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어제, 알고 지내는 A가 SNS에 올린 글을 보고 나는 기어이 톡을 보냈다.
- 아는 사람이 게시물을 올렸더라고요. 그런데 괜스레 좀 슬펐어요. 나는 남편이 없는데…
A의 지인이 올렸다는 피드인즉슨, ‘내가 죽기 전에 내 옆에 있을 사람은 결국 친구도 지인도 아닌 내 가족이다. 남편과 자식이다. 그들에게 잘하자.’ 뭐 이런 내용이었다.
- 남편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이 저를 되게 측은하게 보더라고요. 그런데 그 게시물을 보니까......
이혼한 A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하고 싶은 취미활동과 공부를 하며 재미있게 산다. 나는 참지 못했다.
- 저는 저 말이 되게 별로네요.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이 35프로라죠. 앞으로 그 비율은 ‘폭증’할 거라고 하고요. 그런데 남편과 자식이 미래의 내 죽음 앞에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출산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2040 여성이 50프로가 넘었던데 자식을 운운하다니 언제 적 얘기임?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닐까요? 그냥 그거라도 가졌다고 해야 스스로 초라하지 않으니까?
- 전 연령에서(할머니, 아가씨, 돌싱 다 포함) 가장 행복한 여성은 ‘혼자 사는 여성’이라고 통계가 나왔잖아요. 건강 수명도 제일 높고. 미국도 우리나라도. 반면 가장 외롭다고 표현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도 소통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고.
- 자기야, 지난달에 호스피스 병원 원장님 강의 들었는데 죽을 때는 누구나 똑같대. 중국인 도우미분이 돌봐주는 거!! 웰다잉은 없다. 웰리빙만 있다. 그 쌤이 그러셨음!!!
나는 숨도 쉬지 않고 텍스트를 토해냈다. 말하다가 흥분해서 반말로 갈아탔다.
그날 밤, 집 앞 슈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나는 아파트 안 정자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또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꽉 막힌 듯 답답한 마음. 나눌 대화가 없는, 그래서 별일 없는, 그러므로 별 사이가 아닌 남편의 오늘도 늦은 귀가와, 뒤늦게 학교는 갔으나, 오늘도 미용 학원을 쨌는지 한창 학원 수업 시간인 저녁 8시에서 인근 동네에서 결제된 아들의 신용카드 사용 알림. 짬뽕집(본인 카드를 또 잃어버렸고, 내 카드를 또 가져갔다).
밤 10시, 그렇게 나는 또다시 눈앞이 뿌애졌다. 문제랄 것도 없는, 다 그러고 사는, 그렇고 그런 것.
게시글을 올린 여자는 정말로 가족이 제일 소중한 이일 것이다. 남편과 자식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나 보지. 혹은 자신이 좋은 엄마이거나. 혹은 둘 다 이거나. 최근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는 어떤 일이 있었다던가. 아니면 친구와 소원해졌다거나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했을 수도 있고. 마침 그때 가족이 큰 힘이 되어줬다거나. 그럴 수 있잖아. 그래서 게시 글을 올릴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그 글이 불편했다. 비아냥거렸다. 굳이 그랬다.
사회는 결혼 안 한 여자가 혼자인데 괜찮다고 말하면 의아해한다. 당황해한다. 혼자여도 행복하다고 말하면 화를 낸다.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인데 기억이 안 난다.)
그건 그렇고, 가족이 나의 전부라고 얘기하는 사람한테 나는 왜 역정을 내고 있는가?
가족이 자신의 삶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사회와 통계를 거들먹거렸다. 그들이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인양 핀잔을 덧붙였다. 얼마 전 신해철 사망 10주기를 맞아 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그의 두 자녀가 출연했고, 방송에는 '가족은 모든 것이다'라는 신해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전히, 이혼한 A에게 딱하다는 시선을 대놓고 던지는 누군가는 매우 별로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을 빗대어 비하 발언을 하면 안 되겠지만 소리로 치자면 그건 개소리...
아파트 단지 안으로 쿠팡 차가 지나갔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밤새 일해야 하는 그들. 오늘도, 내일도.
열두 살, 집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 번째 남자가 있다. 가야지. 일어나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오늘의 심술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