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시간을 자발적으로 가지며 시작한 집밥하기
병특이 끝날때쯤 돌아보니 난 중학교 이후로 학교라는걸 계속 다니고 있었다. 병특시절까지 학교옆에 있는 병원에서 일을 했을 지경인 인생. 2년 좀 지날즈음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간절히 빌었다.
'시간 지겹게 많았으면 좋겠다, 질리게.'
시간이 없어 밥을 편의점 간편식으로 떼우고 (그 이유가 공부건 논문을 위한 실험이건) 하는 삶은 정말 저리 고이 접어서 발로 차서 쓰레기통에 넣고 싶었다. 나 말고도 주변 친구들도 회사를 다녀도 어느정도 그런 삶을 살았다. 내가 바라던 시간은 무섭게 찾아왔다. 스윽 스며들 듯.
와이프와 연애를 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아침에 배고팠다. 생각해본 이유들는 이렇다.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아침식사를 먹도록 하셨다. (극단적으로 안먹으면 학교는 못간다 라는 엄포가 늘 포함되있었음) 그렇게 자란 덕인지, 아니면 오랜 기숙사 생활에선 먹는게 낙인데다가 야식까지 챙겨먹어도 그렇게 아침이 기다려졌었다. 잉여 시간을 만들며 처음 하게 된게 요리라는 것의 이유들이다.
집밥, 특히 밥으로 아침을 챙겨먹는게 혼자 살면서 역설적으로 더 갈망하게 되었다. 엄마에게 가스 압력밥솥을 다루는 방법, 전자렌지로 고깃집서 제공하는 식감의 계란찜을 빠르고 쉽게 하는것을 배웠고 어머니 투병때는 비록 주말 뿐이었지만 엄마가 해주신 음식들을 다시 해드리고 싶어 기억을 더듬어 해드렸었다. 엄마는 모르셨겠지만 처음 주말에 장을 시장에서 봐서 칼질부터 맛보며 망하기를 수차례 했음을 고백한다.
역시 인생이건 요리건 시도가 답이다. 될때까지.
신기한건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 해주고 싶은 음식, 새로 해보고 싶은 음식들을 적절하게 안배하면서 음식을 해주셨다는 점이었다. 그 노력에 너무 감사해 몇개의 음식을 혼자 해먹으며 울었었다. 돌아가신 이후에.
사족이 길었지만, 잘먹고 잘 살고자 잉여시간을 주도적으로 처음 선택하였고 그 시간에 상당시간을 집밥을 하고 있다. 세탁기, 핸드형 청소기, 에어컨까지 상당한 과학기술 덕분에 내가 생각하는 집안일을 집밥이 대부분이라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아침식사를 안하는 것이 신혼부부 사이에, 부부의 미덕이라 말하는 누군가의 말들을 난 내 배고픔과 엄마의 유산으로 정면으로 거부한다. 적어도 미숫가루를 물에 타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만 배부를 생각도 없고 어떤식으로든 아내에게도 먹일생각이다. 강권이 아닌 설득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지키는 것은 식습관이라는 별 감흥이 없는 흔한 말을 구현하는 세상 모든 분들에게 존경을 표현하며. 엄마의 유산, 내 얄팍하지만 뇌리에 박힌 과학지식, 귀찮음을 이기는 식성을 가지고 퇴근할때 훅 뱉은 whisper가 만든 잉여시간을 주부의 삶으로 살아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