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그들도 이웃입니다
오늘 아침, 나는 몇 명의 남자를 실패시켰다.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5년째 축구학원에 다니고 있다. 축구 선수가 되려는 아이들도 아닌데 고학년이 되어서도 처음 만들어진 여덟 명 그대로 팀이 유지되고 있으니 흔치 않은 일이다. 그리고 엊그제, 그중 한 엄마가 아이들의 지도 코치님을 제외한 엄마들만의 톡 방을 개설했다. 그는 마음에 안 드는 여러 가지가 있어 당장 다음 주부터 그중의 한 집과 함께 다른 학원으로 옮길 거라고 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함께 이동해도 좋고 잔류하고 싶으면 하시라면서.
결정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국영수 같은 주요 과목도 아니라서 가뜩이나 큰돈 들이지 않고 싶었던 참에 월 3만 원 적은 다른 원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부분 반색하는 분위기였다. 이 참에 축구학원을 그만두게 하겠다는 가정도 둘. 처음 이야기가 나온 후 몇 시간 만에 우리 아들을 뺀 나머지 일곱의 행방이 결정되었다. 그러한 사실을 알자 나 또한 이동하는 무리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허겁지겁 밝혔다. 그렇게 바로 다음 주부터 새로운 곳에서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사실 수업이 진행되려면 최소 4인은 있어야 하기에 우리에게 다른 옵션이 있는 상태는 아니었다.
대표 엄마는 단체톡방에서 내일 있을 수업을 마지막으로 그 반이 해체될 것임을 알렸다. 코치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다른 엄마들은 모두 침묵했다. 몇 시간 후, 코치 선생님께서 메시지를 남기셨다.
어떻게 답변드리는 게 좋을지 고민이 깊어지다 시간이 갔네요. 이미 논의해서 결정했다 셔서 더 이상 제가 드릴 말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맡겨주시는 만큼 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해 가며 지도했으나, 상황이 이렇게 되어 많이 아쉬운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그동안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내일 만날 아이들과도 잘 마무리하겠습니다!
누구도 반응이 없었다.
나는 뒤늦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일개 축구학원. 시작하고 끝내고 갈아타는 것이 일상일 학원이라는 시스템. 돈으로 맺은 관계. 주요 과목도 아닌 그저 예체능. 하지만 4년의 시간, 햇수로 5년째. 아이들이 매주 함께 뛰고 땀을 흘리면서 현장에서 쌓았던 우정, 추억, 정에는 코치님이나 원장님도 계셨다. 그 ‘모두’는 그 공간에서 함께였다. 그리고 돌연 그곳은 낯선 공간이 되었다. 벌써 잊힌 과거가 되었다. 통보는 했지만 적절한 마무리라 보기 어려웠다.
축구 아카데미는 레벨 별로 취미 반, 엘리트 반, 선수 반으로 나뉜다. 우리 아이들은 취미 반임에도 지역의 시장 배 축구대회에서 무패로 우승컵을 거머쥔 흔치 않은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이들의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코치를 맡아주신 좋은 선생님이 계셨다. 실은 지도자가 좋았기에 지금까지 팀이 유지된 것이 컸다. 무릎 수술로 몇 달간 선생님께서 자리를 비우신 이 기간에 하필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어 기존 선생님도, 임시 선생님도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싶었다.
나는 뒤늦게 선생님들께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일은 지도자의 개인 역량과 전혀 무관하고, 아이들을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하며, 경기가 어려워 금액 부담이 조금이라도 적은 곳으로 이동하고자 하니 양해 부탁 드린다고 말이다. 뒤늦게 선생님들께 예의를 갖춘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 속 편하고자 한 행동이었다.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지만 나 또한 허둥지둥 ‘갈아탄’ 엄마들 중의 하나였다. 원비를 올리는 기준을 모르겠다고 남편에게 몇 번이나 푸념을 했던 나였다. 그러나 정작 학원에 직접 문의를 해 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그냥 ‘끝’ 내도 되는 걸까. 선생님들께도, 우리 아이들에게도.
오늘 글방의 글쓰기 주제는 ‘성공의 정의’였다. 나는 성공이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하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축구 학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그들은 한때 축구 선수를 꿈꿨던 자들일 것이다. 비록 선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축구라는 단어의 어딘가에서 머무는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은 행복할까? 그러나 오늘 아침, 나는 그들을, 그들의 자존감을, 그들의 직업을, 일터를, 관계를 씁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계속 마음이 무겁다. 나는 마음만 무겁지만 그들은 갑자기 빠져나간 여덟 명분의 원비를 걱정해야 한다. 마무리, 관계... 성공. 여러 단어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내일은 아이의 마지막 수업이 있다. 셔틀 타는 시간에 아이와 함께 나가 선생님들께 인사라도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