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디서 주워들은 이야기 중에 인생을 살다 보면 기회가 3번 정도 온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사십여 년을 살아보니 저도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첫 번째 기회는 어학원 채용 면접 때 왔습니다.중등임용시험에서 몇 번 낙방하고 어학원에 지원했습니다. YBM, 파고다, 민병철 등등 국내에서 유명한 어학원 사무직 채용 공고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사실 모든곳의서류전형에서 탈락했지만 파고다에서 한참 후에 연락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강사지원팀의 외국인강사 숙소 관리자가 평판이 좋지 않아 윗선에서 갑자기 새로운 사람을 채용하라고 긴급으로 지시를 했고, 저는 운 좋게 인사과 직원의 이력서 스캐닝에 걸려서 면접시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면접관 5명에 면접자 5명, 지원자는 꽤 많았습니다. 빈 강의실에서 대기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면접자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CCTV로 태도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데 그것은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제가 드라마나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제 옆에 면접자가 답변을 하는 것을 듣고 면접관들의 표정, 태도, 여러 가지를 보니 어설프게 답변을 하면 그냥 떨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용기가 생겨서 지원동기를 YBM에서 떨어지고 파고다에 지원했다고 답변했습니다.
순간 면접관들의 표정과 자세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다른 면접자들보다 더 많은 질문을 받았고, 가운데 앉아있던 대표님은 제 이력서에 별표를 쳤습니다.
그렇게 3년 정도 어학원에서 외국인 강사들의 숙소를 관리하고 부수적으로 비자 매니저를 돕고 총무팀 업무를 겸해서 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마케팅팀에서 짐을 옮길 때도 돕곤 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기회는 국민학교 동창을 통해서 왔습니다. 본인의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그 친구는 대학전공부터 주변 지인 관리 및 중국 가라오케를 대비해서 노래도 열심히 했습니다. 술 마시는 연습도 무알콜 음료로 했었지만 그것은 쉽지 않았는지 술상무를 찾다가 몇몇 후보 친구들 중에서 제가 합격했습니다.저는 영어를 사용하면서 해외출장도 가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취업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친구의 집안은 30여 년 전에 포장지 바닥 부분에 다른 면을 붙여서 바닥에 두면 그 바닥 부분을 통해서 포장지가 넘어지지 않게 하는 제품을 개발했고, 나중에는 포장지의 상단 부분을 가로로 쉽게 찢어서 열 수 있게 하는 제품도 개발해서 어느 정도의 자본금을 마련했고, 나중에는 상온에서는 쌀알갱이나 비닐 같지만 롤러를 통해 열을 가하면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을 붙일 수 있는 건축자재 접착제를 그 친구의 이종사촌의 도움으로 개발했습니다.
중국에서 미국 제품과 국내 대기업 제품이 선점하고 있을 때 그 친구의 아버지는 영업출신이라 그런지 거침없이 술을 마시며 중국 사업가들과 꽌시를 맺고 쌀알갱이처럼 생긴 접착제 레진 원료를 10여 군데 거래처에 수출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상선에도 문제가 생겨서 수술도 하시고, 그런 모습을 봐서 그런지 그 친구는 본인은 술을 마시기를 꺼려했습니다. 담배도 물론 피우기 싫어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30살에 처음으로 고량주와 중화담배를 중국 상해에서 배웠습니다.
건강문제와 여러 가지 이유로 두 번째 직장을 포기하고 두 아이를 무탈하게 키우기 위해 공무원이나 안정적인 직장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렇게 발을 들인 곳이 외국계 공공기관입니다. 두 번째 직장에서 U.A.E. 무역서류 인증을 받기 위해 종종 한남동 영사과를 방문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만저만해서 4대 보험이 안 되는주한 방글라데시 대사관을 시작으로 급여가 자주 동결되는 주한프랑스 대사관을 거쳐서 현재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요. 65세 정년퇴직을목표로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