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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Oct 17. 2024

죽을 때 가족이 옆에 있을 거라는 생각

...... 가족?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어제, 알고 지내는 A가 SNS에 올린 글을 보고 나는 기어이 톡을 보냈다. 

- 아는 사람이 게시물을 올렸더라고요. 그런데 괜스레 좀 슬펐어요. 나는 남편이 없는데… 

A의 지인이 올렸다는 피드인즉슨, ‘내가 죽기 전에 내 옆에 있을 사람은 결국 친구도 지인도 아닌 내 가족이다. 남편과 자식이다. 그들에게 잘하자.’ 뭐 이런 내용이었다. 

- 남편이 없다고 하면 사람들이 저를 되게 측은하게 보더라고요. 그런데 그 게시물을 보니까......

이혼한 A는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하고 싶은 취미활동과 공부를 하며 재미있게 산다. 나는 참지 못했다. 



- 저는 저 말이 되게 별로네요.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이 35프로라죠. 앞으로 그 비율은 ‘폭증’할 거라고 하고요. 그런데 남편과 자식이 미래의 내 죽음 앞에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출산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2040 여성이 50프로가 넘었던데 자식을 운운하다니 언제 적 얘기임?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닐까요? 그냥 그거라도 가졌다고 해야 스스로 초라하지 않으니까?



- 전 연령에서(할머니, 아가씨, 돌싱 다 포함) 가장 행복한 여성은 ‘혼자 사는 여성’이라고 통계가 나왔잖아요. 건강 수명도 제일 높고. 미국도 우리나라도. 반면 가장 외롭다고 표현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도 소통이 안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고. 



- 자기야, 지난달에 호스피스 병원 원장님 강의 들었는데 죽을 때는 누구나 똑같대. 중국인 도우미분이 돌봐주는 거!! 웰다잉은 없다. 웰리빙만 있다. 그 쌤이 그러셨음!!! 



나는 숨도 쉬지 않고 텍스트를 토해냈다. 말하다가 흥분해서 반말로 갈아탔다. 






그날 밤, 집 앞 슈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 나는 아파트 안 정자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또다시 올라오고 있었다. 꽉 막힌 듯 답답한 마음. 나눌 대화가 없는, 그래서 별일 없는, 그러므로 별 사이가 아닌 남편의 오늘도 늦은 귀가와, 뒤늦게 학교는 갔으나, 오늘도 미용 학원을 쨌는지 한창 학원 수업 시간인 저녁 8시에서 인근 동네에서 결제된 아들의 신용카드 사용 알림. 짬뽕집(본인 카드를 또 잃어버렸고, 내 카드를 또 가져갔다). 

밤 10시, 그렇게 나는 또다시 눈앞이 뿌애졌다. 문제랄 것도 없는, 다 그러고 사는, 그렇고 그런 것. 



게시글을 올린 여자는 정말로 가족이 제일 소중한 이일 것이다. 남편과 자식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나 보지. 혹은 자신이 좋은 엄마이거나. 혹은 둘 다 이거나. 최근 가족의 사랑이 느껴지는 어떤 일이 있었다던가. 아니면 친구와 소원해졌다거나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했을 수도 있고. 마침 그때 가족이 큰 힘이 되어줬다거나. 그럴 수 있잖아. 그래서 게시 글을 올릴 수 있는 거잖아. 그런데 나는 그 글이 불편했다. 비아냥거렸다. 굳이 그랬다.   



사회는 결혼 안 한 여자가 혼자인데 괜찮다고 말하면 의아해한다. 당황해한다. 혼자여도 행복하다고 말하면 화를 낸다.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인데 기억이 안 난다.)



그건 그렇고, 가족이 나의 전부라고 얘기하는 사람한테 나는 왜 역정을 내고 있는가?  




가족이 자신의 삶의 중심을 단단하게 지탱해 주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사회와 통계를 거들먹거렸다. 그들이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인양 핀잔을 덧붙였다. 얼마 전 신해철 사망 10주기를 맞아 한 예능 프로그램에는 그의 두 자녀가 출연했고, 방송에는 '가족은 모든 것이다'라는 신해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전히, 이혼한 A에게 딱하다는 시선을 대놓고 던지는 누군가는 매우 별로인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을 빗대어 비하 발언을 하면 되겠지만 소리로 치자면 그건 개소리... 



아파트 단지 안으로 쿠팡 차가 지나갔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밤새 일해야 하는 그들. 오늘도, 내일도. 

열두 살, 집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세 번째 남자가 있다. 가야지. 일어나라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오늘의 심술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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