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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홍 Apr 11. 2022

시니어를 꿈꿨던

예전에 시니어를 꿈꾸며라는 글을 발행했었다. 시니어 개발자란 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왜 시니어 개발자를 원하는지 생각을 흘려보냈던 글이었다. 그때, 시니어 개발자가 없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에 대해 몇 가지 안들을 썼었다. 1) 내가 시니어 개발자가 된다, 2) 외부의 조언자를 구한다, 3) 시니어 개발자가 없어도 발전할 수 있는 팀이 된다, 3가지였다.


오늘 이 글을 다시 쓰게 된 계기는 팀원들의 의견을 익명으로 수집하다가 발견한 의견 때문이었다. 얼마 전, 팀원들이 팀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지 만족도를 조사하는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이 설문조사에는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질문의 답변으로는 실력 있는 동료, 내게 자극을 주는 동료 등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답변들이 많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니어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하나도 없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시니어 개발자가 없어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곤 했었고, 따로 One on one을 할 때도 시니어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받곤 했었는데, 이번 설문에서는 그런 의견을 주신 분이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 또한 시니어 개발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실력 있는 동료 중에 시니어 개발자가 많을지언정, 시니어 개발자가 없어서 어려운 상황이라는 생각을 작년 정도부터는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자신감이 생겨서일 수도, 도저히 다른 사람의 조언 없이는 해결하기 어려운 어려움에 막혀있는 게 아닌 것일 수도, 애초에 기대를 안 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설문조사에 제출해주신 의견 중에서 공감되는 의견도 있었다. "고경력자나 시니어가 간절하게 필요하다고 느끼진 않는다. 함께 하면서 경험을 쌓고 같이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며 성장할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비록 회사에서 설문조사를 wrap up  문서에는 쓰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깊게 공감했다. 나를 가르쳐줄 사람이 필요한  아니라, 함께 챌린지를 극복할만한 동료들이 이미 곁에 있으니 마찬가지로 해결 과정을 함께 할만한 믿을만한 동료라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무엇이 이 변화를 만들어냈는지가 궁금할 텐데, 나도 확실한 이유를 꼽긴 어렵다. 하지만 하나 골라보자면, 흔히들 말하는 성공 경험의 누적 덕분이 아닐까 한다. 내 엔지니어링 결과물이 마법 같은 수준이 아니면 뭐 어떤가. 아니어도 프로덕트는 계속 발전하고 고객이 만족한다. 그렇게 문제들을 계속 해결해나가다 보니 자신감이 쌓이고, 자신감이 생기니 계속 어려움들을 헤쳐나갈 수 있다.


AB180에서 일한 지 5년이 되는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름대로 경력으로는 이미 5년 이상의 개발자가 됐는데 그동안 정말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이 글과 맞닿아 있는 생각만 꺼내보자면, 누군가에게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컸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그런 생각이 사라진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고 앞에서 언급한 이유들과 비슷할 것 같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구직 시장을 헤매는 한 마리의 짐승(?)이 아니라 그냥 내 길을 어떻게든 내가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배산임수 전략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해결해나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아쉬움도 없다. 내가 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팀과 함께 헤쳐나가면 된다.


이제는 시니어 개발자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려고 한다. 나를 비롯한 우리 팀에서 원하는 건 시니어 개발자가 아니라 "좋은 동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니어 개발자가 없어도 발전할 수 있는 팀이 됐다. 그동안 함께 달리며 성장한 팀원들 모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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