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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Sep 30. 2024

그는 호스피스 병원 의사입니다

웰다잉은 없다네요

(가능한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빠짐없이 실었습니다.)



'시민을 위한 무료 웰다잉 수업.'

시에서 배포하는 소책자의 글을 보자마자 보건소에 문의 전화를 걸었다. 너무 유용한 수업일 것 같지만 혹시 싶었다. "혹시 수강 연령에 제한이 있나요?"



아뿔싸. 담당자는 연령 제한이 없다고 했지만 막상 들어간 강의실에는 여성 노인, 그러니까 실버 세대들이 주를 이루었다. "50대 이하는 수강 불가능하다던데." 수업 시작 전, 참여자 중 누군가의 말이 들렸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린가? 순간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허공에다 대고 반박을 하는 것도 이상해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웰다잉 교육을 받는데 적정 연령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라고 속으로만 곱씹으면서.  "앉아도 될까요?" 고개를 주억거리며 2인용 책상의 의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내 또래가 서넛 더 보였다.



4주 간 네 번의 강의는 실로 방대한 내용을 다뤘다. 매번 다른 분의 강연이 이어졌는데, 2주 차에서 앞에 서신 분의 성함이 왠지 낯익었다. 호스피스 병원 의사 김호성? 검색해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올  <집>이라는 책에서 호스피스 병동 환자의 마지막에 대한 글을 인상 깊게 읽었었다. 보건소에서 존경하는 분을 만날 줄이야. 연예인을 만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주의 강의는 물론 좋았지만 다소 난감한 면도 없지 않았다. 주제 자체는 매우 유익했다. 그런데 참여자들을 '70대의 정상가족 출신 전업주부'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앞으로 삶에서의 희망 사항을 묻는 질문에 발표자는 '우리 애들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고'라는 예로 자문자답했다. 발표자가 남존여비스러운 발언을 슬쩍슬쩍 얹을 때 나는  표정이 쌀쌀맞게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발표자 입장에서는 참여 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나에게는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2주 차 강의가 시작되었다. 김호성 선생님 청중과 눈을 마주치지도, 친절한 미소를 주고받지도 않았다. 다소 무뚝뚝해 보였다. 조금 지쳐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바쁜 일정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의 강의는 쉽지 않으나 할 말은 하고 가겠다고 했다.



"웰다잉이라... 글쎄요. 잘 죽는다는 게 있을까요. 죽을 때는 누구나 다 똑같은데요. 사실 때 잘 사셔야죠. 웰다잉은 없습니다. 웰리빙만 있어요." 그의 첫마디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호스피스 병원은 어떤 곳일까요?
죽으러 가는 곳?
아니오. 끝까지 잘 살게 하기 위해 가는 곳입니다.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했는데, 이후는 어떻게 '잘' 보내야 할까요?

대학병원에서 끝까지 버티는 것. 그렇게 병원에 있다가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죽는 것. 그게 과연 효도일까요?

지금부터 20년 전에는 환자의 40퍼센트가 집에서 돌아가셨어요. 40년 전에는 훨씬 더 많았죠. 지금은요? 만일 그러면 방치라고 생각하지요. 지금은 다 병원에서, 상조회사와 장의사 패키지로 돌아가지요. 손 안 가고, 깔끔하게. 자본주의 틀 안에서. 그런데 유럽 등 선진국들은 어떨까요? 도심 내 중간중간에 묘가 있어요. 가까운 일본만 해도 사당이나 가정의 장례 문화가 있지요. 반면 우리는 묘가 외곽에 있어요. 죽음이 공동체 밖으로 분리되어 있지요. 멀리 치워져 있기 때문에 더 낯설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지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높은 임종 희망 장소는 집이에요.

사실 의료진이 상시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경우라면 자택임종이 가능해요. 특히 노쇠라고 부르는, 병은 없고 그냥 원래 체력이 안 좋으신 경우는 집에서 돌아가실 수 있어요. 이곳 OO시만 해도 왕진 서비스가 있답니다. 모르셨나요? 문제는, 보호자들이 너무 두려워한다는 거예요. 살면서 아픈 사람, 죽은 사람을 집에서 본 적이 없거든요.



평소에 주변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세요. 그들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될 수도 있어요. 주변인들만이 아니라 사회 뉴스도 보시고요. 말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여기, 죽음에 대한 외국과 한국의 시각 차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외국은 '내가 안 아프게 죽고 싶다'가 기준이에요. 누구나 결국에는 암, 심장, 뇌질환으로 죽습니다. 살면서 암에 걸릴 확률은 30 내지 40퍼센트예요. 그리고 말기 환자는 더 이상 적용할 의료적 조치가 없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와서 두 달 이상 생존할 확률은 100중 1도 안됩니다. 병원에서 말하는 '임종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임종 예고 기간까지 합쳐도 열흘이지요. 그 기간 동안 외국에서는 보통 기본적인 것 외의 치료를 멈추고 환자가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합니다. 가능하다면 가족과 시간도 보내고요. 우리나라는요?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이 목표에요. 여기 표를 보세요. 우리는 사망 1개월 내지 2개월 내에 천문학적인 의료비를 쓸어 붓습니다. 어차피 말기인데, 돈 덜 쓰고, 쓸데없는 검사 안 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도 있는데, 이상하지 않나요? 이미 몸이 버티지 못하는데 환자에게 강하게 투약합니다. 누구의 뜻일까요? 의사들은 환자의 통증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환자를 살려야 하는 것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은 의사의 의무예요. 당연하지요. 그래서 평소 나의 보호자와 이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보호자란 '나에 대한 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랍니다.





콧줄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게요.

콧줄의 목적은 콧줄을 빼기 위함에 있어요. 콧줄을 끼다가 상태가 완화가 되면 뺄 것을 전제로 낍니다, 외국에서는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말기 환자에게 끼워요. 콧줄을 빼면 영양제 투여도 안 되는 걸로 오해하시기도 하는데 영양제는 따로 맞아요. 콧줄은 영양과 무관합니다. 말기 환자가 콧줄을 끼면 무호흡 상태로 계속 살아야 합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 삶을 계속 살아야 하는...(여기까지 말하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함). 콧줄은 굉장히... 삶의 의지를 단축시킵니다. 그리고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우리의 현실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평소 가족과 이런 이야기를 미리 해 두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갑작스럽게 어떤 결정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압박감을 느껴요. 하지만 '이대로 보내드릴 수 없다'면서 환자를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누구 마음 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임종 전 처참한 환자의 모습은 가족들에게 마지막 기억으로 남아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환자가 정말 원하는 것일까요?



존엄한 죽음은 존엄한 돌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일본과 미국의 요양병원에서는 환자에게 콧줄을 끼우지 않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임종 시까지 식사를 떠먹여 줍니다. 돌봄을 해 주는 사람이 존엄하게 돌봐주면 환자는 존엄하게 죽습니다. 그런데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의 간호 돌봄 인들은 다 누굴까요? 네, 조선족, 혹은 연벽족이라 불리는 여성 분들이세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그분들의 급여는 한국인 돌봄 인보다 낮아요. 결국은 나와 내 가족의 마지막을 돌볼 그분들에 대한 처우,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시민이 바뀌어야 사회가 변합니다.

외국은, 선진국에서는 의사에게 무조건 내 가족을 맡기지 않아요.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달라, 정부에게 요구합니다. 그런 말을 해 줄 수 있는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우리나라는 호스피스 병원이 턱없이 부족하지요. 정부의 지원이 열악하다 보니 연악한 시설도 많고요. 호스피스 병동은 더 이상 치료가 필요 없는 환자들이 쉬어가는 곳이에요. 그러니 병원 입장에서는 '쉬어가는 곳'을 두는 것을 좋아할까요? 서울대 병원은 그나마 있던 호스피스 병동 10개 조차 없애버렸습니다. 정부는 원래 2024년까지 호스피스 병동을 늘리겠다고 발표해 놓고 오히려 줄였습니다. 돈을 써야 될 곳에 안 쓰는 나라... 이것은 시민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죽는 문제는 시민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에요.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사회가 변합니다.   





가라앉았던 선생님의 목소리에 어느 순간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힘이 나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닌, 반복된 이야기에 지친, 그래도 힘을 쥐어짜 보는 그런 목소리였다. 내게는 그렇게 들렸다. 강의 후 나는 선생님의 책을 감동 있게 읽었다며 사진 촬영을 요청드렸지만 선생님께서는 급하게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며 뛰어나가셨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절대로 내 생각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사전연명치료동의서를 작성하고, 나의 죽음에 대해서 규정해 놓는다고 하더라도, 막상 나의 존엄한 죽음은 온전히 타인에게 달려있거든요. 그 어떤 사람도 마지막 가는 길은 타인이 돌보게 되니까요.

그래도 가족과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면 나중의 고통이 조금 줄 수 있습니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전에 반드시 이야기를 나눠 두세요.




구스타프 클림트 '죽음과 삶'
죽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



그 밖에 선생님께서 알려 주신 것들:


평소에:


1) 집에 007 가방을 상시 준비해 둘 것

- 주민등록등본, 가족 관계서, 보험서, 경제적으로 한 달 동안 버틸 수 있는 통장 등  

- 화재, 가정 폭력, 갑작스러운 입원 등으로 몸만 빠져나와야 할 때를 위한 준비



2) 재가 서비스(지역 노인 돌봄 서비스)

- 내가 거주하는 지역의 재가 센터 3곳을 다녀보고 맞는 곳 결정하기

- 스마트폰으로 '재가 지원 센터' 검색

- 주민센터에 가서 직접 상담하는 것을 추천



말기 시:


1) 호스피스 병동 고르는 방법:

- 그 병원에 간병인이 몇 명이 있는지를 볼 것

- 의사가 나와 잘 맞아야 함



2) 말기 병원

- 일반 병원에 머물러야 한다면 마지막 1주는 1인실에서 머물 것

- 환자 본인과 가족을 위함

- 그 비용을 평소 미리 마련해 둘 것



사망 후:


1) 집에서 사망 시:

- 사망 후 몇 시간까지 청력이 남아 있다. 돌아가신 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 드려라.

- 경찰서에 신고할 것. 사망 선고 등 절차가 이루어짐



2) 충분한 애도 기간 갖기

- 고인이 평소 유언을 했다면 유해를 바로 뿌리기도 하는데 추천하지는 않음

- 최소 한 달은 유해함에 모셔놓고 가족이 애도 기간을 가질 것 (나중에.후회하는 경우 많음)

- 최소 애도 기간: 3개월~ 12개월   


3) 장기기증을 결정했더라도 충분히 생각해 볼 것

-  환자의 사망 후 국립장기이식센터로 장기 적출을 위해 이동 후 다시 돌아오는 과정으로 두 번 상을 치를 수도 있으니, 이 과정에 대해 가족과 충분한 사전 논의 필요


앞으로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차차 재택 의료가 많아질 거라는 게 선생님의 말씀이셨다. 의사가 개원하는데 경쟁이 치열해서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고 재택 의료 - 왕진 의료 - 를 장려 중이라고 한다. "살고 죽는 것은 누구나에게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관심 있게 봐주세요." 선생님의 말씀이셨다.  



아래: 선생님의 초반부 문서 내용 중.



아래: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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