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머스 회사에서 기획자가 겪는 5가지 상황
광고대행사 기획자에서 커머스 회사 기획자로 넘어온지 벌써 5개월이 되어간다. 커머스 회사에서 기획자는 어떤 업무를 하며 어떤 경험을 하게되는지 글로 남겨보려한다.
대행사에 다닐 때는 프로젝트마다 업무 스콥이 딱 정해져 있었고 그 업무 스콥이 정해진 업무를 마치면 모든 업무가 끝났다. 예를 들어 바이오더마의 2019년 가을시즌 클렌징 워터 프로모션을 업무를 맡았다면 그 업무 기간과 스콥만 채우면 나는 더이상 그 업무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커머스는 기획자마다 각 제품을 담당하게 되고, 그 제품이 단종이 되지 않는 한 그 제품에 대한 업무가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제품 기획 중에도 기존에 맡고 있던 제품에 대한 심의 수정이나 마케팅 요청이 들어오면 다시금 그 제품의 전문가(박사)가 되어 기획하거나 안내해야한다. 말로만 들으면 쉬워보이지만 수십개의 제품의 어머니가 되어야하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다녔던 대행사는 뷰티 전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뷰티 브랜드 외 공산품이나 기타 상품을 다룬적이 거의 없다. 다양한 상품을 다루는 대행사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대행사들은 특정 제품군에 전문화 되어있는 부분이 많고 그렇지 않은 회사더라도 각 팀마다 특정 제품군에 특화되어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에 필자가 다니는 커머스 회사는 커머스 회사 중에서도 정말 다양한 제품군을 아우른다. 오전에는 뷰티제품을 점심에는 차량 제품을 오후에는 중국 공산품을 다루는 식이다. 그러다보니 저절로 다양한 제품군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또한 높여야만 한다.) 이전 회사에서는 뷰티제품의 타겟층인 여자2030에 대한 인사이트만 높았다면 지금은 남자, 주부 등 다양한 타겟들의 소비에 대해 인사이트가 강제로 생겼다. 새로운 제품군을 맡을 때마다 또 다른 타겟들이 넘실넘실 나에게 다가온다. 오늘도 '이러다 세상 모든 사람(제품)들의 구매 동기를 알게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일을 한다.
광고대행사의 프로젝트는 준비기간만 1달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프로젝트 목적 및 예산 등이 엄청나게 꼼꼼한 회의를 거쳐 '브리프'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매일 매일이 크리에이티브로 가득찼지만..어떻게보면 넓은 의미의 크리에이티브라기 보다는 브리프 내에서의 크리에이티브를 내는 일이 많다.(그렇다고 그런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생성하는 과정이기에)
인하우스에서는 따로 큰 프로젝트는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에 기민하게 반응해야한다. 가령, 비슷한 제품인데 경쟁사에서는 특정 인사이트를 건드려 엄청난 매출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 '김서림 방지제' 관련 일화를 말해보려한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로 마스크 착용은 필수인 세상이 되었다. 이 세상 속 안경을 쓰는 사람들은 마스크로 인해 올라오는 입김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리는 답답함을 겪었다. 단순히 넘어갈 수도 있는 이 상황을 빠르게 캐치하여 이를 활용한 배너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 결과, 우리 회사에서 매출이 저조해 골칫덩어리였던 '김서림 방지제'는 하루 아침에 기존 매출의 몇배를 찍는 효자상품이 되어있었다.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커머스 회사 기획자는 심미적인 크리에이티브 보다는 좀 더 소비자의 관점에서 일상을 기민하게 보는 인사이트를 키울 수 있게 된다.
광고는 일시적으로 특정기간에 진행된다. 또한 크리에이티브가 보다 중요시 되는 영역의 일이기에 심의가 그렇게 빡빡하지 않다. 이런 특성을 이용해 오히려 사람들의 오인지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광고도 꽤 많다.(그렇다고 광고에 심의가 하나도 안걸린다는 말은 아니다.) 뭐랄까 보다 심의가 너그럽게 진행되는 영역이랄까?
하지만 커머스 회사에서 심의는 굉장히 빡빡하다. (소비자 구매의 마지막 단계인 상세페이지 기획자로 일을 하는 이유도 크게 한 몫 하겠지만.) 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소비자의 오인지를 유도하는 문구는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법이 정하는 기준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것이다. 법이 개정될 때마다 기존의 상세페이지를 모두 하나씩 수정해야할 때의 그 심란한 마음이란..겪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기분이랄까..? 무튼, 커머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심의에 대해 더 민감하게 되었고 제품별로 심의에 걸리는 단어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이젠 특정 단어만 보면 이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그건 심의에 걸려.. 백퍼야..'
대행사에서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업무가 많기에 광고주(마케팅팀) / 콘텐츠 제작팀(디자인팀, 영상팀, 개발팀) 커뮤니케이션 대상의 전부였다. 각자 다른 팀이긴해도 광고는 크리에이티브가 우선시 되는 영역이기에 기획자의 크리에이티브에 크게 딴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크리에이티브를 위한 수정이 많은 건 별개의 문제)
하지만, 커머스 회사에서는 상황이 좀 다르다. 커머스 회사에서 새롭게 생기는 커뮤니케이션 대상이 있다. 첫째는 상품을 개발하는 사업팀이요. 둘째는 법 관련 문제를 꼼꼼히 체크하는 심의팀이다. 이 들과의 대화에선 크리에이티브 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우선시 된다. 제품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라던지, 법에 근거해 맞는 표현이라던지 등이 그러하다. 그러다보니 크리에이티브한 표현보다는 명확한 표현이 더 환영받게 된다. 하지만, 기획자에게 언제나 크리에이티브는 버릴 수 없는 그 무언가다. 이들로부터 크리에이티브를 지키려다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제시한 크리에이티브를 실행해야하는 근거에 대해 보다 면밀하게 조사하게 되고, 보다 설득적인 마인드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