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던 것 같다. 아니, 분명 불호였다. 내가 신맛을 좋아하게 되다니! 생각할수록 신기할 따름이다. 로스팅과 브루잉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커피 특유의 맛에 익숙해진 듯 하다.
산미를 느끼는 역치 자체가 높아진 모양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커피를 "이거, 되게 시다. 안 그래?" 말하는 여자친구 반응이 말해준다. 이제는 왜 사람들이 "커피 매니아가 될수록 고소함보다 산미를 찾게 된다"고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다.
미식美食의 세계에서 신맛은 비싼 맛, 고급스러운 맛으로 대접받는다. 몇 년 전 코우지라는 유명 오마카세 셰프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는 "오마카세 경험이 없다면 20만원이 넘는 유명 하이엔드 오마카세보다는 저렴한 미들급 스시야부터 가보시라"고 조언했다. 하이엔드 스시야일수록 샤리(밥)의 간이 세고 신맛이 강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커피가 그렇듯 스시도 매니아 취향으로 갈수록 신맛이 강해진다고 한다.
코우지 셰프
사실 신맛이 미식 트렌드의 중심에 선 것은 인류 역사에 비춰보면 꽤 이례적인 일이다. 오랫동안 신맛이란 경계의 맛, 위험의 맛이었다. 인류는 신맛을 통해 음식 안 미생물이 자라 부패했을 가능성을 가늠하곤 했다. 부패해비린내가 심해진 고기나 생선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다버렸던 까닭이다.
신맛이 각광받는 이유를 바로 이 지점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신맛은 단맛이나 감칠맛처럼 호불호 없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그런 대중적인 맛이 아니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는 것. 신맛을 동양인보다 몇 배는 둔감하게 느끼는 서양인들의 음식이 '고급스러운 맛'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신맛=고급'이란 인식이 생겼다는 시각도 있다. 일리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커피 커핑 때 흔히 등장하는 '말릭산'이니 '시트릭산'이니 '타르타르산'이니 하는 것들은 커피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미와 관련한 물질(유기산)은 아주 미량이라 인간의 혀가 감지하고 구분해낼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커피에서 이런 신맛들을 척척 구분해내는 것일까? 이는 커피의 향과 입안을 자극하는 물리적 감각이 우리 기억 밑바닥에 각인된 어떤 맛을 떠올리게 하는 것뿐이다. 말하자면 혀의 교란, 뇌의 착각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