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CY Mar 20. 2016

홍대의 그 남자

날아라, 배트맨

 영화 홍보 나레이터 3일차.

 오늘부터는 홍대다. 사실 3일 쯤 되면 멘트가 입에 붙기 때문에 크게 어려울 것이 없다. 비슷한 말들을 삼일 째 순서만 바꿔서 하다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연기를 이렇게 했으면 아마 지금 쯤 독백 하나는 기깔 나게 할텐데. 씁쓸해 하면서 이내 고루해지는 현실로 돌아온다.


 그 때 쯤 포토존 앞에 배트맨이 나타났다.

 업체 측에서 또 다른 행사 인원을 섭외 했나 했으나 직원이 와서 말한다.


 "진짜 배트맨이네요."


 진짜 배트맨. 할로윈의 이태원 거리에서나 볼 법한 그는 완벽히 배트맨 옷을 입고 봄날을  만끽하고 있었다. 배트맨과 다른 점이라면 배트카 대신에 튼튼한 두다리로 걷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아무려면 어떤가. 그는 배트맨인데.

  

 "홍대에 특이한 사람들 참 많아."

 "어쩌다가..."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마냥 좋아서 폴짝 댔다. 그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듯 했다. 부끄럽거나 신경이 쓰였다면 진작에 벗어 던졌을 옷이다.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배트카도 없고, 영원한 집사님도 없겠지만 그는 현실에선 배트맨이다.

 많은 사람들이 슈퍼 히어로가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초능력을 부러워하고 히어로 영화를 보며 박수를 쳐대는 것에 만족한다. 소소하게 살아가는 인간 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나는 돈을 주는 일이 아니면 홍대의 배트맨 처럼 원더우먼이나 캣우먼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 할 용기 따윈 없다. 그러나 그는 하고 있다.


 배트맨도 그 많은 유산으로 놀고 먹었으면 될 것을 굳이 배트맨을 하겠다고 뛰어 들어서 생명을 단축 시키고 있다. 용기. 그것이 이 두 사람에게는 있다.

남들에겐 코스프레 였을지라도 나에겐 진짜 현실의 배트맨이었다. 홍대의 그 배트맨이 훨훨 날았으면 좋겠다.


 우리에겐 있을까?

 가시밭길 임을 알면서도 뛰어 들 용기가.



 

매거진의 이전글 골방멜로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