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오랜만에 집에서 편안한 저녁식사를 하고 난 산책시간. 아이는 느닷없이 "엄마, 나 몇몇 친구들한테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고 말했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혼한 사실을 딱히 숨기 거나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되도록 친구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했던 마음도 있었기에 조금은 당황했다. "친구가 뭐라고 해?"라고 묻자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지 않냐고 묻더라고, 아빠 한 달에 두 번씩 보는데 뭘. 자주 보니까 괜찮다고 해줬지."
생각했던 것보다는 가볍게 이야기하는 아이의 말에 안도하면서도 혹 그 이야기로 인해 아이가 상처를 겪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나 역시 이혼 사실을 떠벌리고 다닌 건 아니지만 딱히 숨기지도 않았었다. 직장생활을 하고 사회관계를 맺으면서 상대방에게 더 이상 남편이 있는 척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야기를 해왔었는데 아이 역시 아빠랑 같이 사는 척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친한 친구들에게는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아이도 이제 이 상황을 비극적으로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혹 그걸로 인해 너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거나 놀리는 친구들이 있다면 무시하거나 따끔하게 충고를 해주고 관계를 끊어도 괜찮아. 오히려 그 아이들이 너라는 좋은 친구를 잃은 거니까 그 아이들 손해야."라고 말했다. 아이는 "응. 엄마 나도 알아 그 애들 손해지 뭐. 그래도 속상하기는 하겠다. 그렇지?"라고 대답했다. 아이에게 속상한 건 엄마에게 언제든 얘기하면 들어주겠다고 우리는 어쩌면 비슷한 상처가 있는 셈이니 우리가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고 산책을 이어갔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와 한 대화가 문득 떠올라 아이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은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아무리 요즘 이혼이 많다고 해도, 주변 친한 친구 중에 이혼한 친구는 한 명뿐이다. 직장에서도 나 혼자 뿐이다. 다수가 아닌 쪽에 속한다는 것은 다수가 당연하게 말하는 내용에 내가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로 인해 내가 내 처지를 그 순간순간마다 비관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에게 했던 말대로 아이도 나도 나의 상황을 떠나 삶을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남들의 이야기를 신경쓰지 않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