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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 Mar 06. 2022

[소다의댓글읽기1]`보통 사람'이라는 착각

사진 출처 픽사베이

“국민들은 트랜젠더 군인일 하나도 일도 관심없어요.......”

-<한겨레> 2월26일 기사 「‘희망을 꿈꿨던 곳’ 타이에서 돌아온 변희수의 군복」 댓글


고 변희수 하사 1주기가 다가오던 날, 변 하사 군복을 태국의 한 교민이 찾아서 유족에게 돌려줬다는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여군인 변희수 하사는 지난 2019년 성전환(성확정) 수술을 한 뒤 군대에서 강제 전역당하자 복직 투쟁을 이어오다 지난해 3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해 10월 법원은 변 하사에 대한 군의 강제 전역 처분이 위법하다며 전역 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주인은 떠나고 군복만이 남아 유족 품으로 돌아오게 된 과정을 기사로 읽다가 이 댓글을 발견하고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자기가 바라보는 시선이 곧 `보통의’ 시선이라고 믿던 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이 내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고, 그렇기에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작성자가 나를 설득하기 위해 더 친절하게 글을 써야 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해고 노동자들이 복직 요구 농성을 한다는 기사를 읽을 땐 `이럴 시간에 다른 일을 찾지’라고 생각했고 치안이 나빠진다며 외국인의 난민 신청을 거부하는 행태가 인종차별이라는 기사를 읽을 땐 `위협을 느끼는 게 사실인데 어떡하나’ 생각했다. 그 때는 내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에 특정한 도덕관념을 제시하는기사에 거부감을 느꼈다. 해고된다는 게 그저 일자리를 잃는 차원이 아니라 부당하게 존엄을 짓밟히는 일임을, 외국인을 범죄자 취급하는 게 단순한 치안 걱정이 아니라 편견에 근거해 그들을 일찌감치 범죄자 집단으로 낙인찍는 일임을, 그 때는 몰랐다.


이 문장을 읽으며 대번에 그 기억을 떠올린 건 이 사람이 같은 문법을 구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성자는 저 짧은 한 문장에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변 하사의 서사는 `트랜(스)젠더 군인’이라는 납작한 단어로 바꾸었고 그 사연에 관심이 없는 자신은 `국민’이라는 단어로 소개한 것이 눈에 띈다. `하나도’, `일도(1도)’ 관심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는 데선 작성자의 불편한 심기가 묻어나고, 필요 이상으로 일곱 번이나 찍은 마침표(.......) 역시 `할 말은 많지만 이쯤 해 두자’는 뉘앙스를 남긴다. 여러 요소를 잘 배치한 덕에 성전환 군인에 대한 작성자의 거부감은 개인적 감정을 넘어 대중의 합당한 무관심인 것처럼 제시된다. 국민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없거늘 한겨레는 왜 이런 기사를 쓰는가, 쯧쯧, 하는 면박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한 명이 말할 때는 개인의 주장에 그치지만 여러 명이 말하면 여론이 된다. 그 효과를 알기에 `보통 사람 화법’을 친구와의 말싸움에도 종종 쓰고 싶은 유혹이 든다. 상대방에게 지기 싫을 때 그냥 내 기분은 이래, 라고 말하기보다 “사람들은 다들 이런 상식을 공유해, 네가 그걸 몰라서 그래”라고 말하고픈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1:1의 싸움에 익명의 무리를 우르르 끌고 와 1:n의 패거리싸움으로 만드는, 굉장히 효과적이고 치사한 방법이다. 이것이 친구끼리의 사적인 싸움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대치라면 그 여파는 말할 것도 없다. 


가끔 보통 사람 화법을 듣는 이의 입장에 설 때가 있다. 작년에 사촌동생과 밥을 먹다가 그가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말을 하기에 그것은 옳지 않다 말했더니 피식 웃으며 “누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라고 말했다. 늘 내게 사회생활과 진로에 대해 조언을 구하던 사촌동생이 그 순간에 돌연 나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어쩌면 성차별을 몇년째 공부한 나보다 남성인 자기가 그 사안을 더 잘 아는 `보통 사람’이라는 인식이 발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얼굴이 귀까지 빨개져 “네가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을 어떻게 아느냐, 익명게시판 몇개 읽고 와서 대중을 대표하려 드느냐”고 화를 냈다. 나 역시 평소에 보통 사람 화법을 늘 구사하려 들었으면서도 반대편에 서니 그리도 모욕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옛날 생각에 심난한 마음으로 변 하사 기사의 댓글창을 들여다보는데 `관련기사’ 목록이 눈에 띄었다. 변희수 하사 죽음 1주기에 맞춰 준비된 기획기사다. 그의 삶, 투쟁, 가치에 대한 기사 대여섯개가 다음 읽을거리로 준비돼 있었다. 좀 전에 읽었던 비아냥거리는 댓글들이 마음에서 씻겨져 내려가고 안도가 남았다. 계속 말하면 된다고, 누가 에워싸든 면박을 하든 조롱을 하든, 계속 말하고 쓰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변 하사 1주기인 2월27일 서울 한복판엔 `국민들 아무도 관심없다'던 변 하사의 죽음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고 그를 기억하는 대형 지하철 광고가 용산역에 게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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