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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Jun 16. 2024

이웃이 올림픽 국대이면 생기는 일

“oo이 엄마시죠? 저 XX이 엄마예요. 축구같이 하는 친구예요.”

작은 아이가 유소년 축구단에 들어간 지 2주 차,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조심스레 받았다.

“아 네, 안녕하세요…?”

“애들 경기 장소에 택시를 타고 다니시는 어머니가 있다고 들어서요. 옆 동네에 사시더라고요. 일도 하신다던데 제가 oo이 태우고 오는 거 도와드릴 수 있어서요.”

“아아 네에에….!!!”



한 순간의 경계는 격한 반가움으로.



아이가 좋아해서 멋모르고 들어간 유소년 축구단은 내게 호환마마보다 어마 무시한 존재였다. 학원 보내듯이 셔틀 시간 일러주고 열심히 하라고 등 두들겨 주면 되는 줄 알았던 나는 시작한 지 두 주 만에 이거 계속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나를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다. 주 5회인 축구 선수반의 자체 훈련 및 타 지역 선수들과의 연습경기 스케줄은 때에 따라 매우 유동적이었고, 집합 장소로 부모가 출동해야 하는 일도 잦았다. 단톡방의 메시지에 늘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 나는 일과 육아 사이에서 18년째 허둥대고 있으며, 그 와중에 읽고 쓰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자였다. 무엇보다도 운전을 못 했다. 기동력이 필수인 운동선수의 부모로서 자격 미달이었다. 원정 경기가 끝난 아이를 픽업하러 택시를 타고 간 날, 아이들을 실은 셔틀버스는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고, 외곽까지 와서 십 분을 대기했던 택시는 화를 내며 가버렸다. 버스도 잘 지나다니지 않는 그 지역에서 나와 아들은 다른 부모의 눈에 띄어 뒷좌석 카시트에 끼인 채 우리 동네로 무사히 이송되었다.



‘그때 그 일이 소문이 났구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부끄러움도 잠시, 그녀는 지금 내게 너무나도 은혜로운 제안을 하고 있었다.



“아 정말 감사합니다! 실은 제가 운전을 못 해서요. 아이고, 정말 감사합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저는 집에 있으니까요. 그리고 어차피 저희 애 데려다주니까 같이 하면 돼요. 마침 학년도 같고 동네도 가까우니 할 수 있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세상 쿨하기까지. 거리가 가깝다고 누구나 도움을 줄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나는 염치 불고 도움의 손길을 덥석 잡았다.




그 바닥의 신참 엄마인 나는, 게다가 그 바닥에 대해 크게 알고 싶은 마음도, 열정도 없는 불량 엄마인 나는 곧 여러 면에서 그녀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스마트폰이 없는 내 아이와의 만남의 장소 및 시간 컨택을 위해 나도 헷갈리는 내 아이 학교의 하교 시간을 꿰뚫고, 자신의 아들의 간식을 챙기는 김에 내 아이 것도 챙기는 센스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발휘했다. 원정경기 시 내 아이의 가방을 스캔하여 가방 안을 정리해 주고, 차로 오가며 아이의 컨디션을 살펴봐주는 이 시대의 진정한 멀티테스커 엄마였다. 그녀가 축구 선수인 두 아들을 뒷바라지해 온 세월을 생각하면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ㅡ 중학생인 그녀의 큰 아들도 축구선수였다. 그러다가 나는 그녀가 자신의 큰 아들 학교의 임원이자, 작은 아이 학교의 학부모 회장인 것을 알고는 입이 쩍 벌어졌다. 돼지엄만가. 돼지엄마 ㅡ 교육열이 높고 사교육에 대한 정보에 정통하여 다른 엄마들을 이끄는 엄마. 엄마들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자신을 따르지 않으면 스스럼없이 배척도 하는 엄마. 그간 그녀에게 황송한 마음만 가졌던 나는 돌연 뒷걸음질을 치는 기분이 되었다.






“그 엄마, 국가대표였잖아요? 베이징 올림픽 때도 나갔는데.”

팀 내 다른 엄마가 아무렇지 않게 하는 말에 나는 경악했다. 뭐어? 국가대표? 그러고 보니 그녀의 큰 키와 호리호리한 몸매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연 그녀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녀는 분명 내가 지금껏 경험한 돼지엄마와는 달랐다. 일단 전혀 위압적이지 않았다. 내가 죄책감을 갖지 않도록 늘 편하게 호의를 베풀었고, 괜찮으시면 호칭을 편하게 하시라며 배려해 주었다. 늘 바쁜 모습이었지만 웃는 모습이 예뻤다. 무엇보다 돼지엄마스러운 은밀한 정보 교환이 없었다.



“에이, 노메달이면 다 소용없어요. 지금은 그냥 아줌마인걸요.”
그래 노메달이면 소용없지. 하지만 그녀가 오천만 국민 중에서 대표였다는 사실을 알자 그녀의 얼굴이 빛나 보였다. 그녀의 긍정적이고 성실하며 밝은 에너지가 빛나 보였다. 역시 국가대표는 다르구나.



“초등 6학년때까지만 보고 축구를 계속 시킬지 안 시킬지 결정하겠다는 부모님이 많은데, 경제적인 압박이 크긴 하지만 사실 너무 무리수예요. 10년은 해야 빛이 조금 발하거든요. 10년은 꾸준히 해야 돼요. 무리하지 말고, 끊임없이, 성실하게. 그동안 아이들에게 슈팅 등 공격력 높이는 것 말고 기본기를 다지게 해야 하고요. 아이들이 신체 성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게 승부에 연연하게 하면 몸도 망가지고 정신적으로도 버티기 힘들어요. 잘 쉬는 것도 중요하고요.”


“본전 생각하면 자꾸만 욕심이 과해지고 초조해져요. 감독 눈치를 많이들 보시는데, 사실 우리는 구단 소속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 돈 다 내면서 애들 보내는 거잖아요? 할 말은 정확하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감독에게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내 의견을 정확하게요.”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를 윽박지르게 돼요. 본전 생각이 나니까요. 그걸 정말 주의해야 해요. 이게 뭐라고요. 아이들이 좋아해서 시작한 거잖아요. 사실 그만두어도 그만이다,라고 생각하고 아이들이 계속 축구를 즐겁게 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렴. 역시 국대 출신은 달랐다.





“아니 돈도 안 되는 에어로빅 같은 건 왜 하고 있나 몰라요? 쓸데없는 짓만 한다니까요.”

우리 두 가정이 같이 맥주 한잔 하게 된 날, 그 집 남편의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국대 출신은 그 바쁜 와중에 에어로빅 대회에 나가 2등을 쾌척했다. 우리 앞에서 아내의 거사를 겸손하게 말하고자 함은 알겠는데, 그래도 나는 그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참지 않았다.



“지금 우리 나이 때 에어로빅 대회에서 수상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데요? 중년 여성들 출산 후 지금 갱년기로 여기저기 아프고 쑤셔서 병원비 들어가고 누워있기 시작하는 사람들 많아요. 그런데 XX이 엄마는 축구 선수하는 두 아들 다 돌보고, 게다가 본인도 건강하고 재미있게 지내고 저렇게 예쁜데, 돈이 안 되다니요? 그것만큼 돈 되고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요? 아이고, XX이 아부지~, 와이프가 명품백 사달라고 안 하고 에어로빅하고 있는 거 감사하게 여기셔야 되는데, 호호호~



하하 호호 웃으면서 얘기했지만 나는 그 순간 또 나 자신에 대해서 다시금 깨닫고 말았다. 여자의 일상을 하찮게 여기는 말은, 그게 설사 농담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하물며 그녀는 국가대표 출신. 이 나라에서 여성 선수로써 그녀가 겪었을 수많은 어려움들은 내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을 자격지심이든 몸 안에서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든 뭐든지 간에 그것은 지지받아 마땅했다.






‘노메달에 잊힌 선수. 이제는 그냥 아줌마라고? 이제는 내가 그녀를 소중히 여기겠어.’

이유도 없고 알 수도 없는 다짐이 내 안에 불쑥 솟구쳤다. Respect(존경, 경의)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면서.



사실 언제 아이의 축구를 그만두게 할까 호시탐탐 노리는 나와 긴 호흡을 갖고 보고 있는 그녀의 컨디션은 매우 다르다. 늘 부족한 엄마인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지런한 그녀의 행보는 초큼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돼지 엄마는 아니고, 그저 평생 운동을 사랑했고 지금도 자신과 아이들의 삶을 위해 즐겁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중년 여성의 모습은 신선할 정도로 새롭다.



그렇게 내게는 국대 이웃이 생겼다.


뜬금없지만 내게는 등 이름 '국대'인 티셔츠가 하나 있다.
* 프라이버시를 위해 그녀의 종목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 그녀에 대해서 어딘가에 글을 쓸 수도 있다며 은근슬쩍 본인에게 동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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