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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ey May 31. 2016

특별한 날의 케이크

빅토리아 스펀지 케이크, 그 묵직함에 반하다.

빅토리아 스펀지 케이크,


벌써 2년 전이라고 쓰이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나는 베이킹과 요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다수의 요리 블로그, 유투브 동영상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나의 첫 선생님은 한때 naked chef 라 불렸으며 모든 요리를 손으로 하기 좋아하는 셰프였다. 그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손길로 대충 요리하는듯하지만 그 결과물만큼은 늘 완벽함을 자랑한다. 활기차고 친근한 모습의 그는 영국의 유명 셰프이자 캠페이너인 Jamie Oliver이다. 나는 그의 유투브 채널을 시작점으로 통통 튀는 매력을 지닌 cupcakejemma, 활기차고 덜렁대는 전직 아이돌 donalskehan 등 여러 선생님을 만났고, 점점 더 베이킹에 빠져들었었다. 하지만 오븐이 흔하지 않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나에게 베이킹은 시도해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저 먼 존재였으며 전기를 사용하는 오븐을 삼십분, 한 시간씩 사용해대는 베이킹은 나에게는 사치인 듯 보였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깨달았다.

나는 모든 집에 오븐이 있는 호주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전기 요금을 정액으로 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재료 준비


돈이 많지 않던 워홀러 시절, 나는 종종 마트에서 케이크를 사다 먹곤 했었다. 마트표이긴 하지만 호주의 마트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빵, 케이크 그리고 쿠키를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유통기한이 임박해서 세일을 하던 케이크들이 나의 단골 메뉴가 되곤 했었는데 그중 가장 자주 먹던 케이크는 큰 스펀지케이크 두 개 사이에 잼과 크림이 들어있던 케이크였다. 사이에만 필링이 있고 겉에는 케이크 그 자체 말곤 아무것도 발라지지 않은 그 벌거벗은 듯한 자태가 처음에는 많이 신기했었다. 크림으로 꽁꽁 싸매고 아기자기한 장식까지 얹어있는 정교한 한국의 케이크들과는 달리 투박하게 샌드위치처럼 쌓아올린 그 케이크는 맛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솜털처럼 부드러운 한국의 케이크와 달리 묵직함이 느껴졌고 버터의 향이 더 짙었다. 케이크라 하면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녹아내리는 부드러움을 떠올리던 나에게는 그 묵직함이 낯설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 묵직함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고 부드러운 케이크를 파는 호주의 중국, 일본 베이커리보다는 영국식 케이크들을 파는 곳으로 발 길을 옮기게 되었다.


샌드위치를 만들 준비!
딸기잼을 듬뿍 펴바른다.
잼 위에 생크림을 풍성하게 얹는다.


나는 수많은 샌드위치 케이크 중 으뜸은 단언 빅토리아 스펀지 케이크라고 생각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즐겨먹던 티케이크로 감히 여왕의 이름을 품었으니 그 맛은 당연 일품이다. 고전 빅토리아 케이크는 계란의 무게와 같은 무게의 버터, 밀가루 그리고 설탕을 사용해 만든 케이크 스펀지 사이에 잼이나 마멀레이드를 바른 것으로 이후 다양한 필링을 넣어 만들어지고 있다. 그중 가장 일반화된 필링은 스펀지 사이에 라즈베리 잼과 휘핑 한 크림을 바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이 스펀지의 묵직함은 계란과 설탕을 휘핑하여 케이크를 리프팅 해주는 가벼운 케이크와는 달리 버터와 설탕을 휘핑하여 만드는 크리밍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버터와 설탕을 함께 휘핑할 때 설탕 결정이 지방 사이로 침투해 작은 공기 방울을 만들어주는데 이 공기 방울들을 통해 케이크를 리프팅 해준다. 따라서 버터와 설탕을 많이 섞어줄수록 더 가볍고 푹신한 (light and fluffy) 케이크를 만들 수가 있다.


오래된 이 고전 케이크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보편적인 맛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케이크를 보고 버터와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 혹은 크림과 잼을 바른 스콘이 떠오르기도 하며 이따금씩 우리나라 국민 아이스크림 중 하나인 빵또아까지 떠오르곤 하니까 말이다. 기본 중에 기본인 바닐라 향의 스펀지와 잼, 크림의 조합은 누구나 머릿속에 그릴 수 있는 그런 맛이기 때문에 더욱더 먹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운 맛인 것 같다.


눈처럼 내리는 아이싱 슈가
완성된 빅토리아 스펀지 케이크


빅토리아 스펀지 케이크만큼은 아니지만 꽤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한 사람이 있다. 늘 시답잖은 농담을 건네고는 장난꾸러기같이 웃어버리는, 밥을 먹을 때는 온 힘을 다해 입에 음식을 넣는 일에만 집중을 하는, 닭갈비와 치킨을 제일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다. 식당에서 언성을 높이지 않고 친절하게 주문하는 그의 정중함에선 따뜻함이 묻어나고 나설 때를 알며 할 말은 하는 그의 모습에는 강단이 있다. 전화기 너머로 조잘조잘 일상을 이야기해주다가도 나를 위해 듬직하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가, 우울할 때면 내가 좋아하는 메신저 이모티콘을 깜짝 선물해 내 기분을 풀어주는 그가, 내가 만든 케이크와 쿠키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해주는 그가 나는 참 좋다. 그와 어느 5월의 마지막 날부터 함께했고 올해로 3년째 여름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어느 달의 마지막 날에 불과하지만 어느 두 명에게는 특별한 날을 위해 나는 오랜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이 케이크를 만들었다. 투박한 그 모습이 나와도 많이 닮은, 겉모습과 달리 그 맛에서 무게감과 기품이 느껴지는 그런 케이크를 말이다.


흘러내리는 잼과 생크림의 유혹


RECIPE

cupcakejemma의 레시피를 약간 수정했다.


스펀지 케이크

계란 두 개 (껍질째로 잰 무게)

계란 무게와 같은 무게의 밀가루(혹은 125g, 보편적 계란 두 개 분량)

계란 무게와 같은 무게의 무염버터(혹은 125g)

계란 무게와 같은 무게의 2/3정도의 설탕(혹은 75g)

베이킹파우더 1/2 tsp

우유 1 1/2 Tbsp

바닐라액 1/4 tsp

약간의 소금

필링

생크림 100ml

설탕 1 tsp

딸기잼 혹은 다른 잼 적당량

아이싱 슈가 약 1tsp


1. 두 개의 6인치 틀(1호 원형 틀)에 버터를 바르고 바닥에 유산지를 깔아 준비한다.

2. 실온 상태의 무염버터와 설탕을 거품기로 휘핑해준다. (색이 하얗게 변하고 부피가 증가할 때까지)

3. 2에 실온 상태의 계란을 하나씩 넣고 잘 휘핑 한다.

4. 3에 채에 친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소금을 넣고 스패츌라로 접어올리듯 섞어준다.

5. 가루가 보이지 않으면 우유와 바닐라액을 넣어주고 마지막으로 섞는다.

6. 완성된 반죽을 두 개의 틀에 나누어 담고 평평하게 펴준다.

7. 175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고 약 20~22분 굽는다.

8. 차가운 생크림을 설탕과 함께 휘핑 한다.

9. 먼저, 완전히 식은 스펀지 하나를 놓고 딸기잼을 펴 바른다.

10. 그 위에 휘핑 한 크림을 펴 바른다.

11. 남은 스펀지를 올리고 아이싱 슈가를 뿌려주면 완성.



딸기잼을 참 좋아하는 그를 위해 :)


이 케이크는 차게 먹는 것이 아닌 실온에 꺼내두었다가 먹어야 제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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