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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시간 Jan 30. 2024

아이의 휘파람 소리

오늘도 아이가 샤워하러 화장실에 들어가자 휘파람 소리가 난다. 아이는 휘파람을 꽤나 잘 분다. 듣고 있으면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음도 정확하다. 주로 요즘 아이가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 위주로 부르고 가끔 어렸을 때 들었던 동요도 부른다. 로션을 바르면서도 휘파람 소리는 이어진다. 거울을 보며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입술에 입술보호제를 바르고 몸에 오일링을 하는 동안 뭐가 저렇게 신나서 휘파람을 부는 걸까 궁금해진다. 


궁금함이 이어져 방문을 열면 "엄마, 창피하게 문을 열면 어떻게 해. 문 닫고 나가줘."라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올 만큼 커버려 이내 머쓱해지고 만다. 문을 닫고 방문 앞에서 휘파람 소리를 듣는다. 나도 입을 오물거리며 휘파람을 내보려 하지만 텅 빈 바람 소리가 휙휙-난다. 그리고 혼자 괜히 창피해진다. 


가끔 자기 전 책을 읽으면서도 휘파람을 불곤 하는데 그 소리가 꽤나 경쾌하다. 아마 아이는 아이 아빠에게 휘파람 부는 방법을 배웠던 것 같다. 나도 책을 읽으며 배경음악처럼 휘파람 소리를 듣다가 아이의 모습을 유심히 본다.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면 그 동그란 입속에서 음이 흘러나온다. 그러다 그 가뿐한 음을 타고 나도 과거의 어떤 가뿐했던 일을 떠올린다.


여름이었다. 3시간 넘게 차를 타고 바다 근처에 놀러 갔는데 정작 바다에는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해 아쉬운 여행이었지만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다. 비가 올락 말락 하는 흐릿한 날씨까지 여러모로 적합한 조건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을 덮어두고 바다에 들어갔다. 바닷물의 짙은 농도에 온몸이 저려질 즈음에 파도 사이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짐을 챙겨 펜션까지 가는 길에는 더 이상 후드득이 아니었다. 빗방울은 빗줄기가 되어 온몸을 적셨다.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내리는 비에 몸이 젖지 않으려고 온갖 애를 썼을 텐데 이미 흠뻑 젖은 몸과 수영복 위로 수건만 걸친 채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가득 맞았다. 오히려 비가 따뜻하게 느껴졌고 짠 기운이 사라지며 가뿐하게 느껴졌다. 비 맞는 모습과 그 상황이 웃겨 영화처럼 웃음을 맘껏 터트리며 달렸다. 


아이 덕분에 휘파람에서 나오는 음표 위에 올라타 둥둥 떠다니다 지난 여름의 가벼운 기억에 도착했다. 휘파람처럼 산뜻한 봄과 여름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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