 부를 복사하고, 공문은 필요한 부서인 갑판 사관들이 보게 한 부만 카피하도록 시키게 되어 겨우 그곳을 빠져나와 잠자리를 찾게 되었다.


침대에 누었지만 자야 할 시간을 놓쳤으니 잠도 빨리 찾아오지 않고 어제 받아 들었던 소식인 충격적인 회사의 구조조정에 당하게 된 내 신세가 자꾸 떠올라 꼬리를 무는 잡념으로 억지로 감고 있는 눈만 어둠 속에서 피로에 지쳐간다.


혹시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이나 잡념 같은 고민으로 인해 나의 건강을 해침 받는 다면 너무 억울할 것이란 생각을 떠올리며 스스로 잠에 빠져 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뜨니 새벽이면 늘 깨어나는 시간인 네 시이다. 세 시간도 못 잤던 모양으로 오늘은 피곤하니 좀 더 자겠다고 그냥 누워 있었다.

얼마 안 지나 다시 시간을 확인하니 어느새 6시 30분이다. 이젠 일어나야지 주섬주섬 옷을 찾아 입고 아침 맞이 준비를 한다.


어제 오후 들어 날씨가 점점 나빠질 것으로 예상하고, 투묘 중일 때의 한밤중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기관의 긴급한 사용에 대비하여 S/B ENG. 할 경우를 생각해 두라고 기관장에게 이야기했을 당시, 사실 기관부에서는 보일러를 꺼놓은 상태로 오늘 에코노 마이저의 청소를 하려는 예정으로 있었다.


하나 비상시를 대비한 일이니 할 수 없이 기관의 사용 유지를 위해 보일러를 다시 점화해 두겠다고 했고 실제로 저녁식사 후에 보일러는 다시 가동되었다.


결국 오늘 하루 작업하려고 했던 보일러 청소 작업을 기관의 불시 사용에 대처하려고 포기한 셈인데, 막상 아침이 되고 보니 나빠지리라 우려했던 날씨는 오히려 더욱 화창하게 맑아져 있다.

바람까지 잦아드니 파도는 더욱 잔잔해졌고 엊저녁의 보일러 보수작업 준비를 철회한 것이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판단에 의한 괜한 일로 되어버린 셈이다


그러나 호주 남서쪽 바다에서 동쪽을 향해 맹렬한 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는 저기압의 덩어리를 기상도에서 확인하였을 어제만 해도 녀석이 조금만 더 위쪽으로 움직이기라도 하면 그 영향이 우리가 있는 이곳 해안에 맹렬한 바람을 일으킬게 뻔 한 상황이었다.


현 시즌의 기상 패턴이 그렇게 달리는 경향이 이따금 있으므로 불시에 예상되는 기상악화를 외면한 채 날씨가 안 나빠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만으로 기관사용이 불가한 상태로 밤을 맞이한다는 건 뻔히 보이는 대형 사고를 대비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나 몰라라 팽개쳐두는 지휘관으로서는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처사였기에 취했던 조치였다.


따라서 정박 중일 때, 특히 외해와 잇닿은 해역에 투묘 중에 있을 때에 엔진을 어느 때라도 필요시는 즉시 사용할 수 있게 준비해 두라는 지시는 책임자로서 기본자세인 것이다.

원칙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하룻밤 자고 난 실제의 날씨를 아침에 접해 본 결과가 예상과는 달리 너무 좋은 날씨라서, 기관사용 준비 지시를 안 내리고 가만 두었으면 잘 진행되었을 보일러 청소 작업할 수 있는 시간을 빼앗은 격이 되었다는 식의 부정적인 정서를 가질게 아니라, 그냥 아아! 좋은 날씨가 와서 얼마나 감사한가? 하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수긍해야 할 것이다.

어찌 되었건 결말이야 그리 났지만 그래도 나는 날씨가 이렇게 편안해 있는 것이 정말로 말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것이다.


며칠째 계속해 온 갑판부의 일과였던 7,8,9번 홀드의 해치 커버의 정비가 어제로 끝났지만, 오늘은 나쁜 날씨로 여겨지어 날씨가 좋은 다음날로 미루려던 1번 홀드의 청낙 작업을 그냥 실시하기로 한다.


선적하고 난 후에 항해할 때에는 아무래도 선수 쪽에서 오는 파도로 해수의 침입이 잦은 앞쪽 홀드들은 청낙 작업하기가 난감하여 좋은 날로 밀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예 손도 못 대고 항해를 끝낸 경우도 많았기에, 현재 녹이 피어난 상태가 뒤쪽보다는 심한 편이기에 짧은 시간이라도 기회가 닿으면 이렇듯 즉시 시작부터 해놓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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