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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Oct 19. 2024

의대 9수를 시킨 엄마를 죽였습니다

엄마는 딸이 태어남과 동시에 훗날 아이를 의대에 보낼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아이의 실력에 의대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이는 결코 이과 성향도 아니었다. 결국 의대가 아닌 간호대에 보내는 것으로 타협을 봤지만, 그녀는 자그마치 9년 동안 딸에게 재수를 시켰다.



그렇게 서른 살에 간호대에 입학한 딸은 이제 입시 지옥도, 지긋지긋했던 엄마의 구속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던 자신에게 출산을 도와주는 간호사, 즉 조산사가 되라고 협박하는 엄마를 보며 그녀는 마지막 희망을 놓아 버린다. 그리고 동네 마트에서 식칼을 산다.



이 일은 2018년에 일본에서 일어난 실화이다. 사실 <의대 9수를 시킨 엄마를 죽였습니다>라는 신간의 제목이 너무 강렬해서 선택하기가 망설여졌다. 제목 빼고는 알맹이가 없는 책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해외 토픽에 나오는 가십 수준의 책일 수도 있다고, 그러니 경계하라고 스스로에게 조언했다. 그러나 나는 결국 누구보다도 먼저 이 책을 구매했다. 호기심을 누르지 못했고, 내가 이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내면 깊은 곳의 이유가 있을 거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저자는 법조기자로, 복역 중인 아카리와 2년간 주고받은 편지를 바탕으로 이 책을 냈다. 끝까지 인내심 있게 읽었으나 우려했던 대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뭔가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딸 아카리가 쓴 진술서 같은 느낌이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법조기자인 저자는 아카리가 한 말을 온전히 담아내고 정리하는데 충실했다. 피해자는 이미 사망한 후이니 엄마의 말을 들어볼 수도 없었다.





그 옛날, 내 부모님은 내게 학업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나 또한 내 자식에게 강요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내가 부모로서 자식에게 알게 모르게, 실은 공공연히 행하고 있는 다양한 폭력에 대해 이 책이 경종을 울려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엄마라는 사람이 너무 괴물이라 내 적용으로까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엄마 타에코는 딸이 마음에 안 들면 몸에 끓는 물을 붓고, 철몽둥이로 때리고, 장롱에 가두고, 딸이 성인이 된 후에도 탐정을 붙여 감시했다. 의대에 합격했다고 딸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고, 거짓 편지를 쓰게 했다. 프라이버시는 전혀 없었다. 아카리는 욕조에서 엄마와 동시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해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구라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발언은 조심스럽지만 결국 한 명이 죽어야 끝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30년간 가스라이팅을 당해 온 아키리의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물론 아카리의 살인, 시체 훼손 및 유기는 결코 용서되기 어렵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흔해진 지 오래되었지만 부모와의 갈등, 특히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부모 살해에 관한 뉴스는 예전부터 일본에서 심심치 않게 나왔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심각하지만. 나는 사건 당시의 기사를 살펴보았다. 일본은, 당시 전문가들은 그 사건에 대해 '부모는 자녀를 자신과 별개의 개별적인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는 말이다. 엄마 타에코의 죄는 이해할 수도, 용서될 수도 없다. 아카리는 엄마를 죽인 후 SNS에 '드디어 몬스터를 처리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녀의 엄마는 몬스터였다.    



알겠는데...... 나는 뭔가가 계속 운치 않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왜 괴물이 되었는지, 그러니까 정말 구제불능의 사이코패스였던 건지, 혹은 그녀의 성격적 결함과 왜곡된 욕망 너머에 어떤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졌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의 일본 사회가 어떤 식으로든 논의의 장을 열었을지 궁금했다. 결론을 내자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말이다. 그러나 사건이 난 시기가 지금부터도 6년 전이고, 요즘조차도 이러한 이슈에 대해 사회가 거시적인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면 당시에 뭔가 의미 있는 논의가 있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씁쓸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미친년이 미친년을 죽인 다분히 개인의 이야기로 묻혀 버린 건 아닌가 싶어서 괜스레 조바심이 났다. 이에 대해 아주 작더라도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조차 비치지 않는 이 책이 못내 아쉬웠다. 그것은 독자가 생각하고 상상해 내야 할 부분일까? 혹은 뭔가가 더 있지 않을까, 싶은 나의 실체 없는 기대감일 뿐일까?






아키리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였고, 어머니의 폭력성이 정상참작되어 2심에서 감형을 받은 후 최종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고난하게 살아온 그녀의 삶은 차마 상상하기도 어렵다. 앞으로는 아카리가 스스로의 삶을 잘 살아가길 바란다.




딸 아키리가 언급한 '불씨'라는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모든 인간은 악의 불씨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잔인함. 내게는 어떤 불씨가 있는가. 그리고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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