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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Sep 12. 2016

일요일의 요리

지친 일상에 쉼표를 찍다

  오늘은 일 년에 몇 안되는, 손에 꼽히는 집에 혼자 있는 날이었다. 물론 한나절의 고요함뿐이었지만 오랜만에 평온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쉴 수 있는 날이었다. 늘 북적거리는 집에서 살다 보면 이따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진다. 모든 공간에 오직 내가 만드는 소리만이 존재하는 시간, 마음껏 노래를 틀어대고 다 내 맘대로 하는 그런 시간이 말이다. 바로 오늘,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은 편히 쉬었고 그 간의 크고 작은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었다. 물론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성격 탓에 엉덩이를 붙일새도 없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말이다.

  

  먼저 밀린 손빨래를 했다. 젖은 빨래를 탈탈 털어 아침 햇살이 드리운 마당에 널었다. 소홀했던 화분들에 물을 주었고 미안하단 말을 속삭였다. 하나둘 해야 할 일들을 끝마치자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고 앞치마를 둘러맸다. 냉장고를 뒤적거린 끝에 결정한 메뉴는 간단한 프리타타. 한동안 쉬었던 손이 칼질을 그리워했기 때문이 메뉴 선정의 가장 큰 이유였다. 경쾌한 칼질 소리가 부엌을 울렸고 도마 위에는 색색깔의 야채들이 쌓여갔다. 마지막으로 부엌 한켠에 있던 앙증맞은 감자 하나를 얇게 저몄다. 장식할 감자를 미리 구워냈고 야채를 볶았다. 볶은 야채가 내뿜는 '엄청 맛있는 냄새'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향기가 부엌을 가득 채웠고 부드럽게 휘저은 계란을 부었다. 몽글몽글 익어가는 계란 위에 파마산 치즈를 뿌리고 미리 구워낸 감자를 일렬로 뉘었다. 약불로 불을 줄이고 뚜껑을 덮어주면 기다림만이 남는다. 온전히 나를 위해 요리했고 한 그릇을 다 비워냈다.


오늘의 브런치, 프리타타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를 끝낸 나는 드디어 엉덩이를 붙였다. 하지만 오늘 같은 휴일에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었다. 요즘 한창 제빵에 맛이 들린 차였고 마침 오늘은 집에 있기로 마음먹은 날이었기 때문에 만들 목표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였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모카빵. 요즘 애들도 모카빵을 좋아하려나? 내게 모카빵은 추억의 빵이다. 어린 시절 항상 엄마가 사 오던 '큰 빵'들 중 대표주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자주 먹지만 왠지 모르게 예스러운 느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매번 달콤한 쿠키와 부드러운 빵의 유혹에 넘어가 한입, 두입 먹다 보면 어느새 그 크던 빵이 사라지곤 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엔 첫 한 입을 먹기가  무서워지기도 하지만 가끔 먹는 건 괜찮지 않을까? :)


오븐에 들어가기 전, 동글동글 반죽들

  뭐든 직접, 내 손으로 하는 걸 좋아하는 나답게 손 반죽에 도전했다. 집에 있는 반죽기는 나사 하나가 없어져 잘 안 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왠지 나는 고생스럽더라도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것을 좋아한다. 때로는 미련스러울 정도로 하나하나 직접 하느라 온종일을 보내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너무 좋다. 내가 직접 했다는 뿌듯함?이라고 해야 할까. 음, 그냥 좋은 것 같다. 작업을 마치고 요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냥 내가 모든 과정을 직접 하는 게 좋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 :)


  버터를 넣고 질척이는 반죽을 인내심 있게 치댔고 발효하는 사이에 쿠키 반죽을 성형하고 설거지를 했다. 마침내 한 판을 오븐에 집어넣고 나서야 잠시 쉴 수 있었지만 다시 또 다음 판을 구워내기 바빴다. 몸은 고단했지만 오후 내내 매달린 작업 끝에 탐스럽게 부푼 반죽들을 얻을 수 있었고 고소한 커피향을 집 안 가득 채우며 빵을 구워낼 수 있었다. 그리곤 빵이 구워져 나올 때에 맞춘듯 도착한 가족들과 빵을 나누어 먹으며 오늘 혼자만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울퉁불퉁한 쿠키가 매력적인 모카빵

  발효빵을 만드는 과정은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때문에 나도 자주 만들지는 않지만 그만큼 부드럽고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그만둘 수는 없는 매력적인 작업이다. 매번 빵을 만들면서 여러 번에 걸친 설거지 거리에 시달려야 하며 고된 반죽으로 인해 어깨가 아프고 요통에 시달리지만 나는 왠지 빵 만드는 일이 좋다. 빵을 만드는 동안은 온전히 그 과정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갓 구워낸 빵을 한 입 베어 물면, 삭신이 쑤시는 고통 또한 영예로운 노력의 결과가 되곤 한다.


  요리를 하고 빵을 만드느라 어느새 일요일의 날이 저물었지만 쿡쿡 쑤시는 어깨의 통증과는 반대로 나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모처럼 만의 진실된 '쉼' 을 즐긴 날인 것 같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그리고 그를 공유할 수 있었던 '힐링'의 날이었다.  


  오늘 진정한 쉼표를 찍을 수 있었다.


안녕,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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