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이 엄마시죠? 저 XX이 엄마예요.”
작은 아이가 유소년 축구단에 들어간 지 2주 차,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 네, 안녕하세요…?”
“택시 타고 이동하신다면서요. 옆 동네에 사시더라고요. 일도 하신다던데 제가 OO이 경기장에 데려다주는 거 도와드릴 수 있어요.”
“아아 네에에….!!!”
한 순간의 경계는 격한 반가움으로.
아이가 좋아해서 멋모르고 들어간 유소년 축구단은 알고 보니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학원 보내듯이 셔틀 시간 일러주고 열심히 하라고 등 두드려 주면 되는 줄 알았던 나는 시작한 지 두 주 만에 이거 계속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나를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주 5회 선수반의 훈련 및 연습경기 스케줄은 매우 유동적이었고, 집합 장소로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출동해야 하는 일도 잦았다. 단톡방의 메시지에 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 나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18년째 허둥대며, 그 와중에 읽고 쓰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자였다. 기동력은 선수 부모로서의 필수조건이건만 운전도 못 했다. 원정 경기가 끝난 아이를 픽업하러 간 날, 아이들을 태운 셔틀버스는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외곽까지 와서 십 분을 대기했던 택시는 화를 내며 가버렸다. 버스도 드물게 오가는 그 지역에서 나와 아들은 때마침 다른 부모의 눈에 띄어 뒷좌석 카시트에 끼인 채 우리 동네로 무사히 이송되었다.
‘그때 그 일이 소문이 났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부끄러움도 잠시, 그녀는 지금 내게 너무나도 은혜로운 제안을 하고 있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운전을 못 해서요.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더 이상 무슨 말을.
“저는 집에 있으니까요. 어차피 저희 애 데려다줄 때 같이 하면 돼요. 마침 학년도 같고 동네도 가까우니 할 수 있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세상 쿨하기까지. 거리가 가깝다고 누구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나는 염치불구하고 덥석 도움의 손길을 잡았다.
그 바닥의 신참 엄마인 나는, 게다가 그 바닥에 대해 크게 알고 싶은 마음도, 열정도 없는 불량 엄마인 나는 곧 여러 면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이 없는 내 아이의 픽업을 위해 나도 헷갈리는 아이의 하교 시간을 꿰뚫고, 내 아이의 간식까지 함께 챙기는 센스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발휘했다. 내 아이의 가방 안을 스캔하여 정리해 주고, 오가는 차 안에서 아이의 컨디션을 살펴봐주는 진정한 로드매니저였다. 그녀가 축구 선수인 두 아들을 뒷바라지해 온 세월은 나로서는 상상만으로도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중학생인 그녀의 큰 아들도 유소년 축구선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가 자신의 큰 아들 학교의 임원이자, 작은 아이 학교의 학부모 회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돼지엄만가. 돼지엄마.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능통하며, 다른 엄마들을 쥐락펴락하는 엄마.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 없이 보이콧시켜 버리는 엄마. 그간 그녀에게 황송한 마음만 가졌던 나는 돌연 뒷걸음질을 치고 싶어졌다.
“그 엄마, 체조 국가대표였잖아요? 예전 베이징 올림픽 때도 나갔었는데.”
팀 내 다른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 나는 경악했다. 뭐? 국가대표? 그러고 보니 그녀의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연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녀는 분명 내가 지금껏 경험한 돼지엄마와는 달랐다. 일단 전혀 위압적이지 않았다. 부담스럽지 않게 호의를 베풀었고, 괜찮으시면 호칭을 편하게 하시라며 나를 배려해 주었다.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없으면서도 웃는 모습이 예뻤다. 무엇보다 돼지엄마스러운 은밀한 정보 교환이 없었다.
“에이, 노메달이면 다 소용없어요. 지금은 그냥 아줌마인걸요.” 내가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그래 노메달이면 소용없지. 하지만 그녀가 오천만 국민 중에서 대표였다는 사실을 알자 그녀의 얼굴이 달라 보였다. 그녀의 성실한 태도와 밝은 에너지가 빛나 보였다. 역시 국가대표는 다르구나.
“6학년때까지만 보고 축구를 계속 시킬지 안 시킬지 결정하겠다는 부모님이 많은데, 사실 그건 무리예요. 어떤 일이든 10년은 꾸준히 해야 알 수 있지 않을까요? 무리하지 말고 성실하게요. 단기간에 승부 보기를 바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게 이기는 것에 연연하게 하면 몸도 망가지고 정신적으로도 버티기 힘들어요. 지금은 슈팅 등 공격력 높이는 것 말고, 기본기를 다지는 게 중요해요. 아직 신체 성장도 다 이루어지지 않았잖아요. 잘 쉬는 것도 중요하고요.”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를 윽박지르게 돼요. 본전 생각이 나니까요. 이게 뭐라고요. 내 아이가 좋아해서 시작한 거잖아요. 사실 그만두어도 그만이다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계속 즐겁게 축구를 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감독 눈치를 많이들 보시는데, 할 말은 정확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감독에게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내 의견을 정확하게요.”
아무렴. 역시 국대 출신은 달랐다.
"아니 돈도 안 되는 에어로빅 같은 건 왜 하고 있나 몰라요? 쓸데없는 짓만 한다니까요.”
우리 두 가정의 부부가 맥주 한잔을 하게 된 날, 그 집 남편의 말에 나는 발끈했다. 국대 출신은 그 바쁜 와중에도 우리 시에서 주최하는 에어로빅 대회에 나가 2등을 쾌척했다. 우리 앞에서 아내를 겸손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일 수는 있겠지만, 나는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 우리 나이 때 에어로빅 대회에서 수상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데요? 갱년기로 여기저기 아프고 쑤셔서 병원 다니는 사람들 많아요. 그런데 XX이 엄마는 축구 선수인 아들들 다 돌보고, 게다가 본인도 건강하고 재미있게 지내고, 또 저렇게 예쁜데 돈이 안 되다니요? 그것만큼 돈 되고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요? 아이고 XX이 아버지, 와이프가 명품 백 사달라고 안 하고 에어로빅하고 있는 거 감사하게 여기셔야 되는데, 호호호~.”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깨달았다. 여자의 일상을 하찮게 여기는 말은, 그게 설사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하물며 그녀는 국가대표 출신. 여성 선수로써 그녀가 겪었을 수많은 어려움은 내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자격지심이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든 뭐든지 간에 그녀의 모습은 지지받아 마땅했다.
‘노메달에 잊힌 선수. 그냥 아줌마라고? 이제는 내가 그녀를 소중히 여기겠어.’
밑도 끝도 없는 다짐이 내 안에서 솟구쳤다. ‘존경.’ 그 말이 떠올랐다.
사실 언제 아이의 축구를 그만두게 할까 호시탐탐 노리는 나와 긴 호흡을 갖고 보는 그녀의 마음가짐은 매우 다르다. 부지런한 그녀의 행보는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돼지 엄마는 아니고, 그저 평생 운동을 사랑했고, 지금도 자신과 가족의 삶을 위해 성실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중년 여성의 모습은 신선할 정도로 새롭다.
그렇게 내게는 국대 이웃이 생겼다.
뜬금없지만 내게는 등 이름 '국대'인 티셔츠가 하나 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국대의 종목은 변경하였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어딘가에 글을 쓸 수도 있다며 은근슬쩍 본인 동의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