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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hamalg Mar 04. 2020

48. 커피는 역시,

첫 모금. 달짝지근하고 혀가 데일만큼 뜨거운 온도.

오~. 하는 짧은 탄성이.

세 모금, 네 모금 먹다 보면 금세 맛이 없다.

너무 빨리 식어버려 그런가.


언제나 탕비실 한편에 그득히 쌓여있었다. 비어있는 걸 본 적이 없어 아무도 먹질 않아 그렇게 거기 내도록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어쩌면 계속 열심히 채워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줘도 안 먹던 믹스커피를 이제는 돈 내고 사 먹는다.


후회가 남는 지난 10년인데, 그래도 배움은 있었다.

여태 후회 없이 살았는데, 얼마나 아무 생각 없이 살았는지에 대한 방증인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참- 용감무쌍하다. 실수가 후회스러운 건 아니고, 그 당시에 실수로부터 깨우친 바 없다는 점이 못마땅하다. 머리를 폼으로 달고 다녔다. 그저 치장할 줄만 알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지금도 퍽 많이 알게 된 건 아니지만, 왜 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걸까. 사리분별을 할만한 나이가 된 듯도 한데.


인복이 있는 편이라 자부하는 나지만, 내 기억에서 모조리 도려내고픈 끔찍한 악연이 하나 있다. 아니지. 도려내고픈 건 그가 아니라 그의 옆에 얌전히 숨죽이고 있던 멍청한 나. 고백하건대, 그를 진정으로 사랑한 때 있었을까 의문이다. 나 자신조차 나를 속였던 건 아니였을까.


첫사랑과 헤어진 후, 아무나 되는대로 만났지 싶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주에 몇 번씩 만나 사랑한다 난리 치던 누군가와 헤어져도 2, 3주 뒤엔 또 다른 이에게 꽃을 받고 사랑한다며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혼자여도 괜찮아지던 즈음에 그를 만났다. 소개팅이었는데 여의도 공원에서 축제가 열리는 걸 몰랐던 탓에 30번 이상 나가본 소개팅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본 지각.  소개팅이 참 묘하게 흘렀는데, 그는 곧이어 결혼관에 대해, 꿈꾸는 가정에 대해,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읊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어렸지만 자기가 똑똑하다고 착각할 만큼 멍청했던 내게는 아주 잘도 먹혔다.

결혼하면 미국으로 가서 함께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느니, 겨울엔 혼자 강원도에 있는 별장에 내려가 책을 읽는다느니. 게다가 동향이었고, 유학기간도 비슷했으며 입사 시기도 얼추 맞아서 공감대가 많았다.


툭 까놓고 이야기해서, 그때의 나는 그가 말한 대로만 된다면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 하고 살 수 있겠다는 계산이 바로 섰을 거다. 그러니까 그런 허황된 계산이 그와의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나가는데 아주 크고 견고한 기반이 되었다. 그를 알아가는 만큼 그 기반은 더욱이 단단해졌고.


그 관계를 끝에 끝까지 끌고 나갈 힘이 되어준 저 견고한 기반 안의 얄팍한 허영심이 두고두고 개탄스럽다. 평생 듣지 않아도 되었을 되도 않는 궤변들을 많이도 참고 견뎠다.

어떤 마음으로 일하고 있는지 입 아프게 설명했지만 박봉으로 일하느니 자기 형수(참 좋은 분이셨다)처럼 일주일에 몇 번만 아버지 회사에 잠깐 들리고는 월급을 많이 챙겨가면 편하지 않냐는 둥,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냐는 둥, 왜 그렇게 과소비하냐는 둥, 어머니는 재혼 안 하시냐는 둥, 너희 가족의 끈끈함이 소름 끼친다는 둥...


그럼에도 그를 탓할 건 없다. 그래도 좋다고 옆에 있어보겠다고 부단히 애써가며 기꺼이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바꿔버린 건 내 선택이고 결정이었으므로. (등신 등신 이런 등신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건 상대방이 싫다기 보단 그저 그를 대하는 나 자신을 싫어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을 뵙고, 종종 온 가족과 식사를 하고, 그렇게 진짜 결혼하는구나 했더랬는데. 카톡 이별 통보로 그 소란은 종결됐다.


평생 하고자 했던 일에서 손을 놓았고(물론, 그가 기폭제가 되었을 뿐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으니 그가 아니어도 평생 하진 못했을 테지만.), 미국 대학원을 준비하던 그였기에 같이 공부하면 되겠다 싶어 로스쿨 입학을 준비했고(해서 나쁠 건 없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또 어쩌면 인생에 두 번은 없을, 진심으로 사랑하던 사람과 다시 이어질 수도 있었던 그 기회를 영영 놓쳐버렸다.


나의 악연은 부산 본가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결혼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이어지며 슬슬 관계가 으스러지고 있을 때 즈음 헤어진 지 5년이 지난 첫사랑이 처음으로 연락이 왔다. 나야 종종 연락하고, 진상도 부렸지만 그가 먼저 연락 온건 처음이었고, 그리고 그렇게 끝이었다.


내내 둘 중 하나 결혼하기 전에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다. 항상 궁금했고. 여태껏 종종 꿈에 나오는데, 다시 잘해보고픈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그냥 그렇게 잊히지 않고 맘 한편에 쭉 존재해왔다. 다시 그와 같은 사람을-어쩌면 그냥 그를-만나고픈 마음을 단념했던 것에 그치지 않았단 걸 뒤늦게야 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생각이 많이 난다고. 괜찮다면 보고 싶다는 진실되고 담백한 연락. 그 공허하고도 알량한 계산이 없었더라면, 나는 당연지사 그 사람을 단박에 보러 갔을 텐데.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로 거절했던 나의 후회는 영원하다. 나를 송두리째 지워내는 대신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겠단 이를 지키려고 대체 나는 무엇을 잃은 것인지.


그로부터 한 1년 뒤 즈음에 첫사랑의 결혼 소식을 들었다.

그때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슬픈 건 아니었는데 요즘은 문득이 슬퍼지려 한다. 이제야 내가 무엇을 취하고자 어떤 것을 잃었는지 깨달은 탓이다.


22살의 어린 나를 존중해주던 그 시절의 그 사람만큼 내 나이도 차 버렸다. 22살의 나는 30대의 어른들이 다 그 같을 줄 알았나 보다. 웬걸. 나는 그의 훌륭함이, 아름다움이, 나이에서 오는 특별함이라 여겼는데, 나이 먹는다고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이만 먹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나처럼 그저 나이를 먹을 뿐, 아름다워 지진 않는 듯하다. 그는 본디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뿐이다.


작년 송년회에서 한참 먹고 떠드는 와중에, 학교 동기가 우스갯소리로 "너는 돈 많은 남자만 만나잖아!"라는 농담을 던졌다. 옳소. 난 도대체 뭔 헛짓거리를 하면서 20대를 써버린 건지 모르겠다. 이제 절대 돈에 눈멀어 소중한 이를 놓치진 않을 거라 굳게 다짐하는데, 소중한 이는커녕, 돈 많은 이도 없다.


회사 동료들 뿐 아니라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결혼에 돌입들을 하고 있다. 나만 그저 멈춰있는 느낌. 결혼은 몇 년 전만 해도 나의 입버릇이었다. 그게 부담스러워 나를 떠난이도 있고, 결혼을 원하면서도 하고픈 다른 일이 워낙 많던 나와의 미래를 그릴 수 없다는 말로 나를 떠난 이도 여럿 있다.


첫사랑 이후에 열심히도 만났던 사람들을 실은 사랑한 적 없단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통에 나는 점점 저만치 멀어지는 친구들을 제자리에서 보고만 있다. 아니지 이제야 깨달은 게 아니라, 이제야 겨우 인정했다. 속물인데 아닌 척 자신을 속이려 애썼던 우스광스러운 과거를. 속물이 나쁜 게 아니라 아닌 척하는 위선이 그른 것이다.


그 모두에게 열정적이었던 이유는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 주어진 맡은 바 업무를 처리하듯, '여자 친구'로서 해야 할 도리를 오롯이 해냈다. 옆에 누가 있던지 간에. 그렇게 연애라는 이름으로 소비한 시간들이 아깝다. 분명 좋았던 시간도 많지만, 그 많은 노력을 기울일 만큼 압도적인 행복감을 주는 일도 없었는데...

물론 그들도 그닥 행복하진 않았을 테고.

 

평생을 당연히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전제하에 미래를 그려왔더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그리는 상상 속에서 나는 앞으로도 그저 계속 동생의 언니이고, 엄마의 딸일 뿐이다. 얄팍히 쌓인 법 지식으로 보니 제도적으로 퍽 쉬이 이뤄지는 결혼이 되돌리기는 얼마나 어려운 결단인지 무서운 마음이 든다. 그때 그들 중 한 명과 결혼했다면... (망...)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가는 현재의 터전이 점점 더 좋아지기만 해서 확실한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전혀 다른 미지의 터전으로 옮기는 일은 떠올리기만 해도 아찔하다. 악연을 겪지 않았다면 여전히 결혼을 입버릇처럼 외치며 의미 없는 만남을 이어가다, 별생각 없이 터전을 옮기려 했을지도 모르니 감사해야 할 일일까.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고 갔는데 결국 똥이네! 이걸 어쩌지? 하는 고난은 피했으니 분명 감사할 일이다. 그들이 똥이란 게 아니라, 사랑 없이 그렇게 가버렸다면 그 새로운 터전이 내게 똥이었을 거란 의미이다.


나처럼 똥, 된장 구별 못하는 인간은 홀로서도 어찌 돌아가는지 정신없는 하루들을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가 되어 더 어렵고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 편이 현명한 것 같다. 이젠 정말 꿈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사람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운 좋게 또 만난다면 모를까.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 평범하고, 인생에 두 번이나 그런 인연을 만나는 이야기는 나라는 인간을 아름답게 가꾸어 내는 일보다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믹스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카페인 함량이 낮아서다. 로스쿨 입학 후 도진 식도염은 만성이 되어 하루 종일 속을 할퀸다. 입맛에 맞는 진한 커피에 스민 독한 카페인은 한층 더 지독한 생채기를 낸다.


믹스커피는 식으면 먹을게 못되는데, 신기하리만치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20대 때보다 차분해진 것도 같은데, 실은 모든 일에 의욕이 많이 식어버렸다. 욕심이 줄었지만, 그만큼 예전처럼 열심히 지내지 못한다.


머그컵 워머라는 게 있단다. 온열 기능이 있는 컵 받이. 계속 따뜻한 온도를 유지해준다. 21세기 만세! 제품 설명을 읽어 보니 커피가 가장 맛있는 온도는 55도 정도. 순식간에 식어버려 3분의 1 이상 버려지는 나의 믹스커피 한잔을 위해 사볼까 싶다.


너무 보글거리며 아등바등 뜨거울 필요 없이, 그 정도로만 따뜻하고 푸근하게 지내면 될 것도 같다. 그러면 또다시 눈이 먼 채로 소중한 것인지도 모르고 버려버리는 일 없이, 조금은 더 현명하고 똘똘하게 배움 있는 하루하루가 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후회 없이 살려 애쓰다 후회할 실수 따윈 없었다는 듯 자신을 속이는 하루하루들이 쌓여왔다. 후회 없이 그저 완벽하게 자랑스러운 과거 따윈 현실이 아닐 테니, 자신의 실수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고 직시할 수 있는 정직하고도 겸손한 사람으로 목표 설정을 살짝 틀어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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