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나는 행복했다.
글이 나와서 신기했고, 게다가 죽죽 나와서 신이 났고, 그 글이 팔딱팔딱 뛰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어느 날은 쏟아지는 텍스트의 속도를 손이 따라잡지 못할 때도 있었다.
주로 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이따금 남편, 혹은 친정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덕분에 나는 일상적으로 분개했고, 무기력해졌다. 그럴 때 나는 다급하게 담배를 찾듯 모니터 앞에 앉아 다다다다 텍스트를 쏟아냈다. 그러고 나면 나는 진정되었고, 이내 포만감으로 느긋해졌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게 즉각적인 약발이 되어 주었다. 나는 매일 뭐라도 쓰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안절부절못했고, 이에 매일 글쓰기를 이어 나갔다. 아! 어쭙잖은 내 글에 친절하고도 진실된 공감 댓글 또한 소소할 수 있으나 엄청난 감동이었다.
그랬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과거형으로 쓰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은 꽤 춥다.
가슴 벅찬 아이슬란드 여행기는 여행이 끝났으므로 종료되었다. 사춘기 아들에 대한 연재는 비슷한 레퍼토리가 돌고 돈다는 자각에 관두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년 6개월간 참여했던 온라인 글쓰기 커뮤니티도 잠시 활동을 접었다. 역시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에서였다.
하던 것을 멈추었으나 나는 대안을 찾지 못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하루가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었다. 쓰기를 멈춘 사이, 텍스트는 무색할 만큼 낯설어졌다. '2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지만 단 며칠만 쉬어도 엉덩이 라인이 겸손해진다' 라던 김희애의 말이 떠올랐다. 하물며 작년부터 겨우 글쓰기를 시작한 나라면?
오늘 오전,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수상작 발표가 있었다. 그에 대한 공지글을 스치듯 읽었고, 나는 또다시 바쁜 스케줄을 쳐 나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 글을 내밀고 있다. 글을 쓰지 않는 그 얼마동안 내 마음은 편했으나 또한 공허했다. 그리고 공허함은 점점 더 커져 갔다. 그러니 다시 쓸 수밖에. 쓸 말이 없으면 쓸 말이 없어서 괴롭다고, 혹은 솔직히 괴롭기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뭐라도 솔직하게 쓸 수밖에. 내 글이 못나 보이면 못나 보인다고, 쭉정이 같으면 쭉정이 같다고 쓸 수밖에.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금의환향하지 못했다. 그저 쓰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다시 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그게 나의 가장 큰 깨달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