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중학교 때였어요. 그런데 저는 고등학생이라 동생과 학교도 다르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이 여자애들이다 보니까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미용하는 아는 고등학생 여자 애들 중에 좀 껄렁한 애들에게 부탁을 했죠. 동생을 괴롭히는 애들을 혼내달라고요.”
좋은 오빠고 나름 쌤통인 셈이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는.
“그렇게 학폭은 끝났는데 동생이 그 미용하는 여자아이들이랑 어울려 다니기 시작하는 거예요. 언니, 언니 하면서요. 그러더니 나쁜 짓이라는 짓은 다 하고 다니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이번에는 그 여자애들에게 동생의 얼굴은 건드리지 말고 대강 때려서 근처에 못 오게 해달라고 했어요. 어울리지 못하게요. 그런데…”
그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고 나니 동생이 집을 나간 거예요. 잡아오면 집을 나가고, 또 나가고… 모르는 동네에서 동생을 찾아 헤매고, 지방에도 가고… 미용 일 끝나고 밤늦게 퇴근하면 밤새 동생을 찾아 헤매는데…… 몇 년을, 그게 정말. 비참했어요.”
나는 그의 말에 어떤 추임새조차도 넣을 수가 없었다. 탄식조차 조심스러웠다.
“동생을 차에 태웠는데 도망가려고 달리는 차에서 문을 열어 떨어진 적도 있었고… 길에서 동생을 잡으면 동생이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그러면 제가 유괴범인 줄 알고 주변의 남자들이 제 손을 결박하고 때리고. 경찰이 제 차 뒤에서 쫓아온 적도 있었고, 경찰 앞에서 무릎 꿇고 쇠고랑도 여러 번 찼어요. 친오빠라고 해도 믿어주지도 않았어요. 그때는 경찰도 그냥 막무가내여서…… 파출소에 와서야, 부모님이 와서야 입증이 되는 거죠, 오빠라는 게.”
“모든 것이 제 잘못 같았어요. 제가 그 여자애들을 소개해 줘서… 어느 날 동생과 길에서 딱 마주쳤는데 멍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더라고요. 그 눈을 보는데… 얘 이제 끝났구나, 싶었어요. 모두 내 책임이니 같이 죽자고 다리 위에 올라간 적도 있어요. 내가 네 다리를 차로 치겠다. 그렇게 평생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대신 내가 책임지겠다고, 다리 한쪽 내밀라고 한 적도 있었어요. 시동을 걸고 힐끗 보니까 바닥에 앉아 다리 한쪽을 내밀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정말 눈이 돌아서… 그대로 차를 몰고 돌진했는데 그 순간 동생이 몸을 피하더라고요. 그때 만일 그냥 쳤더라면, 그랬더라면……”
아……
그는 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날의 일은 그의 삶에 평생 박제되어 있을 것이다. 밤마다 여동생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맨 갓 스무 살 넘은 청년. ‘비참했다.’
“지금 제 동생 네일 아트해요. 잘해요.”
그가 웃었다. 환한 웃음은 아니었지만 분명 웃음이었다.
“그리고… 실은 저도 학폭을 당했거든요. 그런데 한번 미치면 된다고 말씀드린 게, 제가 중3 때 그 녀석에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고등학교 가서는 그 녀석도, 다른 아이들도 저를 건들지 않더라고요.”
후루룩. 그가 말을 덧붙였다. 마치 자신에게 있었던 학폭은 별거 아니었다는 듯이.
내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종종 “한 번이면 되는데” “한 번만 미치면 되는데”라고 중얼거렸었다. 칼이라도 들이댔던 걸까? 나는 더 물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을 끊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드님과 슬쩍 데이트 나와보세요. 엄마 뿌염(새치염색)하는데 잠깐 미용실 같이 들르자고 하셔서 여기로 데리고 오세요. 엄마 말은 안 들어도 다른 사람 말은 들으니까요. 제가 모르는 척하고 이것저것 이야기 해 줄게요. 정 안되면 여기서 일 좀 해봐도 되고요. 저는 아이가 뭐라도 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을 때 시켜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그는 나의 은인이 되어 있었다.
“아드님요. 엄마가 이렇게 고민하고 이해하고자 하니 잘 될 거예요. 결국은 잘 돼요. 그건 분명해요. 그러니 고객님도 힘내세요. 아들이 지금은 엄마한테 함부로 하겠지만 엄마가 자기 사랑하는 거 다 알아요. 저도 그랬어요. 어머니한테 아주 함부로 했죠… 조금 전에 옆에 앉았던 여자분 있죠? 저희 어머니세요.”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머리 잠깐 다듬고 사라지신 분. 고개를 옆으로 돌려 얼굴은 보지 못했지만 미용사 분과 나지막이 주고받던 대화가 기억났다.
(남자) 요즘 머리 손질 하시기 괜찮으세요?
(여자)네, 괜찮아요. (남자) 이 헤어스타일 오랫동안 하셨는데 스타일을 조금 바꿔보시는 건 어떠세요? 긴 머리도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
(여자) 머리 자랄 때까지 못 기다리겠어요. 머리 기르시는 분들 보면 대단하게 느껴져요.
(남자) 기르기 힘드시면 어렵죠. 그런데 지금 머리도 잘 어울리세요.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대략 그 정도가 떠올랐다. 너무나도 평온하고 다정했던 대화.
“저희 어머니, 여동생 때문에 맘고생 많이 하셨어요. 그 때문에 아버지랑도 안 좋으셨고요.”
“어머, 어머니셨군요! 가까이에 사시나 봐요?” “아뇨. 멀리 사시는데……”
그녀는 미용비를 아끼고자 아들의 미용실에 온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들 얼굴 한번 더 보고 싶은 엄마 마음.고생하는 아들에게 방해될까 손님인 양 잠시 들르고, 돌아서며 응원하고, 기도하고…. 그렇게 어머니는 먼 걸음을 돌아갔을 것이다.
“선생님, 머리 너무 예뻐요. 그리고 정말… 감사해요.”
자신의 힘든 이야기를 나에게 나눠 주어서, 나와 내 아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어서, 그리고 지금까지 그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와 줘서, 동생분이 잘 되어서, 어머니에게 좋은 아들이 되어 주어서 고맙다고, 존경한다고, 응원한다고, 거듭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바쁜 그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미용실에 들어간 지 3시간 반. 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의 모습이 거인같이 커 보였다. 빛이 났다. 고생 하나 해보지 않은 듯한 곱상한 얼굴. 그저 부모가 차려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나 보다, 했던 내 넘겨짚음은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며칠 새 아들은 미용에 대한 생각이 시들해졌고 나는 아직 아들을 미용실에 데려가지 못했다. 그러나 미용사인 그가 해주었던 이야기는 내 가슴에 또렷이 남아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열일곱 살 고등학생 시절부터 20여 년 동안의 그의 삶이 그려져 여러 감정이 교차된다. 버스로 몇 정거장 거리의 가까운 곳에 있지만 겨우 일 년에 두 번 만나는 미용사와 손님의 관계. 그러나 나는 그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다. 오늘 하루도 묵묵히 자신의 몫을 살아가고 있는 그는 나의 이웃이고, 영웅이며, 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