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자소서 vol.13
연휴에도 불구하고 고향이 아닌, PC 앞으로 향해 자소서를 준비하는 취준생들을 봅니다. 조금이나마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칼럼을 써봅니다.
제가 자소서 첨삭하면서 종종 지적하는 자소서 구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요. 자소서에 경험을 담기 위해 '감성팔이'로 구성하는 것을 봅니다. 보통 자소서가 요구하거나 담으려는 경험은 '정말 기억에 남을 만한 고통/어려움/도전의 경험'입니다.
'나 이렇게 힘들었고, 어려웠어. 정말이지, 대단하지 않아?'
'나 이거 하려고 이렇게까지 해봤어. 진짜 힘들었어.'
'사람들이 어떻게 했냐며 막 고생했다고 그래.'
당사자인 본인은 그 당시의 감성과 어려움, 아픔, 슬픔을 알기에 그것에 몰입하고 쓰게 됩니다. 근데 쓰고 나서 잘 안 담긴 듯하면 (생각보다 극적이지 않거나, 눈물샘을 자극하지 못하다거나) 맛을 강하게 하기 위해 MSG, 설탕, 간장을 더 넣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청양고추 같은 극적인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무엇인가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해합니다. 아래와 같이 나옵니다.
러시아 교환학생으로 가, 러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매일 5시간씩 앉아서 공부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어요. 추운데도 불구하고...
전 세계 30개국을 돌며, 노숙도 하고, 길거리에서 외국인에게 부탁해 셰어 해서 잠도 자고, 그러면서 각 나라의 문화를 배워가는 힘든 과정.. 돈을 아끼려고 밥도 안 먹고...
인턴을 했는데, 자리도 안 좋고, 심지어 인턴은 오래 근무하지 않아서 홀대하는 힘든 상황, 게다가 점심 먹을 시간을 아껴가며 일을 배우는 힘든 시간들, 시간이 아까워...
학교 과제를 하는데, 다들 바쁘다고 안 하고, 어렵게 구성원들을 설득해 밤을 새워 PPT 작업을 하고 발표까지. 자료 조사는 덤이고, 게다가 자료 찾기는 너무 어려워...
장관상을 위해 국제무역사를 취득하고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학기 중에는 아르바이트와 학점 관리를 병행해 3~5시간 자고, 주말까지 바빠서 가끔 버거웠습니다...
하지만 자소서를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자소서의 목적은 일을 잘하는지를 보는 것이 자소서입니다. 자소서를 평가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우기 위해 매일 5시간 앉아있었다는 것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러시아어를 마스터하고자 하는 목표 수준은 어디이며, 그것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을 공부해야 하고, 러시아어의 특성에 따라 발음과 외워야 하는 단어의 숫자가 어떠한지,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러시아어를 쓰려고 하는 상황에 따라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만든다던지, 책으로 공부하던지, 신문으로 공부해야 한다던지, 이런 것을 통해 매일 5시간을 공부한 내용과 돈을 벌면서 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먹었다 등의 합리적인 의사결정 근거가 필요합니다.
30개국을 돌면서 각 나라에서 노숙하고 셰어하우스를 도전했던 것들에 앞서, 30개국의 문화들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곳에서 생존(돈 벌기) 하기 위해 내가 아는 노하우와 방식들, 30개국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방법이나 노하우, 그것들을 바탕으로 30개국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에게 나의 인사이트를 전해줄 수 있게 정리한다던지, 아니면 30개국에서 사업을 무언가를 해본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제안을 해본다던지.
하지만 우리는 자소서를 쓰며, 그 당시의 어려웠던 경험이 떠오르면서 읽는 이도 공감할 것이라 생각하며 씁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일을 잘하는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이지, 감성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당연히 감성적인 면도 필요합니다만, 감성적이기만 한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죠. 이렇게 쓰지 않기 위해 제가 제안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경험의 목적과 목표를 명확히 정하자.
2. 경험에서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나 이미지를 정한다.
3. 경험에서 어려움이나 도전하게 된 이유를 합리적으로 분석한다.
4. 분석을 바탕으로 대안을 제시한다.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들은 자신만의 노하우나 인사이트를 뽑아 작성한다.
여기서 모두가 중요하지만, 특히 2번은 꼭 챙기셔야 해요! 자소서가 전체적으로 꼼꼼한 이미지를 말하는데, 여기서 갑자기 열정적이라는 이미지로 쓴다면 안 되겠죠. 면접 가서도 문제일 테니까요. 그러니 여기서는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 것인지 정해두고 가야 합니다. 다른 문항과 연계를 생각해서 자신의 강점을 하나로 잘 드러나게 써야 한다는 거죠.
이젠 감성팔이식 구성만으로는 안됩니다.
감성이 아닌 담백한 구성으로 승부해봅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