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요즘은 평소보다 ‘느린’ 독서를 하려고 한다. 의식적으로 꼭꼭 씹듯 책을 읽으려고 하는 중. 덕분에 <뉴욕 3부작>은 일주일에 걸쳐 읽었네.
삶을 좌우하는 것은 의지일까, 우연일까. 폴 오스터는 철저히 ‘우연’의 손을 들어주고, 나는 생각을 좀 더 진행시켜 보기로 한다. 유일하게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였던 팬쇼가 삶을 놓아버리고, 또 놓아버리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는 선택을 하는 마지막 소설 ‘잠겨 있는 방’을 통해 나는 문득 인간이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얻지 못해서 방황하고, 원하는 것을 얻은 후에는 다른 것을 꿈꾸면서 방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잃었으나 이는 실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닐지도. 그저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처럼 - 내가 뭘 원했던가, 그것을 얻었던가, 못 얻었던가,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뭘까 - 계속해서 혼란스러워하며 끊임 없는 갈증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거라고. 그것은 꼭 나 같았고 그래서 잔잔한 연민의 마음이 들었다.
몇 가지 좋았던 구절도 옮겨둔다.
“하지만 이 말은 그가 빨리 성장했다는 뜻이 아니라 - 그는 결코 자기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 적이 없었다 - 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누가 뭐래도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삶은 대체로 이리저리 갑작스럽게 방향을 바꾸며 떠다밀고 부딪히고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다 중도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어 옴짝달싹 못하거나 이리저리 떠돌거나 다시 출발을 하면서. 알려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원래 가려고 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이르고 만다.”
“결국 요점은 하나하나의 삶은 그 삶 자체 이외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곧 삶이란 이치에 닿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