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아파트 1층 현관문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한파에 공기는 매서웠고, 단지는 고요했다. 서둘러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선 나는 돌연 멈춰 섰다. 맨발에 털 크록스. 파자마 위에 아들의 롱패딩. 잠깐 나왔지만 추위에 잔뜩 웅크린 어깨가 아팠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대로 잠적해 버리면 어떨까.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사라진다면. 50미터 앞 우리 동 현관 입구를 노려보았다.
평범한 하루였다. 집에서 회사 일을 하며 중간중간 작은 아들의 밥을 챙겼다.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지만 집중해 뭔가를 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아들은 스무 번쯤 나를 불렀고, 답답하고 심심하다는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함께 동네를 돌고, 아들을 이발시키고, 장을 보고 돌아왔다. 하기 싫다고 몸부림치는 아이를 겨우 달래 최소한의 공부를 시키고, 채점을 했다.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그릇을 정리하고, 간식을 챙겼다. 하던 회사 업무를 찔끔 더 해서 계속 일하고 있다는 흔적을 남겼다. 청소기를 돌리고, 빨래를 돌리고, 빨래를 개어 서랍에 넣었다. 집은 놀라울 정도로 치운 티가 나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읽던 책을 펼쳐 서둘러 두 세 페이지를 눈에 담았다. 주방에 들어가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남편이 왔다. 저녁밥을 차리고, 치웠다.
시험 기간이지만 큰 아들은 오전 11시에 끝난 시험 후 연락 두절 상태였다. 미용학원도 짼 채 한밤에 들어온 큰 아들에게 저녁밥을 차려줬다. 주방에 들어선 게 일곱 시쯤이었던 거 같은데, 시계를 보니 11시가 다 되어 있었다. 등허리가 뻐근한 지 오래였다. 뻣뻣해진 목덜미를 연신 주물러댔다. 연거푸 찬물을 들이켰다.
오늘 나는 뭘 했던 걸까. 주방에서 잠시 호흡을 고르며 하루를 되돌아보았다. 오늘쯤은 뭔가 글을 좀 써보려고 했는데 도통 집중할 수가 없었고, 결국 한 자도 쓰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에 읽은 책에 대한 게시물을 남겼다. 속 편하고 팔자 좋은 여자로 보일 테지. 그렇게 평범한 하루였다.
나는 패딩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스마트폰이 만져졌다. 스마트폰에 설치된 모바일 신용카드와 자동결제가 설정된 카카오택시 앱이 떠올랐다. 패딩후드를 뒤집어쓰고 지퍼를 목 끝까지 올렸다. 걸음을 뗐다. 우리 집을 지나쳤다. 곧 우리 단지를 빠져나왔다.
시커먼 운동장과 불 꺼진 건물. 단지 끝의 초등학교가 경직된 듯 서 있었다. 겨울방학이 아직 일 주 남은 시점, 초등학생인 작은 아들은 이 주째 집에 있다. 올봄, 아들은 유소년 축구부를 그만둔 후 마음을 잡지 못했다. 이후 취미 축구반에 합류했지만 취미 수준의 축구는 아들의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고, 다른 운동에도 아들의 갈증은 해소되지 못했다. 그 후 눈에 띄게 어두워진 아이의 표정과 날카로운 행동에 나는 몇 차례나 담임에게 상의를 했다. 그럴 때면 담임은 사춘기가 시작된 5학년 아이들이 난리도 아니라며, 우리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고 손사례를 쳤다.
2주 전, 나는 당일에 학교로 불려 갔다. 앞에 앉은 담임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그녀는 본인은 최선을 다했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다짜고짜 분통을 터트렸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계속 부딪힌다며 종이를 내밀었다. 1학기 때부터의 아이에 대한 기록이라고 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난 5월 이후 두 계절이 바뀌는 동안 아들이 학교에서 정말 괜찮은지 몇 차례나 확인했고, 심지어 마지막 상담이 바로 전주였다. 바로 일주일 전과 너무 다른 그녀의 태도를 언급하자, 그녀는 교사는 학부모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좋은 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일일이 나열하면 그것이 학부모와의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녀의 억지스러운 미소에는 피곤함과 포기하는 마음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삼 주 후가 방학인데, 모든 학사 일정이 끝났으니 굳이 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다며, 아이가 부모님과 여행을 하며 시간을 보내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네가 물러터져서 그래. 그럴 때는 정확하게 '이렇게 폭탄 던지기 하듯 몰아서 말씀하시는 것은 잘못된 거예요'라고 선생의 잘못을 지적해야지. 그리고 지가 뭔데 아이 보러 쉬라 마라야? 네가 정확하게 따지고 큰 소리 내야 돼. 안 그러면 부모를 물로 본다니까? 나 지난번 우리 애 학폭 문제 때 담임이 대강 처리하려고 했잖아. 열받아서 제대로 따졌더니 담임이 죽을죄를 졌다고 하더라고. 그래야 된다니까? 네가 엄마잖아. 네가 해야지 누가 하니? 너 항상 회피하잖아. 진짜 걱정이다 너." 방학 전인데 왜 아들이 집에 있는지 묻는 친한 언니의 말에 나는 그간을 일을 쏟아냈다. 그리고...
회피?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니 너무 화가 납니다. 제가 1학기 때부터 아이가 학교에서 괜찮은지 계속 확인을 했고, 심지어 지난주에 방문드렸을 때도 별일 없는 걸로 말씀하셨는데, 지난주와 완전히 다르게 말씀하시니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나는 말했다고. 분명히 말했다고.
"아니, 아니, 그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당신 잘못이라고 정확하게 짚어줘야지. 한번 제대로 해줘야 다음에 너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니까? 만만치 않은 엄마라는 걸 알려줘야 다음에 오라고 할 때 한번 더 생각한다니까?" 교장실을 엎어놨다는 어떤 엄마가 떠올랐다.
"언니... 언니는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소리 지르고 지적하고가 안 돼. 나는 이게 최선이라고..." 나는 간신히 말을 쥐어짜 내어 수화기 너머로 보냈다.
찻길 옆의 인도를 걸었다. 한산한 도로에서 이따금 나타난 차들은 빠른 속도로 내달렸고, 차가 불어 일으키는 차가운 바람이 왼쪽 뺨을 휘갈겼다. 학교에 잘 가지 않은 큰 녀석에 이어 둘째까지. 형에게 영향을 받지 않길 그토록 바랬는데. 왜. 너희들은 왜. 도대체 왜. 끝없는 원망과 함께 그 말이 떠올랐다. '주홍글씨'.
"학교 안 가니까 너무 행복해." 아들의 말에 나는 애매하게 웃고 말았다. 회피든 뭐든 간에 나는 더 이상 아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다. 아들이 선생님이 자기만 혼낸다고 말할 때도 녀석의 응석이라 생각했다. 뭐든 선생님께 직접 여쭙고 상의하는 방식으로 풀어갔다. 교사라는 고강도 노동의 직업. 나는 절대적으로 그들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싫었다. 아이도, 교사도, 내게 조언을 해 주는 자도, 나 자신도.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싶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돼버렸으면.
소설 <남편이 떠나면 고맙다고 말하세요>. 에이미는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아간다. 어느 날, 출장을 간 남편이 그대로 사라지고, 그녀는 육아, 가사, 일을 떠맡게 된다. 그리고 3년 후, 갑작스레 남편이 돌아온다. 남편은 당시의 바쁜 삶 속에서 큰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소설은 에이미의 관점으로 서술된다. 그녀의 입장에서 남편은 에솔 asshole이다. 쓰레기다. "부럽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말이 새어 나왔다.
또 다른 소설 <어쨌거나 스무 살은 되고 싶지 않아>. 고등학생 현준의 아버지는 14개월 전 사라졌다. 아버지의 부재 상황에서 끊임없이 희망과 불안 속을 헤매는 엄마를 보면서 현준의 일상도 무너진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고, 거의 실신 상태의 엄마를 대신하여 냉동고의 시신을 확인한 현준은 그가 자신의 아버지가 맞다고 진술한다. 그렇게 아버지가 아닌 자를 아버지라고 말함으로써 어머니와 자신의 삶에 영원토록 지속될 미제 사건을 종결시켜 버린다.
나는 거리낌 없이 떠날 수 있는 남자들이 부러웠다. 어린 자식이든 아내든 개의치 않고, 아니 너무 미안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결론적으로는 떠나버릴 수 있는 것이 부러웠다. 나 없이도 알아서 살겠지, 미안하지만 할 수 없지, 혹은 지금으로서는 이럴 수밖에 없어, 살기 위해서 떠나는 거야, 혹은 그들이 정신줄을 그냥 놔 버린 상태에 도달한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돼버릴 수 있는, 그게 뭐든지 간에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