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흔 너머 Nov 19. 2024

나의 하루, 일 년을 계획할 수 있는 사람

#계획하지만 일하지 않는다 #넌 인생 2회 차?

내가 생각하는 '멋진' 사람이 무엇인지
나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후회하기도 하고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멋진 엄마로 사는 것인지

멋진 엄마 되기를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된다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았을 것 같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굴러간다면, 내 계획대로 된다면 어떨까...?

참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그런 인생이 어디 있을까? 인생은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노예도, 시인도, 왕도 될지 모르는데.


만약 그런 인생을 산다 하더라고 처음엔 재미있고 멋지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결국엔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유한함과 우연의 무한함, 그 속의 나.

유한함이 인간의 나약함을 의미할지 모르지만, 삶에서의 무한한 우연의 갈래들에 마주설 때마다 그 유한함때문에 비로소 생기를 얻는다.

한 번뿐인 삶, 다시 돌아오지 않는 현재, 그래서 선물 같은 지금 이 순간.


그렇기 때문에 내 인생의 키는 내 두 손으로 움켜쥐어야 한다.

운명의 바닷속에 이리저리 흔들리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제1조건이 아닐까?

우리가 끊임없이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는 것도 이 최선 중 하나다.

그 계획이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 될지, 혹은 운명의 파도타기에 성공해 그 너머에 손을 뻗을 수 있을지, 계획을 세우는 지금은 모른다. 

그래도 세우고 보수하고 무너뜨렸다 다시 세우는 작업에 몰두한다. 

때론 그 시간이 더 설렐 때가 있으니 그걸로 됐다.


Edward Burne-Jones. The Wheel of Fortune, 1883.


온 가족의 일기 쓰기


제주 1년살이를 시작하며 다이어리 4권을 사서 온 가족이 나눠가졌다. 

뭘 쓰냐, 매일 쓸 필요는 없냐, 약 1분쯤 흥미로워하며 다이어리를 뒤적이더니 이내 아이들의 관심밖이 되어버렸다. 

야심 차게 온 가족 일기 쓰기를 기획했던 나조차도 말이다.


이 일기장이 모두에게 외면받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열심히 쓰고 있는(아니, 아직까지도 쓰고 있는) 가족구성원은 바로 큰아이. 

큰아이는 원래 기록을 숨 쉬듯 한다.

장 보러 갈 때 나도 안 쓰는 쇼핑리스트를 이 아이는 쓴다. 

핸드폰을 사줬더니 손에서 놓질 못하길래 처음엔 인터넷을 하나, 문자를 하나 괜히 불안해 버럭버럭 화만 냈다. 

그런데 아이는 메모장에, 혹은 자기 스스로에게 보내는 문자에 끊임없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마음에 남기고 싶은,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었다. 

화낸 것이 머쓱해졌다. 


생각해 보면 큰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이야기를 만들어 쓰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 있는 이면지를 자르고 붙여 노트를 만들고, 글/그림까지 채워 넣었다.

함께 노는 친구들이 생기자 이제는 놀이 계획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조금 더 커 축구선수가 본격적으로 꿈이 되기 시작하면서, 이젠 일주일치 한 달 치 훈련 계획을 쓴다.

축구만 하냐고, 공부도 좀 하자고 잔소리를 하니 공부 계획을 포함한 할 계획, 일주일 계획, 한 달 계획을 쓰기 시작했다.


6개월이 되도록 다이어리를 단 한 장도 쓰지 않은 남편은 알고 보니 블로그에 매일 한 줄을 쓰고 있었다. 

매일 본 것, 한 일을 사진 몇 장과 올려두니 별 내용은 없어도 그새 추억의 뒷장이 된 몇 달 전 풍경들이 새록새록해진다. 


결국, 나와 둘째만 기록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 나는 여기서 있었던 일, 느끼는 거 나중에 다 기억할 거예요. 나는 원래 그래요.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도 기억나는데요!"

허세 가득, 둘째는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그래. 결국 이 일을 시작하자고 한 엄마만 실패다.


계획하기와 실천하기: 그 간극에 대하여


나는 늘 계획하지만 끝맺음에는 서툴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까지가 제일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 재미와 흥의 굴곡은 일의 전반전을 지날때쯤 되면 급격히 떨어진다. 

그즈음이 되면 새로운 프로젝트 아이디어에 기웃댄다.

난 늘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계획과 실천은 명백히 다른 측면이다.

삶을 계획하지 않는다고 삶을 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즉 계획이 늘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계획은 그저 다음 발걸음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게 옆구리를 슬쩍 찔러준다. 

목표에 이르는 확률을 좀 더 높여주는 것 같은, 막연함을 선명함으로, 불안을 기다림으로 슬쩍 바꿔치기하는 효과가 있다. 


계획예찬론자 같지만 앞서 말했듯이 나는 섬세하게 계획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손에 닿지 않는 먼먼 꿈과 목표를 별처럼 두고 걸어가는 사람이지, 그 목표에 닿기 위해 현실적인 계단을 하나하나 촘촘히 쌓는 것과는 거리가 오히려 다소 멀다고 볼 수 있다.

계획은 계획일 뿐 언제든 변경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나는 계획의 헐거움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다. 

듬성듬성 징검다리처럼 계획의 돌을 던져둔 후 융통성 있게 그 사이를 메우며 산다. 

뭐 그렇다고 늘 이런 것은 아니고, 필요할 땐 두드려가며 건너도 될만한 돌다리를 쌓기도 한다. 

그래야 일이 돌아가는 것들이 있으니까... 사회인이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징검다리식 계획하기는 그 사이사이를 행할 때의 창의성과 융통성을 허용하는 장점이 있는 대신 갑자기 건너기 싫어질 때에 대한 대비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단점이 있는 것 같다. 

보통은 스스로의 의지가 그 길을 인도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타인 혹은 외부 상황(예를 들어 deadline*)이 추진력이 되곤 한다. 


어쨌든 나는 (아마도) 태생적으로 계획하기와 실천하기 사이의 간극이 한강처럼 넓은 사람이다.

지난주에도, 몇 달 전에도, 일을 벌여만 놓고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계획한다.

나도 내가 우습다. 뭐 하겠다고 끊임없이 "계획만" 하는 것일까?


계획하기와 계획 쓰기: 손으로 눌러쓰는 다짐


우리는 종종 스스로와 다른 사람에게서 큰 매력을 느끼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큰아이의 계획 쓰기 습관은 볼수록 참 신통방통하다.


서울에서 친구들이 놀러 왔다. 

무려 4 가족이 제주에 모였다. 

친구들의 이 여행을 위해 몇 개월에 걸쳐-제주에 오기 전부터 제주에 놀러 올 친구들과의 시간 계획을 시작했다면 믿겠는가!- 2박 3일의 계획을 짰다. 

한 페이지짜리 계획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개별 게임을 위한 준비, 그리고 이 게임이 모두 진행된 후 얻은 R머니(아이 이름의 이니셜 R이기도 하고, 런닝맨에 심취한 흔적이기도 하다)를 사용한 경매 준비는 따로 기록되었다. 

오우, 배운 적 없으나 행사 기획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


친구들과 1박 2일 계획의 흔적


그나저나 얘는 도대체 왜 쓰는 것일까?


계획을 '쓰는 것'은 계획의 필수조건은 아니다.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큰아이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본 결과, 계획을 "쓰는 것"은 일종의 다짐 같다.

키보드 몇 번으로 매주 반복 일정을 입력해 넣을 수 있고, 마우스 한 번으로 어제의 계획을 오늘로 옮길 수 있는 편한 세상을 살고 있는데 손으로 굳이 종이에 눌러쓸 이유가 어디 있나 싶다.

그 시간에 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뭔가 있다.

쓰는 행위의 불편함과 번거로움이 무엇을 자신의 인생에 더하게 되는지는 쓰는 자, 본인만이 알 것이다.

구글캘린더에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계획하고 있는 나는 모를 그 어떤 것.


아이가 쓰고 있는 자녀인생계획서


계획 쓰기의 끝판왕은 큰아이의 핸드폰에 있었다.

작년에 독서모임 책으로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읽은 적이 있다.

진도가 하도 안 나가서 읽다 뒤집어 놓고, 읽다 뒤집어 놓고... 다 읽고 난 후에도 한 달은 집에 굴러다녔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또 온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뭐 하는 거야, 하루종일?" 

다시 한번 버럭거리며 핸드폰을 보는데, 메모장 한가득에 <인간관계론>의 일부가 메모되어 있었다.

이건 무엇인가??

왜 이걸 메모장에???


부끄러워하며 아이는 말했다. 

"나중에 내 아이한테 말해줄 인생계획서예요."


나는 이 일이 있고 나서는 아이가 핸드폰을 붙들고 있어도 메모장에 뭘 끄적이고 있다면 조용히 돌아선다. 

집에 연필자국이 문드러져서 지저분한 종이쪼가리가 돌아다녀도 절대 화 안 내고 고이 접어 한편에 정리해 준다.


나의 하루, 일 년을 계획할 수 있는 사람


집에 어마어마한 능력자가 있어 스스로 어깨 으쓱할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하루, 일 년을 계획할 수 있는 사람 축에는 드는 것 같다. 

만약 그 계획을 실천으로 가져올 수 있는 능력까지 내가 갖췄다면 아마 나는 천하무적일 텐데.

아직 그 정도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엄마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있는 사람이었어(당연히 지금도 그렇지).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지금도 엄마는 그래).

꿈은 변할 수 있어. 하지만 계획할 줄 아는 이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엄마는 오늘도, 꿈을 꾸고 있어. 

엄마는 새로운 꿈을 만들어내고, 그 꿈을 위해 징검다리를 만들어가는 사람이야.

어때, 멋지지?



* deadline 데드라인, 마감일자라는 뜻으로 주로 쓰이는 이 말은 미국 남북전쟁당시 포로수용소에서 넘어가면 사살될 수 있는 경계선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죽음"의 선인 것이다. 이 말은 19세기말 이후 신문기사를 특정 시간까지 마감해야 하는 시점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고, 현재에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어떤 일이든) 완료되어야 하는 최종 시한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게 이 데드라인은 계획을 실천으로 이끄는 마법 같은 용어로 쓰이고 있다. 언젠가는 "목숨 걸어가며" 실천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기를...... (과연 가능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작아 편지]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오지 않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