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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Feb 10. 2020

우연을 믿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우연히 만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아직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말을 꺼내기가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내가 경험해놓고 사실 잘 안 믿긴다. 너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예상한 것도 아니었다. 너는 비처럼 불현듯 갑자기 나를 찾아와서 놀라게 했다.


너를 처음 만난 날은 어떠한 기대도, 어떠한 생각도 없었다. 전날과 다름없이 똑같이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네가 나에게 오기 전까지는.


네가 걸어오던 순간, 머릿속에 벨이 울린다는 경험을 처음 했다. 그 순간의 공기, 소음도 분명하게 기억이 난다. 너를 제외한 다른 것들이 천천히 사라지더라. 내 시선이 오롯이 너만을 향했다. 포커스가 너에게 맞춰지고 다른 사람들은 포커스 아웃.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 효과들이 나한테 나타날 줄은 몰랐다. 근데 그랬다. 네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네가 걸어올 때, 너만 보였다. 그날 아침은 약간 몽롱한 상태였다. 네가 내 눈에 온전히 담기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머릿속에 벨이 울렸다? 아니 머릿속에 "!" 느낌표가 떠올랐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나를 찾아온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이런 감정은 네가 처음이라. 사랑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말도 안 됐다. 네가 갑자기 나타나 내 하루를 잠식했다. 그 날은 하루 종일 네 생각이었다. 네 모든 신경이, 모든 관심사가 너로 향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아니 너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네가 나의 시선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너를 알아가는데 온 힘을 집중했다. 내 여가 시간의 전부는 너를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서 귀를 쫑긋 세우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힘든지도 몰랐다. 


타인이 보기에는 별거 아닌 작은 너의 행동에도 내 입꼬리는 내려올 줄을 몰랐다. 항상 굳어 있던 내 표정은 너로 인해서 조금씩 달라져갔다.


사실 우리는 이전에도 만났었다. 그때는 아주 잠깐 시선을 끌었을 뿐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이 변했던 걸까, 겪어온 시간들이 너를 다르게 보게 됐을까?


그때의 나는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이 쏟아질 정도였다. 너를 알아가는 동안, 네가 나에게 준 행복은 다음 생이 온다고 해도 갚지 못할 것이다. 네가 해준 따스한 말들이, 네가 전해준 위로가 나에게 많은 힘이 되었으니까.


너를 알아가고 네가 내 안에 켜켜이 쌓여갔다. 뒤늦게 너를 알아가느라 벅찼지만 그 시간들 마저도 행복했다. 나는 잠을 줄이고서라도 너에 대해 알고 싶어 졌으니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나의 모든 시간들이 너였고, 나는 너이고 싶었다. 


나의 행복은 없었다. 네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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