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사계절을 거쳤는데도 어쩔 작정이 없다면 그냥 끝날 것 같아."라고 말해버렸다. 마음 한구석에 있던 답답함을 나도 모르게 툭하고 꺼내버렸다. 상대방이 채근하면 할수록 도망가는 성격인 것을 알기에 그냥 좀 더 느긋하게 있어보려 했었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 동안 쌓이는 추억만큼 이게 무너질 까봐 두려워하는 마음도 같이 커졌다. 우리의 끝이 열매가 달리는 게 아니라 알맹이 없이 빈 껍질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거라면 애초에 이 나무에게 들이는 시간과 노력, 고생 자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이 사람과는 별개로, 나는 왜 끝이 정해진 연애를 하고 싶은 걸까.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쌓여 어떠한 결론이 나는 게 아니라 결론은 정해놓고 그걸 향해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왜 자꾸 생기는 건지. 연애와 그 연애하는 상대방을 통해 안정감을 얻어 내고야 말겠다는 집착이 이런 방향으로 나를 이끈다. 어느 정도 기간을 둔 안정감을 넘어 온전하게 안정될 수 있는지조차 모르면서.
하지만 연애란 건 안정되지 못한 이 불안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이고, 이 불안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 사람만이 연애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상대의 마음이 나와 똑같지 않다는 것, 그리고 상대와 나 모두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연애의 기본값이다. 아무리 신실하게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해도 상대와 나의 마음이 모든 순간에 합치될 수는 없기에 다른 마음을 가진 타인임을 인정하고 감내해야 한다. 같은 상황을 겪고도 한 사람은 사랑이 더 깊어질 수도, 한 사람은 더 얕아질 수도 있다. 나는 이런 변화가 올까 두려웠고 상대방의 생각까지 나와 같기를 바라며 상대가 얕아지는 순간이 온다면 내가 그 순간을 포착해 먼저 발을 빼어 상처를 덜 받고 싶었다. 또 나는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아무리 사랑한다 말해도 너도 나도 사람이니 불어오는 바람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지금의 사랑은 지나간 것도 다가올 것도 아닌 지금에서 끝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겠다. 그러니 지금은 우리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