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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Oct 13. 2021

나의중동여행기45_집으로 간다

또 놀러올게!

마지막 숙소. 컨디션이 제일 나았다

마지막 날은 특별한 일정이 없었다.

카이로 비행기가 오후 늦게 잡혀 있어서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다. 오전9시쯤 일어나 게스트하우스 조식을 챙겨먹고 코스타 커피도 한 잔 한 뒤 기념품 파는 시장에 다녀오기로 했다.

어차피 늦잠을 잘래도 창문 사이로 차량 경적 소리가 쉴새없이 들렸기 때문에 차라리 자리를 털고 나와 움직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낮의 코스타 커피. 느낌이 또 다르다

미스터지의 차량에 올라 그에게 인사를 할 때 전날 사촌 얘기를 꺼내며 왜 그랬냐고 따졌다. 물론 눈치구단 미스터지는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갔다. "마이 퀸, 쏘리 쏘리! 베리 쏘리!"

뭐가 쏘리인지 말은 안 하면서 그냥 쏘리랜다. 이제 와 내가 당신과 무슨 얘길 하겠어, 출국이 반나절 남았는데.

나는 혀를 내두르곤 입을 다물었다.

나름 실한 아침식사

시장에 가서 가족들 줄 기념품을 사면 오늘 일정은 끝이다. 하지만 마지막날이라고 아무런 일도 없이 지나간다면 이집트가 아니다.


미스터지에게 시장에서 양초 케이스를 사고 싶다고 말했더니 그가 나를 시장 초입에 내려주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20분 뒤에 여기 올 건데 아무하고도 대화하지 말고 딱 살 것만 사서 와. 절대 아무도 따라가지 말고 꼭 여기서 만나야 해."

그와 사흘 반나절을 같이 있었지만 여지껏 그렇게 긴 영어를 구사하는 미스터지는 본 일이 없다. 미스터지의 얼굴은 진지했다.


나도 어제 겪은 일이 있어 오케이~하고는 자못 긴장한 얼굴로 내렸다. 길만 건너면 시장이었기 때문에 그 길로 쭉 들어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길 건너 시장에 들어서자마자 거구의 남자가 나를 막아섰다. 2m는 돼 보이는, 어마어마하게 큰 중년 남자였다.

"스낵? 토이?"(과자나 장난감 필요해?)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모양이었다. 대답을 할까 하다가 대화를 안 하는 게 좋다는 미스터지의 말이 생각났다. 그가 한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지나치려는 뒤에서 벼락처럼 소리가 내리꽂혔다.


"뻑큐!!!!!뻑!!!큐!!!!!!"


시장 전체에 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의 목소리는 정말로 크고 위협적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가 험악한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입술이 주문을 외우는 것 같기도 했고 욕설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도망가야 해. 나는 발길을 돌려 바로 아랫동네로 걸어내려갔다. 그가 따라올까 무서워 잰걸음으로 걸으면서도 혹시 내가 겁먹은 것이 티가 날까봐 뛰지는 못했다.

다행히 그는 쫓아오지 않았고 나는 다음 골목에 접어들자마자 눈 앞에 있는 상점에 뛰어들어갔다.


나를 발견한 골목 상인들이 헬로 차이나(중국인)~자빠니~(일본인)를 반복하며 내게 농담을 걸어댔다. 아까 만난 남자만큼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이미 겁을 먹은 뒤여서 시장에 더 머물 자신이 없었다. 나는 가까이 있는 상점에서 양초 케이스를 집어들어 계산하곤 미스터지와 헤어졌던 곳으로 곧장 되돌아갔다.


도로에 서서 미스터지를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길게 느껴졌다. 아까 바로 맞은편에서 그 뻑큐남을 만났기 때문에 그가 나를 다시 발견하면 어쩌나 초조했다. 내 몸을 숨길 가로수 하나 없다는 생각에 불안감이 커지고 식은땀이 날 즈음 미스터지의 회색 차가 멀리서 모습을 드러냈다. 안도감에 손을 휘휘 흔들었다.

이집트의 찻길.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다

다시 숙소로 가 짐을 챙기고 미스터지의 차량으로 돌아오니 공항에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시간이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길거리에 차가 많아 불안불안했고 실제로 공항에 도착하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입구에 서 있었다. 그것도 질서정연하게 줄 서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서로 밀치고 당기며 빨리 들어가려고 난리통이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공항 입구 앞에 가족, 일가친척  단위로 뭉쳐 있는 통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미스터지는 여기서 또 한 번 살벌한 해결사의 면모를 발휘했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내가 당황해 서 있자 그는 내 가방을 들쳐 매더니 몸을 인정사정 없이 들이밀어 사람들을 안으로 욱여넣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사람들이 뭐야?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그는 몸을 쭉쭉 밀어넣어 내가 들어갈 자리를 계속 만들었다.


순식간에 인파를 헤치고 공항 입구까지 가 닿자 미스터지는 머리 위로 내 가방을 던져주고 뒤로 빠져나갔다. 들어오는 건 힘겨웠지만 밀려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미스터지는 인파 사이로 떠밀리며 내게 손을 흔들어 준 뒤 유유히 사라졌다.


미스터지 덕분에 비행기를 무사히 탈 수 있었다. 이제 두바이를 거쳐 한국으로 갈 것이다. 모든 여정이 끝난 것이다.


카톡이 도착했다. 친구들이 도착시간에 맞춰 공항에 오기로 했다고 한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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