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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딴짓 Dec 06. 2024

어머니 자치 법정실에 출석해 주세요

아직 2학년이 진행되고 있어서요.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젊은 남자 선생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조심스레 교실 문을 열자 정면에 앉아있던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짧게 목례를 했고, 남자는 서둘러 스마트폰에 시선을 묻었다. 그 또한 학부모리라. 긴 책상이 삼열로 배치되어 있었고, 나는 그와 제일 멀리 떨어진 곳의 걸상을 뺐다. 아빠가 가는 게 좋지 않겠어? 남편은 아무 말 안 해?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역시나 이런 자리에는 아빠가 오는 것이 더 있어 보이지 않나. 무게감이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미치자 무심한 남편에 대한 못마땅함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 순간 문이 열리고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그녀와 목인사를 했다. 엄마네. 저 집도 엄마가 왔어. 나는 말없이 반색했다. 그러면서 반가운 마음이 든 나 자신이 조금 우스워졌다. 흘깃 보니 여자는 자리에 앉지 않고 창가에 서서 운동장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곧 기침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잡히지 않았다. 끊임없이 콜록거리던 여자는 안 되겠는지 문을 열고 다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텅 빈 복도에서 기침 소리가 멀어져 갔다. 저렇게 몸이 좋지 않은데도 학교에 왔구나. 아들은 엄마가 애쓰고 있는 걸 알고 있을까. 나는 여자를 아들 엄마로 단정해 버렸다.  




어머니, 이번에는 직접 오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우체국 등기로 받은 문서에는 학교 생활 교육 위원회로의 출석일이 기재되어 있었다. 학칙 제27 다시 1항, 근태(怠). 올해 지각과 결석이 빈번했던 아들은 학칙에 따라 사회봉사를 다녀왔다. 동네 노인요양병원에서 휠체어를 밀고 환자들의 산책을 도왔던 아들은 네 시간의 봉사 후 내리 열 시간을 잤다. 그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학부모 의견서를 제출하려고 했다. 그런데 담임은 이번에는 학교에 와서 위원회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시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그러겠다고 답했다. 



일반적인 교실 크기 반 정도의 공간. 다용도실인가? 아니면 대기 전용 공간? 나는 눈의 피로를 느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공간에 비해 형광등 수가 너무 많았다. 내려 꽂히는 빛이 돌연 강력한 방사능처럼 해롭게 느껴졌다. 창밖은 완전히 어두워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손바닥으로 눈두덩를 꾹꾹 눌렀다. 주변의 고요함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온풍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답답하게 공간을 채웠다. 문득 두 눈을 감싸 쥔 내 모습이 절규하는 엄마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눈을 뜨고 손깍지 낀 손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이 모습은 너무 심각해 보이진 않으려나. 다시 손을 풀어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이건 또 너무 가볍잖아. 아이 문제로 학교에 불려 온 건데. 나는 무릎 위에 양손을 올려놓은 채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책을 꺼내 들자니 너무 여유로워 보일 것 같았다. 혹은 뻔뻔하거나. 정면 벽에는 빈 책장, 캐비닛, 2인용 소파, 대형 쓰레기통과 빗자루 등이 건조하게 세워져 있었다. 





아니, 엄마가 왜 와? 오지 마. 애들이 본단 말이야. 며칠 전 얘기했을 때도 가타부타 말이 없던 아들은 내가 옷을 입고 나서자 거실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기도 참석해야 하는데 애들이 본다며. 애들 앞에서 엄마가 부끄러운 건지, 엄마와 앉아 있는 게 싫은 건지. 참석 시간 삼십 분을 남겨 놓고 이제와 서류로 대체하겠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대꾸했지만 아들은 고집불통이었다. 피곤함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동시에 쭉쭉 빠져나가는 기운. 아들이 담당 선생님들 앞에서 고분고분 진술해야 할 터였다. 앞으로 학교 생활 잘하겠노라고 말하고 행동해야 할 터였다. 면담 전에 아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해서 좋을 게 없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엄마가 먼저 가서 가능하다면 서류를 쓰고 나오겠다고 말했다. 나라고 즐거울 것 같아,라는 말은 삼켜 버렸다. 



선생님, 학부모 소견서에 무슨 말을 써야지요? 물어 놓고는 성의 없는 질문이 아니었나 싶어 아차 했지만 담임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고, 그렇게 몇 주 전, 나는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이제 나는 새로 받은 종이를 쳐다보고 있다. 결석과 지각 횟수 산출은 이미 끝났고, 두 번째 사회봉사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과정은 부차적일 뿐이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나는 꽤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펜을 들었다. 아이가 학교를 그만 둘 마음이 없다는 것. 친구들과 잘 어울린다는 것. 아이에게 근태의 중요성을 강조하겠다는 것. 앞으로 부모가 잘 지도하겠다는 것. '선처'라는 단어가 떠올랐으나 적지 않았다. 대신 '사랑'과 '기다림'이라는 표현을 적었다. 아이가 아직 진로를 찾아가는 과정이니 지도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나자 한 문장이 떠올랐다. '담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난 일 년, 선생님은 거의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의 출결을 체크해야 했다. 그럼에도 귀찮거나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았다. 빈 공간이 없었지만 나는 종이 하단에 그 문장을 추가했다.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런 종류의 글이라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쓸 수 있다. 혹시라도 소견서만 쓰고 가버린 무심한 엄마로 보일까 봐, 그래서 혹시 부정이라도 탈까 봐, 나는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눌러썼다. 담당 선생님께 서류 전달을 부탁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1층 출구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 끝, 어둠 속에서 여자가 앉아 있었다. 기침을 하던 여자였다. 미동 없는 뒷모습. 맨바닥이 몹시도 차가워 보였다. 잘 해결하고 돌아가시길.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그녀를 지나쳤다. 바깥은 기온이 뚝 떨어져 있었다. 나는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인적 없는 아스팔트 길을 걸었다. 물기가 전혀 없이 야윈 가로수들이 침묵한 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또 하루가 가는구나. 나는 아파트 후문에 들어서며 주변에서 가장 둘레가 큰 나무에게 다가갔다. 내가 어머니 나무라고 칭하는 나무였다. 그 주변 나무를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왠지 어머니처럼 보였다. 나는 나무에게 가만히 손을 대었다가 조심스레 위아래로 쓰다듬어 보았다. 나무는 말이 없었지만 내 손길을 거부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올해 정말 재미있었어. 매일 축구를 했어. 축구가 정말 재미있었어.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래 그래.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일이 되면 또 하루를 살자. 나는 어깨를 조금 펴고 1층 현관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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