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어느샌가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다 자랐는지 아직도 자라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녀에게 어른이라는 옷을 입혔고 하나 둘 어깨 위에 짐을 얹기 시작했다. 어깨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그녀의 허리는 굽어갔으나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연신 등을 두들겨대는 것뿐이었다. 아직 자라지 못한 그녀의 작은 키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듯했다. 이따금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며 그녀는 굽은 등을 뒤로한 채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허나 그들에게 그녀는 어른일 뿐이었다. 그들은 그녀의 팔에도 짐을 얹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치맥할래?”라는 이 가벼운 말이, 실은 친숙함을 가장한 그녀의 도피처가 된 것은 말이다.
비구름의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 찾아왔다. 어른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은 날이었다. 그녀는 어른이 아니었던 그녀를 기억하는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만날래?” 그는 좋다고 했다. 따가운 햇볕을 가려줄 구름 한 조각 없었지만 그는 괜찮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기꺼이 뜨거운 햇볕에 맞서주겠다고 했다. 오랜만이었지만 어제 본 듯 편안한 그였다. 둘은 부모님과 함께 나온 어린아이들로 가득 찬 호수공원을 걸었다. 모래성을 쌓는 여자아이 곁을 지나며 한없이 순수한 눈망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작해야 발목을 조금 넘어서는 물속에서도 자지러질 듯 웃으며 뛰어노는 꼬마들 사이로 발을 담갔다. 그리곤 잔잔한 호수에 노를 저었다. 카약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들어온 물로 두 다리와 엉덩이가 젖어들었지만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어른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어둠이 찾아왔지만 그녀는 아직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포장한 그 말을 건네었다. “치맥할래?” 어느 누구도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다만 그 4글자에 담긴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는 좋다고 했다. 호수공원 한편에 앉아 치킨을 먹었고 맥주를 마셨다. 어른의 맛이었다. 어느새 씁쓸한 맥주가 시원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정말 어른이 되었나 보다. 반짝이는 별빛 아래 그의 등에도 빼곡히 자리한 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와 그는 서로 다른 짐을 나눌 수 없었지만 아직 덜 자란 사람으로서 곁에 있어줄 수는 있었다. 둘은 말없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어느 누구도 구태여 말을 보태지는 않았다. 쏟아지는 별빛 아래 나란히 존재했고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날 바라본 별자리는 북두칠성이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