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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자 Apr 03. 2020

10 방과 거울



생각이 너무 많아 괴로울 때는 머릿속에 단어의 방을 만든다. 나는 바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사방이 투명한 유리로 이루어진 그 방을 쏘아본다. 바닥에 무언가 날아와 툭 하고 떨어졌다가 다시 허공으로 튀어 오른다. 하얀 공이다. 두 번째 공, 세 번째 공, 네 번째 공, 다섯 번째 공. 공들이 연달아 날아와 여기저기 팝콘처럼 튄다. 가만 보자. 공의 표면에 거뭇거뭇한 무언가가 보인다. 글씨다. 글씨가 적혀 있다. 심호흡을 하고 하나의 공을 집요하게 쫓아 적혀있는 글씨를 읽어 낸다. '청포도'. 빠르게 수첩에 적는다. 볼펜 끝이 종이에 미처 닿기도 전에 '청포도'라고 적힌 공이 뿅 하고 사라진다. 동시에 '청포도'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눈동자가 정신없이 돌아간다. 단어의 공들이 벽과 바닥, 천장에 번갈아 부딪치며 튀고 또 튄다. 공은 순식간에 수백 수천 개로 늘어난다. 다음 표적이 될 공을 정한다. 쫓는다. 글씨를 읽는다. 적는다. 공이 사라진다. 생각이 사라진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어느덧 텅 빈 단어의 방을 마주하게 된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시간의 틈에서 살그머니 몸을 움직여 헤엄친다. 툭. 다시 어디선가 단어의 공이 날아온다. 흐르던 정적이 깨진다. 그제야 찰나 혹은 영원 같던 그 얼마간의 시간의 틈을 알아차린다. 정신없이 튀어 오르는 공들로 방은 금세 시끌벅적해진다. 다시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하다.


수첩에 적은 단어들을 훑어본다. 보통 한 어절의 단어 혹은 몇 어절이 이어진 짧은 어구이다. 대부분 익숙하지만 뜬금없는 것들도 많다. 이렇게나 엉망진창인 머릿속이라니! 나는 머리에 든 생각을 말로 설명하는 일을 잘하지 못한다. 글을 써야 뒤죽박죽 엉킨 털실 뭉치의 실오라기 끝이라도 그나마 붙잡을 수 있다. 거기서 시작이다. 그렇게 새로운 실타래를 만든다. 글쓰기가 의식을 정리하는 와중에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면, 단어의 방을 마주하는 일은 무의식을 훔쳐보다가 우연히 의식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는 대체로 별생각이 없지만, 한번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잠식되지 않으려면 한 번씩은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 이건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누구나 시도하는 즉시 알게 된다. 꽤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신 효과가 썩 오래가지는 않는다. 게다가 본질적으로는 잡생각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시간 벌기'일 뿐이다. 요즘엔 그마저도 그냥 둔다. 방은 여러 개이고 나는 결코 잠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누군가 단어의 방 안에 들어와서 공을 수거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건 그렇고 그 공들은 도대체 누가 던지는 걸까. 우리 현대인들은 한없이 연약해서 마음속과 머릿속을 들여다볼 방법 쯤은 하나씩 만들어 놓고 산다. 두통 치통 생리통에 게보린인 것처럼. 그야말로 상비약이다. 당장은 '빠른 효과와 짧은 지속력을 가진' 진통제 수준이지만, 나중에는 영양제나 보약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명상이고, 누군가에겐 기도이고, 누군가에겐 멍 때리기일 그것은 꼭 어떤 행위일 필요는 없다. 누구나 제 마음속과 머릿속을 들여다볼 줄 안다. 다만, 바쁘거나 피곤할 뿐이다. 고개를 들지 않은 누군가는 두려워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몸, 몸을 바라보는 일에는 오히려 제약이 많다. 거울(거울과 같은 기능을 하는 모든 것) 없이는 나의 몸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마저도 좌우가 뒤바뀐 2차원의 다른 세계 속이라니! 그건 내가 만들어 낸 단어의 방보다도 불완전하다. 사진이나 영상에는 '지금'과 '여기'를 적용할 수 없으니 논외로 하고, 거울 없이 나의 몸을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이 또 있다. 이탈이다. 두 번째 이탈에서 누워있는 내 몸의 일부를 보았지만,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을 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몸의 정체성은 대부분 얼굴에 있지 않은가. 무의식적인 두려움이다. 방바닥을 닦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닌 뒤통수만 쳐다보았던 것도 두려움 때문이다. 누워있는 내 몸을, 내 얼굴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몸에서 빠져나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확인해야 한다.


몸에서 빠져나와 먼저 두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라텍스 장갑을 낀 것처럼 희끄무레한 손 모양의 덩어리가 보였다. 피부의 주름이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을 뒤집어 손등을 보았다. 손가락 마디와 손톱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대충 그려놓은 것 같은 뭉뚝한 손가락들이 춤을 추며 둘씩 셋씩 뭉치는 듯하다가 다시 열 갈래로 갈라졌다. '그것'은 손이지만, 손이 아니었다. 고개를 들고 침대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거울로 천천히 다가갔다. 다시 희끄무레한 덩어리가 나타났다. 머리카락도 이목구비도 보이지 않았다. 물감으로 눈코입을 그리고 물에 흠뻑 젖은 수채화 붓을 슥슥 문질러 놓은 것 같았다. '그것'과 나 사이에 거울이 없다면 그 덩어리를 '나'라고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아는 나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울을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 보고 있으니 그 덩어리는 분명 '나'였다. 고개를 좌로 우로 돌려보았다. 이목구비의 마블링이 꾸물꾸물 모습을 바꾸었다. 어깨 아래로는 분홍빛이었다. 고개를 돌려 침대 위에 분홍색 스웨트셔츠를 입고 누워있는 나를, 가만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보았다. 고개를 숙이고 몸에서 빠져나온 나의 손가락이 추는 춤을 보았다. 고개를 들고 거울 속에 비친 이목구비의 마블링을 보았다. 나는 하나였다가, 둘이 되고, 셋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무엇도 될 수 있다. 순간 감정인지 생각인지 모를 무언가가 내 안에서 회오리가 되어 몰아쳤다. 나는 곧장 창문을 통과하여 날아갔다. 동네 골목을 빠져나왔다. 오른쪽으로는 푸른색의 거대한 물줄기 흘렀고, 군데군데 형형색색의 컨테이너를 실은 거대한 화물선과 크루즈선이 정박해 있었다. 입을 딱 벌리고 한참이나 그 기가 막힌 광경을 바라보다가 몸으로 돌아왔다. 나는 뭐든 할 수 있고 무엇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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