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 Mar 30. 2021

수영장

편하지 않은 사람과 마주 앉았다. 대화가 끊어진 뒤 무료한 공기가 우리 사이를 지나갈 때쯤이었다. 재미가 있든 없든 무슨 말이라도 해볼까. 나는 건조한 입 안을 채우려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뒤 말을 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성당에서 다 같이 수영장에 갔던 적이 있어."


내가 초등학교, 물론 그때는 국민학교였던, 4학년 때 일이다. 성당 주일학교에서는 여름이면 '여름 성경학교'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생각해 보면 '성경학교'이지만 다른 활동들이 더 많았다. 대개는 캠프를 가서 하루 이틀 자고 오는데 캠프를 갈 만큼 신청자가 모이지 않는 등 사정이 마땅치 않으면 며칠간 매일 모였다가 헤어지는 식으로 열렸다. 그날은 다 같이 수영장에 가는 날이었다.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러시아 사람들은 자녀들이 수영을 잘하는 걸 미덕으로 여긴다고 한다. 자녀들이 갖췄으면 하는 몇 가지 능력 중 하나가 수영이라고 한다. 러시아 사람이 아니라서 왜 그런지 잘은 모르겠으나 위급할 때 생존확률이 높아지니 그런 걸까. 어쨌든 지금 못하는 수영을 국민학생 시절에 했었을 리 없다.


수영장에 도착하고 우리는 수영복, 수영모를 착용한 뒤 물놀이를 시작했다. 수영을 잘하는 아이들은 뽐내듯이 텀벙 뛰어들어 손발을 휘저었다. 그 모습이 부럽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수영장에서는 수영을 할 수 있어야 잘 노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해수욕장이 아니니 튜브라든지 오리배를 타는 애들은 없었다. 다 큰 초등학교 4학년들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크지 않은 수영장에 아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붐볐다.


수영을 못하는 나 같은 아이들은 수영장 주변을 서성였다. 너무 맴돌기만 해도 이상하게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계속 그럴 수는 없으니 수영장으로 들어가는 철 사다리를 잡고 내려가던 중이었다. 그러다 발을 헛디딘 탓인지 쭉 미끄러져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갑작스레 얼굴 전부가 물에 잠기니 정신이 없었다. 눈 뜨기도 어려웠지만 잠시 후 수영장 바닥을 딛고 일어서니 정신이 들었다. 물속은 생각보다 깊었고 내 머리 저 위로 다른 아이들의 발바닥이 보였다. 아이들은 둥둥 떠 있는 것일까. 누군가 물에 빠졌으면 시끄러울 법도 하겠는데 내 귀에는 고요하게 꿀렁대는 물소리뿐이었다. 카랑 지지 않고 한 꺼풀 덮인 음원에서 들려오는 귀가 먹먹한 소리. 물속 깊고 조용한 곳까지 들어온 사람은 나뿐이었기에 넓은 바닥을 여유롭게 거닐었다.


얼마나 한참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10분은 되었을까. 별안간 물 밖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까지 연결된 철 사다리를 잡고 한참을 올라왔다. 고요한 세계에서 요란한 세상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동시에 물먹은 사람처럼 눈이 아프고 괴로워졌다. 주변에서 몇몇이 괜찮냐고 물었고 선생님도 와서 내 상태를 살폈다. 특별한 조치를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에는 이런 경험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일을 나 자신이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가끔씩 고요하고 정적이던 그 수영장 바닥을 떠올리고는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날의 경험에서 멀어질수록 나조차도 내 기억을 믿기가 어려웠다. 어린이들이 내 키의 3배나 되는 깊이의 수영장에 갔을 수도, 물속에서 10분을 버티고 있을 수도, 평안한 상태로 그 아래를 거닐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에 대한 이성적인 설명이 필요했다. 다만 이를 설명해 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도 그때 일이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사람이라는 생명체가 그럴 수는 없는 거거든.”

“기절을 했다거나 그런 상황에서 상상한 일이 아닐까?”

“글쎄, 그랬다면 난리가 났을 거야. 아마 잠시 다른 세계를 다녀온 건 아닐까? 버뮤다 삼각지대라든지 그런 것도 있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날 어떤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