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사님의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관심 있으신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서 입말을 자세하게 실었습니다.
“아들이 미용을 하고 싶다고 해요.” 말을 쓱 내밀었다.
“아들이 다니는 미용실이 있는데, 아이가 헤어스타일에 대해 이것저것 훈수를 두는 것을 보고는 관심 많고 잘할 것 같은데 와서 아르바이트해 보라고 했다네요.”
“아, 그래요?”
“미용 학원에 등록하고 주말에 와서 미용실에서 알바도 해보라고 했다네요. 아이는 자신에 대한 뜻밖의 칭찬과 관심에 기분이 엄청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가 뭔가를 해보겠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반색을 했다. 이 참에 고생 좀 해봐라,라는 심보도 함께. 그러다 청소년 진로 지도를 하시는 분께 혼이 났다.
“아니 무슨 부모가 그래요! 자기 아이가 된통 당하길 바라는 사람들도 아니고. 지금 미용실에서 알바를 한다고 해도 허드렛일만 하는 거예요. 정작 사람 머리를 만져보는 것은 스무 살부터나 할 수 있어요. 그동안 아이들은 지치고 자존감만 낮아질 수 있고요. 적성이 정확하지 않을 때는 일단 학업을 이어가면서 관련 정보를 살펴보다가 고3 때부터 해도 충분해요. 그때는 무료로 받을 수 있는 미용사 직업 훈련도 많고요. 그 미용사 나빴네!”
나는 미용사 분께 동종 업계의 다른 미용사를 험담하는 꼴이 될까 조심스러웠다. 그러면서도 부모로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고민되는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렇게 본격 ‘미용실 토크 타임’이 시작되었다.
“글쎄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건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실은 저도 고1 때 미용 시작했거든요.”
“오 정말요?”
“저는 아버지께서 군인이셨고 저 또한 육사를 보내려고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미용을 하겠다고 하니 엄청 반대하셨죠.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냐고 하셨다니까요.”
군인 아버지가 아들을 꾸짖는 장면. 잠시 아찔해졌다.
“그런데도 미용 일을 하셨네요? 엄청 하고 싶으셨나 봐요!”
“아뇨! 실은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어요. 그러다가 친구가 미용실 알바 면접을 간다고 해서 같이 왔는데 미용실 누나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보니까 일하다가 손님 없으면 커피 마시고 쉬고. 이렇게 놀면서도 일 할 수 있구나 싶어서 미용실 사장님께 저도 알바시켜 달라고 졸랐죠. 그런데 그게 이렇게 이어졌네요. 세상 참 알 수 없어요.”
“솔직히 미용일 하는데 학력은 전혀 필요 없거든요. 중졸이든 고졸이든. 무조건 실력이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사실 기술은 배우면 느는데 이게 서비스직이라 성격에 맞아야 해요.”
“그러니까요. 지금 저와도 이렇게 대화해주고 계시는데 이렇게 매일 일하라 말하랴 얼마나 지치시겠어요.”
“전 잘 맞더라고요. 그런데 손님들과의 대화하는 게 맞지 않는 미용사들은 스트레스로 정싱과 상담도 많이 다녀요.”
“아……”
정말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티비에 나오는 이름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그러면 처음부터 청담동 샵으로 들어가서 배워야 해요. 새벽 4시 반부터 일하는 거죠. 그게 아닌 보통 매니저급 되는 데는 6년 걸려요. 주노헤어 같은 브랜드는 2년이면 되고요. 실제 근무 시간은 하루 10시간 정도. 예전엔 12 시간였죠. 그동안 배우면서 버텨내야죠.”
"대단하네요..."
“제가 군대 다녀왔는데 아버지께서 ‘그만하고 싶으면 그만해도 돼’라고 슬며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정신이 번쩍 났어요. 그리고 절대 안 그만둘 거라고 했어요.”
“아직 어린 나이에 대단한 확신인데요?”
“전혀요.” 그가 씩 웃었다.
“실은 이 일이 너무 싫었어요. 다음날 미용실 가면 원장한테 또 얼마나 깨질까, 또 무슨 실수를 해서 창피스러울까 생각하면 이불에서 일어나기도 싫었어요. 요즘은 많이 달라지긴 했는데 미용일 하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나쁜 사람들도 많았거든요. 양아치 같은 원장도 많았고... 그런데 그만두면 공부해야 되잖아요. 그 생각하니까 정신이 번쩍 나서 절대 안 그만둔다고 했죠.”
공부하기가 너무 싫었던 청년. 그렇다고 다른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데 아드님요. 해보고 싶다고 하면 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혹시 아나요? 엄청 유명한 헤어 디자이너가 될지요. 정말 아무도 모르는 일이에요. 제가 고등학교 때 친척 집에 가면 일부러 저한테 중간고사 잘 봤냐고 큰 소리로 물어보던 녀석이 있었는데 지금 대기업 다니거든요? 여러모로 제가 나아요 하하. 그리고 해 봐야 나에게 맞는지 아는지를 아니까요.”
“그런데 이 일의 어두운 면도 함께 알면 좋을 것 같아요. 일단 개인 시간이 없어요. 주말에도 당연히 일해야 하고 친구들 경조사 같은 것도 챙기지 못하니 다 멀어져요. 나중에는 미용사 친구들만 남으니까…”
“그리고 회사 일은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 관리직이 되면 루틴이 좀 생기잖아요? 이 일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계속 배우지 않으면 도태돼요.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해서 내 고객이 생기고 바빠지면, 샵이 잘 되는 건 좋은데 어느 순간 내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져요. 손목도 무릎도요.”
현재 그가 겪는 고민이겠구나, 싶었다. 나는 잠자코 듣고 있다가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실은… 아이가 마음이 많이 어려워요. 중학교 때 전학 왔는데 생각지도 않던 폭력 문제가 몇 번이나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미용실 오는 것도 한번 취소했던 거예요. 내가 지금 미용실 다닐 땐가 싶어서…”
나는 아이에게 가해진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조용히 그리고 건조하게 이야기해 나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내 말이 끝나자 자신의 여동생 이야기를 꺼냈고, 곧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와 표정 관리를 해야만 했다..
다음 주에 최종화가 이어집니다. (:
미용사님께서 이 글을 읽으실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제가 그때 너무 큰 도움을 받아서...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