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래옥은 을지로 4가에 있는 식당이다. 불고기와 갈비도 내세우지만 냉면이 가장 유명한 식당이다. 1946년에 개업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라고 한다. 아마 가장 비싼 냉면을 파는 곳일 텐데 냉면 한 그릇에 14,000원이나 받는다. 다만 한 끼 식사의 가격이라 생각했을 때 비싼 것인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겠다.
2.
내가 처음 우래옥에 갔던 때는 군 입대 전 대학생 시절이었다. 맛있는 냉면을 찾아 여러 곳을 다니던 시기였다. 요새는 냉면 문화가 넓어져서 서로들 냉면 철학이 하나씩은 있다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요즘처럼 줄을 서서 기다리지도 않았으니 냉면 먹기는 좀 더 수월했던 시기였다. 우래옥 냉면을 처음 맛봤을 때 이 음식을 내가 좋아하게 되리라 단번에 확신했다. 그만큼 내 취향에 맞았다. 그 뒤로 수업이 끝나면 혼자 자주 찾고는 했다. 대개는 좋아해서 자주 찾는지 자주 찾아 좋아하는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확실했다.
3.
가끔은 냉면의 ㄴ자도 모르는 친구들을 우래옥에 데려갔다. "우리가 생각하는 냉면이랑 맛이 좀 다른데 북한에서는 이런 냉면을 먹는다더라." 그 친구들은 또 다른 친구들을 우래옥에 데려갔다. 때로는 이성 친구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서 데려갔다고도 한다. 그럴 때면 꼭 우래옥이 어디에 있는지 묻는 연락이 왔다. 거기가 을지로 어디지?, 을지로 4가 지하철역 4번 출구로 나가면 돼, 4가 역 4번.
4.
의무경찰로 서울에서 군 생활을 했다. 처음 6개월은 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 그다음 1년 6개월은 광화문 앞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근무했다. 군 생활 24개월 동안 두 번의 생일을 지난다. 나는 각 근무지에서 한 번씩 생일을 보냈는데 운 좋게도 매번 우래옥에 갈 수 있었다. 생일이라고 우래옥에 보내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날마다 몸이 아파 병원에 갔던 기회를 틈탔다. 왜 하필 생일마다 아팠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이제는 지나간 일이다. 그렇게 냉면을 먹고 있다 보면 어린아이들은 저기에 경찰 아저씨가 왔다며 그들의 부모에게 말했다. 두 번째 생일에 식사를 하고 일어설 때는 이제 그 말을 들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아쉬웠다.
5.
사람들은 우래옥에 들어와 붓글씨로 크게 쓰인 '又來屋' 족자를 보면서 '또 오는 집'이라고도 생각한다. 또 올 수 있는 상황은 즐겁다. 오늘이 만족스럽고 앞으로도 거기 있을 곳이니 그런 생각을 했겠다. 그런데 가끔은 또 오지 못할 언젠가의 식사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느껴지는 마지막 식사의 예감. 서로의 말 없음이 고요하기보다는 침묵에 가까울 때, 이어지지 못하는 대화만 이어질 때, 대답 없는 물음만 어색하게 맴돌 때. 가끔 그런 기억이 떠올라 슬퍼질 때면 이른바 평행우주를 생각해 본다. 어떤 세계에 있는 또 다른 나는 아마도 그때 그 사람과 우래옥 냉면도 먹으며 잘 지내고 있지 않을까. 물론 이 세계에서 그 사람과는 우래옥에 가보지 못했다. 조금 더 봤더라면 가보지 않았을까. 여느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