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1_안식일로 호된 신고식

입국 첫날 쫓겨날 뻔 했다

by 소다

이스라엘 벤 구리온 공항에 발을 딛은 건 2015년 10월8일 오전8시였다.


돈까스 소스로 대강 버무린 것 같은 닭고기를 기내식으로 먹고 1달러짜리 티백 우린 물을 마시며 16시간 가량을 버틴 끝에 공항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었다. 양 옆에는 꼬불꼬불한 머리를 하고 머리에 전통 모자를 쓴 유대인 남자들이 서 있었다.


유대인 사회의 금요일 일과는 오후3시쯤이면 다 끝나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그 전까지 모든 기숙사 입사 과정을 밟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마어마한 짐들을 가지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가 알지도 못하는 숙소에서 이틀밤을 자야 한다. 왕복 택시비는 물론이고 낯선 땅에 내려 피곤한 상태에서 호텔까지 검색하고 싶진 않았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중심지인 예루살렘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정하고 중요하게 지키기 때문에 그 전날인 금요일 오후부터 일을 거의 중단한다. 외지인 입장에선 장 보고 밥 사 먹고 대중교통 타는등 거의 모든 기본적 사회서비스를 못 받는 셈이라 마음이 안 급할 수가 없다. 한 번은 금요일 오후2시30분쯤 급하게 안식일치 식량을 사러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문 앞에 선 슈퍼 주인장이 "10분 줄테니 빨리 사라"며 카운트다운을 한 적도 있다.


이스라엘에 도착한 게 이른 아침이라 당시엔 큰 걱정이 없었다. 수속을 다 마치니 9시 반, 공항을 나서니 10시였다. 외국인이라 수속 시간이 좀 지체됐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승객을 여러 명 모아야만 출발하는 승합택시 '셰루트'가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때만 해도 큰 걱정이 없었다. 공항에서 택시 기다릴 때 만난 잘생긴 독일인 남자애가 자기도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간다며 함께 가자고 해 더욱 안심이 되었다.


승합택시는 오전 11시가 다 되어 출발했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기숙사라고 연거푸 말하자 기사도 알고 있다는 듯 오케이 하고 웃었다. 그래, 공항에서 많이들 가겠지 큰 학교인데.

공항에서 빠져나와 1시간 넘게 달리자 중동 특유의 황토색 건물들이 나타났고 도로에도 차가 보였다. 한참 창밖을 구경하는데 기사가 어떤 건물 앞에 서더니 나보고 내리라고 재촉했다. 모로 둘러봐도 기숙사처럼은 보이지 않아 아까 그 독일남자를 다시 쳐다보았으나 그는 내리지도 않고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니, 너 히브리대학 가는 거 아니었어?


택시 아저씨 재촉으로 떠밀리듯 홀로 내린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곳은 철창이 아주 높은 문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고 자전거들이 아주 많았으며 안쪽에 사무실 같은 건물들이 있었다. 적어도 여기가 기숙사가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미 오후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주변을 걸어다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여기는 히브리대학이 아니다, 잘못 온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한두 명이 내 얘길 듣더니 택시를 하나 새로 불러주며 이걸 타고 가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물가는 살인적이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그 살인적 물가로 숙박비를 대야 할 것이었다. 또 다시 두 개의 캐리어를 밀고 택시를 탔다.


택시비는 100셰켈(한화 약 3만6천원)이 넘게 나왔다. 아까 셰루트에 300셰켈 줬으니 합치면 약 13만원을 준 셈이다. 다행히 두 번째 택시는 기숙사에 제대로 내려다 주었고 시간은 1시40분이었다. 이젠 됐다고 생각했다.

사무실에 도착해 입사 절차를 밟는데 관리인이 안경을 까딱 올려쓰더니 "기숙사에 들어가려면 캠퍼스 안에 있는 행정실에 가서 등록서류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지금이 거의 두 신데 빨리 뛰어가면 담당자가 있을 거다"며 행운을 빈다고도 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은 언덕에 있다. 기숙사는 가장 낮은 지대에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오르막길 20분을 뛰었다. 중간중간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행정실이 어딘지 물어보며 알음알음 위치를 찾았다. 흰색 건물이 보이자 3개층을 단숨에 올라가 담당자를 찾았다.


그의 얼굴은 귀국할 때까지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만난 모든 유대인 중에 가장 재수없는 사람이었다. 안경을 치켜뜨고 내가 준 서류를 귀찮다는 듯이 받은 그는 마우스로 딸깍딸깍 몇 번 누르더니 "기숙사비를 안 냈네. 저기 가서 ATM 쓰든지 여기서 카드 계산하든지 하라"고 했다. 건네 준 종이엔 내가 내야 할 금액과 카드결제 시 수수료가 50셰켈(약 1만5천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왜 내가 ATM기를 쓰겠다고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시간이 2시10분이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잘 못 쓰겠으면 그냥 되돌아가서 카드로 계산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건물에서 내려 와 맞은편 도서관 앞의 ATM에 카드를 넣었고 당연히 히브리어를 읽을 줄 모르는 나는 엄청 헤매다가 결국 인출을 포기했다. 돌아가려고 보니 카드가 어딨는지 보이지 않았다. ATM기가 카드를 먹어버린 게 아닐까 의심이 됐다. 주변 학생들이 다가와 같이 문제를 해결해주려 하고 ATM 회사에 전화도 걸어주었지만 안식일 직전이라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냥 카드계산을 했어야지, 난 미쳤어 하고 엄청난 자책을 했다. 낯선 땅에선 돈 뽑는 것도 쉽지 않다는 걸, 한 번도 외국에 살아본 적 없어 몰랐던 것이다.


그에게 돌아가 계좌이체를 하게 해 달라고 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제 계좌 이체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지만 일단 빌어볼 참이었다. 그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지만 굉장히 짜증난 얼굴이었다. 거기다 대고 상황을 설명하고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계좌이체를 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가 탁 하고 종이를 내밀었고 그 계좌로 돈을 부치기 위해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저기, 내가 기숙사비를 안 냈대. 이거 좀 계좌로 부쳐줄 수 있어?"

"무슨 일 있어?"

"아니아니, 별 거 아니고 내가 ATM기에서 카드를..."

울지 않으려고 공연히 앞에 있던 지갑 커버를 여닫으며 말을 잇는데 안에 익숙한 문양이 보였다.

"어 엄마 잠시만."


카드가 거기 있었다. 도서관 앞에서 거의 울 거 같은 표정으로 ATM기를 붙들고 카드 달라고 난리난리를 했는데 아까 돈 안 나올 때 반사적으로 이미 챙겼던 모양이다. 웃음도 안 나오고 그냥 허탈하면서 안도감이 들었다.

"아 엄마 잘 해결됐어요. 일단 끊을게요."

카드를 내밀어 계산한 뒤 어떻게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까 올라왔던 오르막길을 다시 달음박질로 내려가 정문을 통과하고, 아스팔트길을 건너, 기숙사 검색대로 밀고 들어간 것만 기억이 난다.


"해냈네(You made it)! 지금 2시50분이야." 데스크에 앉아있던 직원이 웃으면서 나를 맞았다. 나머지 입사 절차는 내가 힘이 풀려 의자에 앉아있는 동안 그가 착착착 진행했다.

중간에 종이 한 장을 주고 유대인 음식문화(코셔)에 동의하는지와 남녀혼숙실을 원하는지 등을 묻는 종이가 왔길래 코셔 안 함, 동성 객실 원함으로 적었다. 나중에 짐을 꾸려 들어가 보니 논코셔는 맞았지만 남녀혼숙실이었다.

내 방 안엔 먼지 가득한 매트리스 침대가 있었다. 걸터앉아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나니 그제서야 긴장이 풀렸다. 무사히 입사를 마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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