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평이나 될까. 무척이나 좁은 공간. 눈에 보이는 네 벽이 다 인 그 공간에서 젊은 남자가 하나, 둘, 셋… 일곱이다. 그리고 그들 각자는 무척 분주하다.
창도 없이 뻥 뚫린 정면에서 두 남자가 각자 주문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들 앞의 도로에는 건물의 벽을 따라 일렬로 길게 늘어선 아주머니 무리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는 내가 사는 지역의 ‘청년 고기’ 정육점이다. 실제 그들이 청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중년은 아니다. 아마도 스물 중반쯤. 약 1년 전에 생긴 이곳은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소위 핫플이다. 쇼핑몰 앞이라 최상의 위치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고기가 엄청 좋고 손질 또한 아주 꼼꼼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가격마저 합리적이다. 지나가다 호기심에 한번 줄을 서 본 불량주부인 나 또한 요리를 해서 먹어보고는 감탄했었다. 그러나 다음에 또다시 갔을 때는 줄 서는 걸 포기했다. 어김없이 50, 60대 선배 주부님들이 포진되어 있고, 그들이 주문하는 양은 많고, 고기 손질은 꼼꼼하다 보니 줄이 쉽사리 줄지 않았다.
성장기 아들 둘을 키우다 보니 원하든 원치 않든 육식 식단이 많은 우리 집. 오늘은 마음을 먹고 줄을 섰다. 이래 봬도 나도 가족의 식단을 챙기는 주부란 말이요, 그리 만만한 여자가 아니란 말이요, 그러니 새치기라도 하면 내 가만있지 않겠소, 아시겠소? 하는 듯한 짐짓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면서(물론 주부님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엄청난 양의 붉은 고기 덩어리가 해체되고 팔려나가는 무한 과정. 마치 자신이 맡긴 물건을 받아가기라도 하는 듯 고기 봉지를 재빨리 낚아 채 인사도 없이 사라지는 여성들(저녁밥 지을 생각에 마음이 급했을 것이다). 고기를 손질하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과 오늘 하루 먹을 양이라고 볼 수 없는 많은 고기를 사가는 여자들을 보고 있노라니 돌연 소, 돼지에 대한 죄책감이 들면서 이 장면으로부터 뒷걸음질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식탐에 빠진 인간들이 죄다 돼지로 변해버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제목이 뭐더라……
그러나 그러한 생각도 잠시. 이내 신선한 색감의 각종 고기 부위와 청년들의 현란한 칼질에 시선이 빼앗긴다. 그렇게 나 또한 하릴없이 고기를 바라본다.
10분이 지나고 줄 선 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멀찌감치 바라본다. 가족의 건강 지킴이, 우리 어머니들의 가지 각색 요구사항은 끊임이 없다. 삼겹살을 3등분 해 달라, 비계를 떼어달라, 저쪽 비계를 더 떼야한다, 소스를 챙겨줄 수 있느냐, 왜 꽃등심은 항상 다 팔리고 없느냐, 방금 냉장고에 들어간 새 고기를 썰어 달라, 쿠폰수가 맞는 거냐, 뒷자리 300원은 깎아 달라.
나는 그들의 요구사항에 조금 감탄을 하다가 금세 질리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듦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고기에 꽂힌 시선을 들어 청년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정면에서 주문을 받고 있는 두 청년의 표정은 그저 온화했다. 뒤쪽의 청년들도 얼굴에 피곤함이 없었다. 지친 구석이 전혀 없다니? 아직 젊어서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잠시 앉아 있을 여유도, 공간도 없는 그곳에서 아침 아홉 시부터 일곱 시간째 고기만을 바라보며 칼질을 해댄 저들의 손목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 고기 세 등분할까요, 네 등분할까요?”
“고기 이렇게 괜찮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본사의 방침인가, 훈련된 걸까, 해탈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포기한 걸까. 퇴근 후 마실 크리미 한 맥주 한잔을 들이켤 생각을 곱씹으며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걸까.
혹시 연봉이 1억 이상일까. 혹시 선하고 긍정적인 젊은이들만 골라 뽑은 걸까. 설마 고용주가 나쁜 놈은 아니겠지.
혹시 내 기분이 좋아서 세상이, 사람들의 표정이 밝게 보이는 걸까.
나는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어떻게 그렇게 웃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친절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피곤함과 예민함이 먼지 한 톨만큼도 없나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요.
인생에 어떤 계기라도 있었나요.
따져 묻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나라면? 머릿속 다짐이 어쨌든 피곤함으로 얼굴이 일그러졌을 것이다. 단 하루라도.
이러한 생각에 한참 빠져 있을 때쯤 내 순서가 되었고, 나는 약간 긴장한 채로 주문을 하고, 손질된 고기를 받아 들고 그저 “감사합니다” 한 마디만을 남긴 채 그곳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따뜻하게 손님을 응대하던 그들의 모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게 그럴 일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은은하게 따뜻해졌다. 그러니까 그게, 그럴 일이었나 보다.
아마도 나는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존경합니다." 나는 용기 내어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스티브 잡스에게만 존경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다음에도 같은 마음이 들면 그냥 해버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은 소심히 글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