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owne Nov 21. 2021

지옥; 태초에 무의미가 있었다

무엇이 지옥인가

'지옥'이라는 개념은 당연히 인간의 죄와 짝을 이룬다. 지옥은 죄지은 인간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죄를 짓지 않으면 지옥에 갈 일이 없고, 죄를 지어도 지옥이 없다면 또한 갈 일이 없다. 따라서 드라마 <지옥>을 보면서 인간의 죄를 떠올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시청자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낚여서' 드라마를 본다. 그게 왜 낚인거냐고? 결론부터 말하면 이 드라마는 인간의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 드라마는 종교나 신과도 아무 상관이 없다. 심지어 지옥 그 자체와도 상관이 없다. 그런 것들은 그저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미끼일 뿐이다.


그럼 이 드라마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무의미'이다. 인간에게 닥치는 고통과 재난의 의미를 물을 때, 그것은 죄의 결과이기도 하고 무신경이나 태만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식의 대답들은 사실 대부분 틀렸다. 물론 살인이라는 원인이 있으니 감옥행이라는 결과가 있다. 하지만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를 분석해 들어가다보면 결국 그 녀석이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인과를 낱낱이 분해해 놓고 보면 그 인과의 사슬들이 그렇게 연결되는 필연성을 찾기란 불가능해진다. 아니, 필연성이란 말 자체가 매우 의심스러운 말이다. 철학자들은 근인(近因: 가까운 원인), 원인(遠因: 먼 원인) 같은 것을 상정하지만 글쎄...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그 모든 고통과 재난의 의미가. 유감이지만 드라마 <지옥>은 그 모든 고통과 재난에 의미 따위는 없다고 말한다.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죄를 지어서도 아니고 착해서도 아니다. 음주운전 차량이 길을 걸어가던 누구를 덮치는데 이유가 있는게 아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신실하신 할머니의 신앙이 거짓이어서 강도가 찾아든게 아니다. 그냥 그런 일이 벌어진 것 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눈밝은 사람이라면 "인과의 문제와 의미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의심할 수도 있다. 맞다. 인과성의 문제와 의미의 문제는 개념상 서로 무관하다. 하지만 인간의 직관과 감성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 거 같다. 


"착하게 살았더니 복권에 맞았다" 철수가 착하게 사니까 하늘도 감동해서 철수에게 복권을 맞게 해주시는건가? 그러니까 드라마 <지옥>에서도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는 간단한 설정으로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집단에 끌려가는데 알고보니 죄를 짓지 않아도 지옥에 가는 거였다면? 지옥은 그냥, 아무나, 아무렇게나 가는거라면? 그러니까 죄와 지옥이라는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원래 복권은 아무나 맞는 것이라면? 그러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럼 삶의 의미가 뭐지?","어떻게 살아야 하지?"


결국 <지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의미한 삶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야 하는가, 이다. 어쩌면 이 질문은 삶에서 으뜸으로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야 하는가. 더 이야기하면 스포가 될 것이므로 여기서 마치자. 힌트를 하나 주자면 드라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젊은 부부가 이 질문의 답을 쥐고 있다.



天地以生物為心者也, 而人物之生, 又各得夫天地之心以為心者也.



매거진의 이전글 조율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