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시간 Sep 11. 2023

2박 3일 동안 씻지도 않고 온 아이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디까지 포기해야 더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2박 3일 동안 아이아빠에게 면접교섭을 다녀온 아이는 팬티 한 장 갈아입지 않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정은 있었다. 아이가 아이 아빠에게 면접교섭을 가고 하룻밤이 지난날.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랑 시간을 보내는 날이면 연락을 해도 잘 받지 않던 아이가 먼저 전화를 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 아빠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울음을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랑 놀려고 왔는데 아빠랑 같이 놀지도 못하고 너무 슬퍼." 우선 전화를 끊고 아이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이제는 정말 어떠한 감정의 씨앗도 남아있기 않기에 괜찮으시냐고 정중히 묻고 독감에 걸렸다는 이야기에 내가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게 스케줄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전남편은 자기도 아이를 볼 수 있는 컨디션만큼은 된다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나는  울먹이던 아이의 모습이 생각나 혹 9월 다른 주말에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단칼에 주말에 시간을 전혀 낼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평일에 한날이라도 아이를 만날 수 있겠냐고 물었다. 평일도 역시 단 하루도 시간을 낼 수가 없다고 했다. 화가 났다. "내가 나 때문에 그런 게 아니잖아요." 결국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던지고는 후회했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헤어진 거였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가늠하기 힘든 인연의 끝을 정확하게 알고 끝맺음을 했는데, 계속 어느 정도는 맞닿아있어야 하는 이혼한 부부의 모습이란. 참 넌더리가 난다. 전 남편과의 연락 자체보다는 전 남편 때문에 티끌만큼이라도 영향을 받아 나빠지는 기분이 더 싫다.


결국 아이에게 다시 전화를 했고 아이는 그래도 아빠랑 더 있다가 하루를 더 보내고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고민을 하다 어차피 다른 날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러라고 하고 다음날 아이를 맞이했다. 그리고 아이의 짐을 정리하는데 한 번도 갈아입지 않은 속옷이 나왔다. 2박 3일 동안 정말 아이는 혼자 소파에 누워 티브이만 보다가 왔다고 한다. 애한테 씻으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아이가 알아서 씻을 나이인데 그 한마디조차 고려하지 않다니.  


이제 우리라는 말로 묶이기도 싫지만 너와 나의 아이 아니던가. 왜 나에게는 이토록 귀한 존재가 너에게는 부질없어진 거냐.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다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새끼가 누군가한테는 저렇게 부질없는 취급을 당하는 게 열이 받았다. 만약 내가 면접교섭을 하는 쪽의 입장인데 부득이하게 아이를 못 보게 됐으면 먼저 아이를 볼 수 있는 다른 날을 찾고, 허락을 구했을 것 같은데. 아이를 통해 말을 전달하는 태도나,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는 태도에서 오히려 그런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해 줘서 고맙다 해야 할지... 내 속에 이는 천불을 꾸역꾸역 삼켜 잿빛이 된 마음을 오늘도 찬물로 식힌다. 연기를 내뿜으며 차갑게 식어가는 마음이 더 이상 뜨거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