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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May 21. 2016

우리 동네

도시 속 작은 시골 마을을 소개합니다.

우리 동네,


옥상 위의 풍경, 저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들


나는 평생을 내 고향, 대전에서 보냈다. 더군다나 나는 단 한 번도 이사한 적 없이 대전 가장자리의 시골스러운 마을에 자리한 이 주택에 살았었다. 학창 시절 주택에 산다는 나의 말을 들은 친구들은 멋스럽고 호화스러운 신규 주택단지의 집을 떠올리며 내게 잘 사나 보다고 말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살던 오래된 주택 단지이다.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어 도심이 내다보이며 가끔씩 불꽃놀이를 할 때마다 옥상 혹은 현관에서 오붓하게 관람할 수 있는 아주 멋진 곳이다. 동네 어르신들은 모두 서로 알고 지내며 어린 날의 나를 기억해주신다. 현대 사회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하는 이웃 간의 정이 아직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서로 나물이나 농작물을 주고받고 생일마다 회관에서 잔치를 하는 그런 곳이다. 엊그제 회관에서 가져다주신 검은 봉지 안에는 할머니 손에서 나온 것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후레쉬베리 상자가 들어있었다. 할머니 대신 그 봉지를 받아들인 나의 손에서 따스함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나는 홀로 동떨어져 산다는 점이 마음에 안 들어 우리 집이 싫었었다. 나도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바로 앞 학교를 다니고, 틈나는 대로 근처 사는 아이들과 만나서 뛰어놀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하교 후, 모두가 왼쪽으로 향할 때 나와 언니만이 오른쪽으로 뒤돌아 서곤 했었던 것 같다. 게다가 근처에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었으며 무언가를 사거나 놀러 나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해 불편하기만 했었다. 학원을 새로 다닐 때면 학원차 아저씨의 투덜거림을 들어야 했으며 한 번은 아저씨의 친구가 조수석에 앉아 우리 동네인지 모르고 신랄하게 떠들어대는 소리를 듣기도 했었다. "야, 여기 어디야? 완전 달동네잖아." 곧이어 차가 멈추고 우리가 내리려 하자 얼굴을 붉히셨던 그분이다. 지금의 나였다면 웃으며 넘겨버릴 만한 이야기였지만 어린 나에게는 나름 충격적인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때가 생생하게 생각나니까 말이다. 무튼 어린 나에게 우리 동네는 그리 달가운 존재는 아니었다.



파라솔, 쓰레기만 처리하면 써도 된다고 하셨다 :)
가끔씩 음산해 보이기도 하지만 뛰어놀았었던 원두막


내가 자라나면서 우리 동네는 조금씩 달라졌다. 우리 동네 뒷산이 반으로 잘라진 것은 슬프지만, 산을 갈라 길을 내고 새로운 거대 아파트 단지가 생겨났고 덕분에 상점 등이 이전보다는 가까이에 위치하게 되었다. 또 대전 지하철 1호선이 생기면서 우리 동네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생겨 대전 어디든 가는 것이 편리해졌다. 그리고 비교적 가장 최근에는 우리 동네에 벽화가 칠해졌다. 우리 마을이 벽화마을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리고 벽화를 그리기 위해 빛바랜 동네 모든 벽들에 하얀 페인트를 칠했을 때, 어떤 그림들이 그려질까 설렘에 부풀었었다. 가족끼리 동네가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면 샌드위치 장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주고받곤 했었다. 하얗게 칠해진 벽이 모두 마르고 난 뒤, 마을 한쪽 벽에 재미있는 로봇이 생겨났고 내 기대는 더욱 부풀어만 갔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이후에 그려진 벽화들은 솔직히 실망스러워서 차라리 벽화를 그리지 않았던 것이 더 나았던 거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도 이 벽화를 보러 가끔씩 사람들이 오기도 하고, 티비 프로그램도 잠시 촬영했었으니 나름의 성과는 있다고 하기로 하자.


벽에 있는 작은 환풍기를 이용한 로보트
동네의 윗 쪽으로 가는 샛길, 나는 이 작은 길이 왠지 더 좋았다.
바둑이, 그림 외에 이런 조형물도 설치했다.


25살이 된 나는 우리 동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 동네 그리고 정든 나의 집을 사랑한다. 봄이면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차며 겨울에는 동네 내리막길을 따라 썰매를 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다른 도심 가와 떨어져 있다 보니 보다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노래를 틀어댈 수 있으며 수더분한 모습으로 동네를 활보할 수도 있다. 어떤 날의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씻지도 않은 몰골로 소쿠리 하나와 함께 모퉁이를 돌아 슬리퍼를 질질 끌며 걷는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정성스레 심어놓은 콩 모종들이 하루가 다르게 크는 것을 확인하고 그 옆의 케일, 상추, 양상추 등 샐러드 거리, 쌈 거리를 취향껏 뜯는다. 가끔씩 소쿠리를 들고 나오는 나의 모습에 스스로가 웃겨 웃음이 터져 나오곤 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마당 한 켠에는 할머니의 장독이 늘어서 있고 햇빛 아래 빨래들이 널려있다. 작은 텃밭에는 심어놓은 작물들이 자라나고 그 틈바구니로 내가 심은 애플 민트가 잡초처럼 자라나 있다. 애플 민트를 심어놓고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가 다시 들여다보니 거의 쌈 싸 먹어도 될 정도로 커져있었다. 이번에 바질도 기대에 부풀어 한쪽에 심었는데, 이것도 무성하게 자라나서 마음껏 뜯어먹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퉁이 너머의 작은 밭
장독대 한 옆에서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잠시 살기도 했었다.


우리 집에는 내가 알기로 아궁이가 도합 3개가 있는데, 그중 한 개는 최근에 할머니의 요구로 할아버지가 앞마당에 만드셨다. 이 아궁이는 마당 분위기를 한 층 업그레이드해준다. 그리고 우리 집 옆쪽으로 돌아가면 연탄을 때는 곳이 있다. 얼마 전 응답하라 1988을 보고 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살펴봤는데 정말 드라마에 나온 그대로 생긴 연탄 불 때는 것이 있었다! 홀로 어찌나 신이 나던지 친구들에게 자랑했었다. 우리 집은 몇 년 전부터 다시 연탄을 때기 시작했었는데, 할아버지가 그 때문에 많이 고생하시긴 했지만 그 덕에 겨울은 푸근하게 보낼 수 있었다. 연탄 불에 갓 구워진 군고구마를 먹어보았는가? 막 구워져서 따끈한 고구마를 한 더미로 쌓아놓고 뜨거워서 몇 초마다 고구마를 놓치면서도 먹겠다고 까먹는 그 재미를 요즘 애들은 모를 거다.


새로 만든 아궁이
어렸을 적 괜히 올라가고만 싶었던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


다른 집들과 다르게 우리 집 마당은 참 바쁘다. 이따금 갓 캐내어진 햇땅콩들이 귀엽게 쭉 늘어서 있기도 하며 김장철이라도 되면 마당이 가득 차게 절여진 배추가 놓이기도 한다. 가끔씩은 온 가족이 다 모여 고기를 구워 먹는 바베큐 장소가 되기도 하고 더운 여름날에는 평상을 놓고 드러누워있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마당 텃밭에는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매달리기도 하고 석류나무가 자라나기도 하며 가끔은 고양이 가족이 이사 오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우리 집 마당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아니 마당 자체보다는 한쪽에 앉아 나물을 다듬거나 물을 주는 우리 할머니를,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 의자를 만들고 창고 지붕을 수리하는 우리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내 방 창문을 있는 대로 열어놓고 마당 창고 지붕 너머의 하늘을 바라본다. 저 옆에서 할아버지가 뭔가 청소하는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오늘 하늘도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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